항목 ID | GC04200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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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美華 |
영어음역 | Gim Mihwa |
이칭/별칭 | 김옥순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영미 |
[정의]
부산 지역에서 발레가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발레 교육의 선구자.
[활동 사항]
김미화(金美華)[1922~1984]의 본명은 김옥순이고, 192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36년 전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전문학교를 마치고 1943년부터 1945년 3월까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치바호순무용연구소에서 현대 무용을 공부하였다. 1945년 4월 귀국하여 서울 부민관에서 제1회 발표회를 가진 김미화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4월부터 1946년 3월까지 도쿄[東京]의 최승희무용학원에서 조선 춤[신무용]을 사사하였다. 현대 무용과 조선 춤을 익힌 김미화가 발레를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1953년 1월 일본 도쿄의 타니모모코무용소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이후 1956년 귀국하기까지 김미화는 일본에서 새로운 무용을 두루 접하였으며, 전라북도 일주 순회공연[1945년], 제2회 개인 발표회[1946년], 경인·대전·전라북도 지구 순회공연[1947년], 일본 도쿄에서의 츠다진부와 합동 무용 발표회[1953]를 갖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1957년 부산에 정착한 김미화는 김미화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김미화의 체계적인 발레 교육은 발레가 부산에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김미화는 외국에서 접했던 선진 춤의 흐름을 무대를 통해 선보여 무용계에 자극을 주기도 하였다. 1957년 9월 부산의 제일 극장에서 가진 귀국 대공연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이었다. 이날 김미화는 무용이 춤과 음악 그리고 미술이 조화된 무대 종합 예술임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2회에 걸쳐 펼쳐진 이날 공연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많은 인원이 공연장에 몰려, 관객이 초만원을 이루는 기록을 남겼다.
김미화는 1962년 결성된 한국무용협회 부산지부의 지부장을 맡았고, 동아대학교·한성여자대학·부산대학교에 강사로 출강하면서 부산 무용의 발전에 매진하였다. 김미화는 김소월(金素月)과 이시가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한 섬세한 예술인이었던 반면, 학구적이고 의욕적이며 진취적인 삶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김미화는 1984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