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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30
한자 丁福甲
영어음역 Jeong Bokgap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창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악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음악가협회 창립 회장
출생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부산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47년 5월 14일~5월 15일 - 부산관현악단 창단 연주회에 특별 찬조 출연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한국 가곡의 밤’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노래하자회’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제1회 독창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부산음악학교 성악 전공 교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49년 12월 20일 - 부산음악가협회 창립 회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 행방불명
출생지 경상남도 합천군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학교|수학지 중앙음악학교 - 일본 도쿄
활동지 남성여자중학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여자중학교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3가 60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음악가협회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성악가.

[개설]

정복갑(丁福甲)[1919~?]은 1919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한 테너 가수였다. 평론가 유신(劉信)의 글에 의하면, 정복갑은 ‘탄력 있는 당당한 고음’을 가졌고, 특히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의 오페라 아리아 「정결한 아이다」가 명연이었다고 한다. 또한 전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이인영(李仁榮)은 정복갑김호민(金皓民)과 더불어 중앙 무대에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테너였다고 평가하였다.

[활동 사항]

정복갑부산여자중학교에 재직하면서 연주 활동을 벌였다. 1947년 5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동광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부산관현악단 창단 연주회에 특별 찬조 출연하여 안기영 편곡의 「방아 타령」과 자코모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의 오페라 아리아 「오 낙원이여」를 불렀고, 1947년 ‘한국 가곡의 밤’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49년 정복갑박용식(朴溶軾)·김점덕(金點德)과 함께 부산음악학교에 재직하였다. 부산음악학교에서 정복갑은 성악을, 박용식김점덕은 작곡 부문을 맡아 교육하였다. 1949년 1월 정복갑은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노래하자회’에 참여하였고, 창립총회 때 테너 김호민과 특별 연주를 선보였다. 또한 9월 16일부터 17일까지 정복갑은 ‘실내악을 주로 한 음악 연주회’[미국 공보원]에서 비제(Georges Bizet)의 「진주 조개잡이」중의 아리아 「사랑의 기쁨」을 부인인 한봉희(韓鳳姬)의 반주로 독창하기도 하였다. 그해 12월 20일에는 정복갑이 중심이 된 부산음악가협회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복갑을 비롯해서 홍일파(洪一波)·윤이상(尹伊桑)·김호민·배도순(裵道淳)·김점덕 등 당대 부산 음악의 핵심 연주자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이 협회는 당시 어린 학생들의 피아노 연주회를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미래 음악가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정복갑은 또한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 부산예술과 음악부 강사를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복갑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행방불명되었는데, 박용식과 마찬가지로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인이었던 피아니스트 한봉희는 당시 남성여자중학교 교사였는데, 정복갑이 행방불명되고 난 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김점덕과 재혼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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