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6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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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壽浩 |
영어음역 | Gim Suho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양흥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동래 야류」 연희자.
[활동 사항]
김수호(金壽浩)는 1882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기옥(基玉)이다. 조선 말 동래부에 있던 여러 무청(武廳) 중 하나인 작대청(作隊廳)의 백총(百摠)을 역임한 무임이었다. 동래 지역의 이서층(吏胥層)과 무임층(武任層)이 관직에서 물러나 조직한 모임인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동래기영회 회원 또는 이서직과 무임직의 자제들로 구성된 모임인 동래속영회(東萊續英會)에 1932년 입회하였다. 동래기영회나 동래속영회 회원들이 지역의 실세로 행세하기 위해, 또는 지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교육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것과 같이 김수호는 지역의 문화를 전승하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동래기영회나 동래속영회 회원이 대부분 지역 명망가나 자산가였기 때문에 연행 조직을 이끌 수 있고, 선조들이 주도하던 지역의 제의(祭儀)와 나희(儺戱)를 경험해 왔기 때문에 「동래 야류」를 전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수호는 30세가 되는 무렵인 1910년경부터 연희에 뛰어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래 야류」 연행 때 맡은 역은 말뚝이였다. 민속학자인 최상수(崔常壽)는 김수호를 일제 강점기 말뚝이 역의 최고 연기자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김수호는 「동래 야류」의 탈 제작 기술도 뛰어났다. 중요 무형 문화재 「동래 야류」 보유자 천재동(千在東)의 회고록에는 1930년대 탈 기술자로 김수호, 김용우, 이두상을 꼽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동래 야류」를 연행한 연희자(演戱者)가 동래부 무청의 무임 직책을 맡은 인물이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전근대에 지역의 제의를 이서층이나 무임층이 주도한 것과 유사하다. 또한 동래 지역의 무임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사회 변화 속에서도 교육·문화·경제 등 각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하는데, 김수호를 통해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지역 문화를 전승해 나가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수호는 1952년 7월 14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