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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45년까지 부산 지역의 역사. 1914년 부산에서는 부제(府制)를 공포하여 종래의 일인 거류민단법 및 거류지 제도를 폐지하였다. 종래의 부산이사청(釜山理事廳)에 부청(府廳)을 설치하고 부윤(府尹)을 두었는데, 1936년 옛 부산시청 자리인 중앙동으로 시청을 옮겼다. 1913년 12월 29일 부산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 중구·서구·동구·영도구 지역]와 동래군[옛 동래부...
식민 통치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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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부(釜山府)의 상급 기관이었던 식민 지배 최고 통치 기구 .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의 발표와 함께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칙령」을 제정한 것에 의거하여 설치되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은 경성에 이어 조선의 2대 도시이자, 조선 최대의 식민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조선총독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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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수출하는 곡물을 검사하기 위해 부산 지역에 설치된 기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일찍부터 수출하는 미곡을 검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09년 목포상업회의소가 독자적으로 수출하는 현미에 대한 검사를 시작한 데에 이어 조선총독부에서도 1913년 6월 각 도(道)의 장관에게 통첩하여 지방 행정 기관의 감독 하에 상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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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도구 남항동 2가에 있었던 조선 수산 자원의 대표적 수탈 기관.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은 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산업 각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시험 조사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설립되었다. 1921년 5월 7일자 조선총독부 칙령(勅令) 200호로 공포한 관제(官制)에는 설립 목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가 규정되어 있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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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초량동 일대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조선총독부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융합·동화시킨다는 표면상의 목적 아래, 동일한 행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14년 4월 1일부터 부제(府制)를 시행하였다. 일제는 부제 시행의 이유를 국권 강탈 후 3년 동안 양국 간의 격차 때문에 시정(施政)에 불편이 많아 양국의 융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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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개항과 더불어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은 부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 개항장의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인 사회를 형성하였다. 1894년(고종 32) 청일 전쟁과 1904년(고종 41)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고종 42) 3월 「거류민단법」을 공포하여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거류지에 거류민단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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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식민 도시 부산의 지방 자치 의결 기구. 1914년 지방 제도의 실시 후 1920년 지방 제도 개정을 통해 지방 지배 체제의 정비를 꾀하였던 일제는 1930년 말 다시 지방 제도의 개정을 추진하였다. 1920년의 지방 제도 개정은 ‘지방 자치’의 외양을 갖추면서 동시에 그동안 일제의 지배로부터 이반되었던 지방 세력을 체제 내로 포섭·회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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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치된 빈민 조사 기관을 빙자한 지방 행정 기구. 일제 강점기 관청이 주도하는 사회사업 관련 제도인 방면위원제와 그 행정 조직인 방면위원회는 일본에서 먼저 시행되었고, 조선에서는 경성이 1927년, 이어서 부산도 1933년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방면위원회가 빈민의 생활 개선 및 향상을 위한 빈민 조사 기관이라고 선전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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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일본인 청년 단체의 연합 조직. 부산부 연합청년단은 각 정촌(町村) 별로 흩어져있던 일본인 청년 단체를 한데 규합하여 진보 발달을 조장하고 교육 칙어의 정신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8년 6월 18일 부산공회당 소집회당에서 부산부 청년단 연합 위원회를 개최하여 연합 규약을 마련하고 부산부 연합청년단을 설립하였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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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공포된 총대 설치에 관한 규칙.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 통치 방식의 기조가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지방 제도 역시 변화하였다. 특히 부산부(釜山府)는 시민과 관공서 간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관공서만으로 업무 처리가 힘들어졌고, 이에 시민과 관공서의 연락을 맡을 ‘정동리 총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1925년 1월 29일 부 고시(府告示)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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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1일 진주부에서 부산부로 경상남도 도청을 이전한 사건.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지방 제도가 개편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진주로 결정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중심지는 동래와 진주였다. 그러나 일제는 오로지 일본 본국과의 관계라는 자신들의 편의만을 고려하여 부산을 정치, 경제, 외교, 군사, 상공, 교육, 문화, 행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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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및 경상남도 지역 군사 경찰 기구. 부산헌병분대는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의 중심 기구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군사, 경찰 사무를 담당하였다. 부산헌병분대는 부산 일본인 거류지 일본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1896년 9월 2일 ‘임시헌병대 부산지부’라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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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거류민단 의원들이 1914년 부산부제 실시로 자치제가 철폐되자 조직한 정치 단체.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조선을 병합한 이후 조선에 있던 11개 지역의 일본인 자치 기관인 거류민단을 철폐하였다. 이에 각 지역 거류민단은 연합 협의회를 만들어 진정서와 결의문을 제출하는 등 총독부의 자치 기관 철폐에 대해 반발하면서, 기존 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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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수인(囚人) 교화 시설. 부산보성회는 수인을 보호하여 생업을 주고 일반 사회의 양민들처럼 살게 할 목적으로 부산형무소 직원의 주창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1년 12월 13일 최초로 설립되었을 때는 대신정의 한 민가를 빌려 수인들을 수용·보호하였으나 1918년 3월 회칙의 변경과 함께 부산보성회로 명칭을 확정하였다. 1923년 12월 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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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경찰서 관할 하의 소방 기구. 부산소방조는 1894년 부산의 일본 거류민이 증가하고 이와 병행하여 건축물 또한 증가하자 방화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설립되었다. 1894년 부산소방조의 설립과 함께 소화전을 설치하고 소방 경통(卿筒), 수동식 펌프를 갖추었으며, 화재 진화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증기 경통 2대를 구입하여 비치하였다. 1901년 4월 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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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부에 있었던 관영 사회사업 기관. 일제 강점기 부산직업소개인사상담소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구하는 구인자와 직업을 구하는 구직자의 신청을 받아 이들을 서로 매개하여 사람과 직업을 알선·상담함으로써 실업 구제를 행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회사업 기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노동력 수탈의 일선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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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설립되었던 관변 부인 단체. 애국부인회 부산위원부는 부산 지역의 부인층을 동원하여 총후 국민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관변 단체로 설립되었다. 1905년 동경 본회의 직할로 부산에 설치되었으며, 이후 1906년 10월 애국부인회 한국위원본부가 경성에 설치되자 경성본부에 소속되어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2년 당시 회원 수는 1,200명이었으며, 대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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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3가에 있던 수신·교화 단체. 일본홍도회(日本弘道會)는 1876년 니시무라 시게키[西村茂樹]가 국민 도덕의 진흥, 도의(道義) 국가의 건설을 제창하며 설립한 동경수신학사(東京修身學社)가 그 전신이다. 이후 1884년 일본강도회(日本講道會)를 거쳐, 1887년 일본홍도회로 개칭하였다. 일본홍도회 한국지회는 한국에서 유일한 홍도회의 지회로...
식민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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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과 같이 영사 재판권을 가진 제3국에 의해 도시 행정이 이루어지는 도시. 식민 도시는 자국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 자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인의 거류지가 설치되어, 영사 재판권을 가진 제3국에 의해 도시 행정이 이루어지는 사실상 제삼국의 식민지와 다름없는 형태의 도시이다. 각국 사이의 조약이나 협약에 의해 조계[외국 거류지]가 설치된 개항장 또는 개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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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 시기 부산 지역의 상황. 중일 전쟁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北京] 교외의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계기로 발생하였다. 베이징·톈진[天津]을 점령한 일본은 상하이[上海]에 상륙하고 1937년 12월에는 난징[南京]을 점령하여 수십만의 중국인을 살육하는 등 전쟁의 전 기간에 걸쳐 중국인 1200만 명을 죽이는 등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일삼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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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체제기 일제가 부산 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행한 조선인들에 대한 인적, 물적, 정신적 강제 동원. 일제에 의해 진행된 ‘강제 동원’은 식민지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다른 시기보다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진행된 것은 중일 전쟁 이후 전시 체제기였다. 일제는 전쟁으로 야기된 인적, 물적 자원 부족을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확보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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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의 적기만에서 인력을 강제로 동원한 사건. 전시 체제 아래 항만 건설 및 하역 노무 동원과 관련해 경상남도의 대부분의 항구 도시에서 강제 동원이 진행되었다. 특히 군사 도시인 진해는 물론 조선의 대표적인 항구인 부산을 위시하여 마산 등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쟁 발발과 함께 대륙 병참 기지로서의 역할이 강화된 부산의 경우, 군사적 목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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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의 일광광산에서 인력을 강제로 동원한 사건. 일제 강점기 말에는 강제 동원 중 특히 군수 물자와 관련된 회사에 강제 동원되어 노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부산 적기만의 각종 군수 회사는 물론이고 기존의 방적, 방직 회사를 비롯하여 금속, 화학 공장 등에서도 강제 동원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군수품 제조 및 운반과 관련된 회사, 공장들이었다. 또한 전쟁 물자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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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상태에 있었던 여성.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이후 1932년 일본군 차원에서 설치된 ‘위안소’부터 시작하여 중일 전쟁,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한 군 위안소에 이르기까지 이들 기관에서 남자들을 성적(性的)으로 위안하기 위하여 동원된 여성을 일컫는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정부 등록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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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말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던 일본군 요새 사령부. 1941년 진해요새사령부가 부산 중구 영주동으로 이전하고, 1942년 부산요새사령부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이는 인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부산항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이어서 미군 함선 진입을 막고, 일본 항해 함선 원호단을 형성하여 해상과 상공에서 대한 해협을 방어하기 위해 주력 부대들을 부산으로 집결시켰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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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조선인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자문 기구. 학교비는 부산 지역에서 일제가 조선인 아동만 교육시킬 목적으로 설립한 관공 단체 조합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 모두 4차에 걸쳐 교육령이 개정 발포되었다. 그중 학교비와 학교 조합의 존속 기간인 1931년 초까지 해당되는 것은 제1차와 제2차 교육령이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 8월 칙령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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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일본인 교육 사업의 경영을 위하여 설립된 기구. 학교 조합은 부산 지역에서 일제가 일본인 아동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설립한 조합이다. 1906년 「거류민단법」의 공포로 조선 내 일본인의 자치 조직인 거류민단이 각 지역별로 설치되었고, 일본인의 교육에 관한 「학교 조합령」도 발포되었다. 그리고 1909년 12월 부산 거류민단에 의해 부산에서도 부산학교조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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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일보』의 기사를 계기로 발생한 필화 사건. 『부산 일보』는 1905년 부산에서 창간하여 발행된 대표적인 일본인 신문이다. 일본의 우월주의적인 시각을 가졌던 『부산 일보』는 일제 강점기 여러 번에 걸쳐 조선인을 모욕, 무시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였다. 1920년 6월 16일 『부산 일보』는 ‘세화(細話)’ 란에 ‘대구다화(大邱多話)’라는 제목으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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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의 전기, 전차, 가스의 부영(府營)을 주장한 주민 운동. 일제 강점기 전력 공급과 관련한 문제 가운데 가장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이른바 전기 부영화 운동이었다. 서울의 경우 경성전기주식회사가 공급하는 전기 요금이 너무 고가였기 때문에 전차의 운영에서도 폭리를 취하였다. 경성전기주식회사의 주주는 거의가 도쿄[東京]에 거주하는 일본인이고 조선인 소유 주식 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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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부터 1968년까지 부산 시내를 운행한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 전차는 힘을 동력으로 하여 궤도 위를 달리는 차량으로, 부산에 처음 등장한 근대적인 교통수단이다. 전기는 1885년 말 경복궁(景福宮) 건청궁(乾淸宮)에서 점등식을 거행한 이후, 1902년 부산전등주식회사(釜山電燈株式會社)가 현재의 부산광역시 광복동 거리에 가로등을 밝히면서 도입되었다. 1915년 부산우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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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주택 조합. 1920년대 후반부터 부산부 내의 인구가 현저하게 증가함에 따라 점점 주택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되었다. 주택 부족은 자연스럽게 임대료의 높은 상승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부산부민은 물론 타 지방에서 이주해온 자 등이 겪는 주택난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러한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주택조합이 설립된 것이다. 1927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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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 광복 이전까지 부산광역시에 남겨진 일본인 소유의 주택. 적산(敵産)이란 본래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그들이 남겨놓고 간 기업, 토지 그리고 주택을 비롯한 각종 부동산과 동산류를 적산이라고 불렀다. 적산 가옥은 이들 가운데 일본인이 소유하였던 주택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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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후 부산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 강요된 신사(神社)에 대한 참배. 중일 전쟁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부정하고, 이른바 황국 신민화를 통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신사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일제는 국권 강탈 후 신사 사원 규칙을 발표하고 서울에 조선 신궁(朝鮮神宮)을 세우는 한편 각 지방에 신사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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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설립되었던 신사. 초량 왜관에서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경제적 부의 축적을 기원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신사(辨天神社)[벤텐진자]는 변재신사(辨才神社)[벤자이진자]라고도 부르며, 1678년 3월 초량 왜관의 개관과 함께 설립되었다. 그 후 1763년 대관(代官) 귤자윤(橘滋胤)[타치시게타네]의 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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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설치되었던 신사. 신사(神社, 혹은 神祠)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찍이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 종교와 습합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천황제 근대 국가를 떠받치는 중요 이데올로기적 지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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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설치되었던 신사. 신사(神社, 혹은 神祠)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찍이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 종교와 습합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천황제 근대 국가를 떠받치는 중요 이데올로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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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설치되었던 신사. 신사(神社, 혹은 神祠)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찍이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 종교와 습합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천황제 근대 국가를 떠받치는 중요 이데올로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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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에 있던 개항기 일본인들의 신사. 용두산 신사(龍頭山神社)는 개항 이후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정신적 안식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군국주의를 전파하는 침략 이데올로기의 발신지였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대를 이해하는 역사 교육의 살아 있는 현장이다. 신사(神社)는 일본의 신토 신앙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신을 모시는 제사 시설로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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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중구 용미산에 설립되었던 신사. 신사(神社)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찍이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 종교와 습합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천황제 근대 국가를 떠받치는 중요 이데올로기적 지주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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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동래부 관기 출신의 기생들이 조직한 단체. 동래권번은 옛 동래부 소속 기생들이 그들 간의 결속을 다지고 공동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1910년 이운초(李雲初)를 대표자로 설립하였다. 1912년에 명칭을 동래예기조합(東萊藝妓組合)으로 바꾸고 동래읍 교동[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부산지방기상청 부근]에 자리 잡았다. 동래예기조합은 1937년 중일 전쟁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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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설립된 기생 조합. 봉래권번은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과 초량 일대에 객주업이 성행하자 이를 대상으로 영업하기 위해, 대한제국 시절 동래부에서 군관향수를 지낸 영주동 출신 조씨가 설립하였다. 봉래권번은 원래 1915년경 영주동과 초량에서 출발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과거에 대구의 경상 감영과 동래부 관기 출신이 많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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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 설립된 권번 회사. 주식회사 부산권번은 1924년 7월 30일 부산 지역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요리옥(料理屋), 예기, 권번 관계에 대한 금융업과 이에 따른 모든 부대 업무를 권번 조합을 통해 경영하고자 중부이팔(重富伊八)을 대표로 하여 설립되었다. 주식회사 부산권번은 부산 지역에 진출한 일본인들에 의해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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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부산 지역에 처음 만들어진 일본식 집중적 성매매 지역. 유곽은 일본인들이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일본인 거류지에 설치한 일본식 성매매 업소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고, 유교 등의 영향으로 엄격한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하여 근대적인 형태의 퇴폐적인 전업형 성매매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기생, 축첩 등의 성욕 충족의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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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에 생긴 부산의 대표적인 유곽. 1900년대 좌수토원(佐須土原) 유곽[현 중구 부평동 족발 골목]은 일본인 거류지 관외 지역에 있었다. 일본인의 증가로 일본인 주거지가 부족하게 되어 동쪽 해안으로는 매축이, 서쪽으로는 시가지가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일본인 거류지 관외에 위치했던 좌수토원 유곽이 시가지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에 유곽의 격리와 풍기문란을...
지역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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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부평동 일대에서 진행된 방파제 축조 및 해안 매축 공사. 남항 개발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사회를 중심으로 지역 경제 발전의 관점에서 장기간 추진되어 온 숙원 사업이었다. 조선총독부 주도하에 상업항이자 군사 항으로 신속하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던 북항[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대]에 비해 어항의 기능을 가진 남항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답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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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과 동구 초량동을 연결한 해면 매축 공사. 1902년에서 1909년까지의 북빈 매축 공사[부산 북항 매축 공사]로 확보한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일대와 동구 초량동 사이에는 해발 약 9m의 영선산(營繕山)과 해발 약 36m의 영국영사관산(英國領事館山)[영국이 조차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가로막고 있었다. 북빈 매축 공사로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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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1939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및 남구 우암동 부근 바다를 매축한 공사. 대륙으로의 전진항인 부산 지역은 개항 이후 점차 활성화되었지만, 초기 부산 지역의 도시 공간은 용두산 부근으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부산 지역의 활동 공간을 북동쪽으로 확대하려 하였다. 부산진 매축 공사(釜山鎭埋築工事) 이전에 이미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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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1908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던 부산해관 앞바다를 매축한 공사. 개항 이후 교역의 확대로 부산해관 부지의 확대가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해관장인 하문덕(何文德)[Robert Hart, 영국인]의 주도로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釜山海關敷地埋築工事)가 진행되었다. 1883년 6월 재조선국 일본 인민 통상 장정(在朝鮮國日本人民通商章程)의 체결로 188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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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08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일대 바다를 매축한 공사. 개항 후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새로운 생활 공간의 확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위한 근거지 확보, 나아가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빈 매축 공사(北濱埋築工事)가 시행되었다. 용미산[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자리, 현 부산 롯데 월드 예정지]을 기준으로 북쪽을 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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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대교동·남항동 일대에서 진행된 매축 공사. 원래 ‘바람이 기운차게 일어나는 포구’라는 의미로 풍발포(風發浦)라고도 불렸던 대풍포는 1900년대 초부터 일본 어선들이 몰려들면서 변화하게 되었다. 3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어선들이 큰 풍랑을 피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던 영도 대풍포는 배를 정박하기 좋았고 왜관이 가까이 있어 급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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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초량과 일본인 거류지 사이에 있는 영선산과 영국영사관산 착평 공사. 부산항 주변의 지형은 평지보다 산이 많았다. 용두산 주변의 일본인 거류지와 조선인 마을인 초량 사이에는 해발 50m의 영선산과 영국영사관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산 아래로는 절벽과 바다가 맞닿아 있어 도로를 만들 수 없는 지형이었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었으나 이 열차는 초량을 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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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과 감만동에 해당하는 적기만 일대에서 진행된 매축 공사. 적기만 매축은 1920년대 중반 부산진 매축 계획의 한 부문으로 매립 면허권이 부여되었다. 매립권을 받았던 부산진매축주식회사는 부산진과 적기만의 약 115만 7000㎡를 매립하여 항구와 연계된 임해 공업 지대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의 장기 불황과 대공황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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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구포·사상·김해 지역 사이의 동서 연안에 축조된 제방. 원래 낙동강 하류 지역의 본류는 김해군 대동과 대저 사이를 흐르는 서낙동강으로, 가락동을 지나 녹산동 쪽으로 흘렀으나, 낙동강의 대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상류 쪽 대동 수문을 설치하여 강의 흐름을 구포, 사상 쪽으로 돌리면서 동서 양안(兩岸)의 강폭을 넓히고 제방을 쌓았다. 1931년 축조하기 시작한 제방은 완공되기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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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벌인 대규모의 토지 조사 사업 중 부산 지역 조사 사업. 토지 조사 사업은 1910~1918년에 일제가 식민 통치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실시한 사업으로, 부산에서는 1911년 토지 측량이 끝나고 전개되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토지 조사 실시 계획을 추진한 것은 1905년 통감부 설치 이후였다. 탁지부 사세국(司稅國)에서 관장하던 토지 조사에 관한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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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시행된 민족별, 산업별 회사 통제 법령. 조선은 식민지로서 일본에 필요한 식량과 원료를 값싸게 공급하는 곳이어야 하였으며, 동시에 그들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는 공간이어야 하였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은 식량과 원료를 생산하는 제1차 산업을 중시해야 하였고, 공산품의 생산은 제한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개항 이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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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추진된 공업화. 부산에는 개항기부터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하사마 후시타로[迫間房太郞] 등이 부산으로 건너와서 부동산과 여관업, 정미업, 미곡 수출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였다. 강점 이후에는 경남은행[1912], 부산상업은행[1913], 조선화재해상보험[1922], 부산미곡증권신탁[1922] 등 금융 보험업을 비롯하여 조선전력[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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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을 포함한 전국에 공포된 어업 법령. 조선총독부는 1911년 6월 일본의 어업법을 모방한 전체 23조로 구성된 「어업령」을 공포하여 1912년 4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어업 자본의 활발한 침투 등으로 어업이 크게 확장되고 사회적·경제적 상황 역시 달라져 기존의 간단한 법률로는 수산업을 규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어업령」을 개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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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진열하고 매매를 장려하던 기관. 1915년 경상남도 어대전기념사업(御大典記念事業)의 일환으로 설치된 경상남도 물산진열관은 당시 ‘반도에서 가장 기후가 좋아서 농산과 수산, 임산이 풍부한 경상남도의 물산을 망라’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경상남도 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진열하여 선전하는 한편 이에 대한 수요를 야기해 상품의 판로를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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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었던 백화점. 미나카이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최초이자 최대의 백화점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타기 위해 백화점에 가기도 하였다. 해방 후까지도 부산 사람들은 백화점에 간다는 말을 ‘미나카이 간다’로 표현할 만큼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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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부 초량동에서 설립된 정미소. 1935년에 신덕균(申德均)이 부산부 초량동[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평정미소로 설립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에 물자 통제가 시작되자 쌀이 통제품에 포함되었으며, 정미소가 통합 운영되었다. 이때 태평정미소를 비롯한 조선인의 4개 정미소와 일본인의 3개 정미소가 통합되어 부산합동곡산으로 되었다. 1946년에 청수정미소(淸水精米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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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었던 근대 민족계 보통 은행. 경남은행(慶南銀行)은 은행 금융업을 통한 사업의 확대와 한국인 기업인의 사업 기반을 위한 금융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09년 2월 11일 구포저축[경남은행 전신]이 구포 지역의 물산 객주(物産客主)[장사치를 집에 머물러 묵게 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소개 또는 흥정을 붙이는 일을 주로 함]와 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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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8월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추종엽, 윤병준 등이 설립하였던 지방 금융 기관. 동래은행 제1기 설립 보고서에 따르면 “원활한 금융을 통해 산업 발달에 기초를 제공하고, 동래 지역의 경제 발전에 동래은행 스스로 원동력이 되고자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래은행 설립의 주된 목적이다. 동래은행은 저축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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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서 근대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운영된 보통 은행. 부산상업은행(釜山商業銀行)은 부산 지역에서 은행 금융업 사업을 확대하고자 설립되었다. 1913년 3월 6일 부산부 금평정 17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일부]에 일본인 상공업자들과 이규직(李圭直) 등 한국인 실업가가 부산상업은행을 설립하였다. 1913년 6월 7일 마산부 진해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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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었던 근대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한국인 인쇄업체. 경남인쇄(慶南印刷)는 인쇄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6년 5월 25일 부산부 초량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에 경남인쇄가 설립되어 1923년 부산부 영주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으로 이전하였다. 1925년 인쇄공조합 집행위원장이었던 김칠성(金七星)이 파업 쟁의를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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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있었던 근대의 운수 회사. 경남자동차(慶南自動車)는 자동차 운송업을 위해 설립되었다. 1931년 11월 7일 동조정평(東條正平)에 의해 경남자동차가 설립되었다. 공칭(公稱) 자본금과 불입 자본금이 모두 100만 원에 이르렀다. 1933년 영남자동차, 경남합동자동차를 합병하였다. 1935년 부산서부자동차를 합병하였다. 이로써 창녕, 밀양, 합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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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신탁회사와 함께 부산 지역 신탁업계의 주요 기업.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는 1922년 3월 금융 신탁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전시 호황과 함께 1918년 3월 30일 조선총독부 법령 제28호로 「조선은행법」이 개정되어 ‘신탁의 업무’라는 영업 과목이 추가된 것이 금융 신탁업 활성화의 계기였다.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는 1920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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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수산물 취득·가공·유통업 분야에서 부산 지역을 대표한 일본인 경영 기업. 부산수산회사는 1889년 조선의 수산물을 매집하여 일본에 수출할 목적으로 당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자본가 10명이 발기하여 설립하였다. 자본금은 5만 원으로 이중 설립 발기인들이 절반을 부담하였다. 발기인에는 당시 부산 지역 경제계를 주도한 일본인 자본가 중에서도 ‘1차 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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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 지역 신탁 업계의 주요 기업. 1920년 2월 금융신탁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한 전시 호황과 함께 1918년 3월 30일 조선총독부 법령 제28호로 「조선은행법」이 개정되어 ‘신탁의 업무’라는 영업 과목이 추가된 것이 금융신탁업 활성화의 계기였다. 부산신탁회사는 1922년 설립된 부산미곡증권신탁주식회사와 함께 1920년대 부산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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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남항 매축 공사를 담당하였던 일본인 토목 회사. 부산축항합자회사는 남항 매축 공사를 실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부산축항합자회사는 일본인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가 사장이 되어 1928년 2월에 공칭 자본금 50만 원과 불입 자본금 50만 원으로 설립되었다. 연도는 불분명하나 이후 소유주는 일본인 비도(飛島)에게 넘어갔다.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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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부 부산면에서 설립된 고무신 제조업체. 일영고무공업소는 고무신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3년 8월에 김진수가 부산부 부산면[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688번지]에서 일영고무공업소로 설립하였다. 1934년에 삼화호모(三和護謨)에 흡수 합병되었다. 일영고무공업소는 주요 사업으로 고무신을 생산하였다. 1930년에는 종업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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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개최된 국내 최초의 수산업 박람회. 1910년대 수산업은 일본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여기에 부응하여 조선총독부와 수산업자들은 관민 합작으로 보다 체계적인 수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일환으로 박람회인 조선 수산 공진회를 개최하였다. 조선 수산 공진회 규칙 2조를 보면 “수산에 관한 제반의 물품을 진열하고 비교 심사를 하여 사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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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광역시에서 설립된 견직물 제조업체. 조선견직은 인조 견직물(絹織物)을 제조하여 판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7년에 일본인 신류조가 세운 조일(朝日)견직[아사히견직]이 조선견직의 전신이다. 조일견직은 당시로는 조선 최고의 설비를 갖춘 인조 견직물 회사였다. 1940년에 전시 체제가 강화되자 생사를 원료로 한 군수용 피복과 낙하산 천 등의 군수 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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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던 일제 강점기의 해운 회사. 조선기선주식회사(朝鮮汽船株式會社)는 1920~1930년대 부산 등 남해안의 연안 운송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한 해운업의 호황으로 많은 소규모 해운업자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일대의 연안 항로에서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연안 항로를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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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던 부산진 매축 제1기 공사를 담당했던 토목 회사. 조선기업주식회사는 1912년 부산진 매축을 위해 설립되었다. 자본금은 300만 원이었고, 주로 일본 나고야[名古屋]와 기후[岐阜] 지역 자본가들이 투자하였다. 일본 본토 자본가들이 부산진 매축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당시 부산진 매축권을 가지고 있던 토목 청부업자 하야카와 쇼사쿠[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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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었던 해운업체. 1925년 2월 부산부 대창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서 조선사선 이 설립되었다. 조선사선 은 공칭 자본금(公稱資本金)이 100만 원에 이르고, 불입 자본금이 55만 원이었다. 설립 연도와 위치, 자본금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기선 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조선우선, 조선우선회사, 통영해운, 산리회조점 조통기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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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대창동에 있었던 금은, 동철, 석탄, 기타 광석 채굴 업체. 1924년 9월 조선산금흥업이 부산부 영정 1정목 37[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창동 1가]에서 설립되었다. 대표는 소천뇌태(小泉雷太)였다. 조선산금흥업은 주요 사업으로 금은, 동철, 석탄, 기타 광석 채굴 및 부대업을 영위하였다. 공칭 자본금(公稱資本金)과 불입 자본금이 모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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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부 서면에서 설립된 양산 제조업체. 1941년에 이연재(李年宰)가 부산부 서면[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조선양산으로 설립하였다. 1947년에 부산부 남포동에 미진상회를 설립하여 무역업과 해운업을 하였다. 이윤이 두 배 이상 남는 소맥분 수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적산을 인수하였다. 1952년에 중석불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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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지점[이후 본점]을 두었던 전기·가스 관련 일본인 기업체. 조선와사전기는 1910년 일본 귀족원 의원이었던 마츠다이라 마사나오[松平正直] 등이 부산 지역의 전차 운행, 독점적인 전등 가설 및 가스[와사(瓦斯)] 공급을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0년 4월 24일 마츠다이라 마사나오 외 27명이 발기하여 전차와 전등, 가스 사업의 특허 출원을 부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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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설립된 조선운송에 기원을 둔 국내 소운송 통합 기업체. 조선운수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국책 사업으로 철도와 목적지를 연결하는 육상 운송을 통합하여 설립된 조선운송을 발전시켜 육운과 해운[항만 운송] 모두를 통합한 전국적인 운송 사업을 독점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조선운수는 원래 1930년 국내 소운송업을 통합하여 설립한 조선운송의 해방 후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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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도구 남항동 3가에 있었던 섬유 로프 생산 회사. 조선제망은 일본의 마에오카제망[前岡製網, 주식회사]이 조선으로 진출하여 마닐라로프와 면사·그물을 생산·판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일본 오사카부 스이타시[大阪府 吹田市]에 본점을 두고 있는 마에오카제망은 1929년 9월 1일 자회사로 조선제망을 설립하였다. 조선제망의 자본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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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 5가에 있었던 선박 건조를 주로 한 일본인 기업. 조선중공업(朝鮮重工業)은 선박의 건조와 수리, 항공기, 기관차, 차량의 제조와 수리를 주된 업무로 하여 설립되었다. 1937년 7월 10일 조선중공업이 설립되었다. 1938년 국내 최초로 390톤급 철강 화물선을 건조하였다. 해방 이후 1945년 11월 말까지 조선중공업관리대책위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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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부 범일동에서 설립된 종이 상자 제조업체. 1937년 3월에 부산부 범일동[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조선지기로 설립되었다. 조선지기는 주요 사업으로 종이 상자를 제조하여 판매하였다. 일본의 전시 물품 보관 종이 상자와 약 보관 종이 상자를 제조하였다. 중일 전쟁 특수로 조선지기가 번창하였고, 이후 지류 무역업으로 사업을 확장, 부동산업 등으로 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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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 있던 연초 제조·판매 조합. 경남연초조합은 1919년 1월 부산부에 거주하고 있던 연초 제조·판매업자 정상다문태(井上多聞太)의 주도로 설립된 경상남도 지역 재주 연초 제조·판매업자들의 조합이다. 소재지는 부산부 보수정 1정목[현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이며, 1921년 당시 조합장은 정상다문태였다. 경남연초조합은 연초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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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설립된 경상남도 지역 해조류 생산·판매업자들의 조합 경남해조수산업조합은 1917년 10월 부산에 거주하던 야마구치[山口] 출신 일본인 산본리길(山本利吉)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경상남도 지역 해조 수산업자들의 조합이다. 경남해조수산업조합은 해조품의 품격을 향상하고 그 생산성을 높이며, 신규 업자들을 지도하고, 가격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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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조직된 수산업 관련 조합. 일제 강점기 초기 조선에 살고 있던 일본인 및 조선인 어업자와 수산물 제조 판매업자로 구성된 조합으로, 부산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조선어업협회(朝鮮漁業協會), 조선통어조합연합회(朝鮮通漁組合聯合會), 조선해수산조합(朝鮮海水産組合)을 거쳐 조선수산조합(朝鮮水産組合)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수산조합은 수산업의 개량·발달과 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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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의 32개 어업 조합을 모아 부산 지역에서 출범한 어업 조합 연합회. 경상남도 어업조합연합회는 어업 자금의 원활한 융통, 위탁 판매와 공동 구입, 회보의 발행, 소속 조합의 업무 지도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더불어 경상남도 내 각 어업 시설의 개선과 어촌의 번영 및 어업의 발달을 도모하였다. 1931년 1월 14일~15일 이틀간 경상남도청 회의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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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에 있었던 해태 양식업자들의 어업 조합.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는 다양한 어업 기관이 설립되었다. 특히 1920년대에 낙동강 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해태(海苔)[김] 양식이 보급되자 이를 관리하기 위한 여러 단체가 설립되었다. 즉 낙동강 하류에 해태 양식장을 둔 동래군 사하면 낙동강해태어업조합과 동면다대어업조합, 김해어업조합[명지면어업조합]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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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어업권의 취득과 그 운용을 목적으로 설립된 어업인 조합. 부산어업조합은 1922년에 조선인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설립한 어업인 협동조합으로, 「어업령」 제16조에 의해 어업권의 취득과 운용, 또는 이에 관한 경제 혹은 구제에 필요한 시설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설립 당시 조합장은 도비우라[飛鋪壽一]이며, 조합원 636명 가운데 일본인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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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설립된 어민 조합. 절영도어업조합은 어획물의 공동 판매와 지선 어업권 획득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절영도어업조합은 부산 절영도에 거주하는 어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어민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어업 조합이었다. 절영도 어민들은 1915년 5월 13일 주갑(洲岬) 소천금팔(小川金八)의 집에서 창립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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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부에서 결성된 묘목 재배업자 및 판매업자들의 조합. 1915년 2월 7일 부산부의 명호루(鳴戶樓)에서 총회 후 결성된 묘목 재배업자 및 판매업자들의 조합으로, 1914년부터 관련 업자들로부터 조합 결성의 논의가 이루어지던 것을 경상남도청의 갈서(葛西) 기수의 주도로 창립하게 되었다. 당일 오후 6시부터 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참석자는 조합원 35명이었으며, 이들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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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설립된 미곡 개량 조합. 경상남도 미곡개량조합은 경상남도 각지의 미곡상 및 중매인, 기타 미곡 거래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미곡 및 그 포장의 개량을 도모하고 거래를 정확하게 하여 판로를 확장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총독부령으로 「미곡 검사 규칙」이 공포되고 전국 각지에 곡물 검사소가 설치됨에 따라 경상남도에서도 미곡의 품질을 개량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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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미곡 거래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조합. 1919년 설립된 부산곡물상조합은 부산부 대청정 1정목 35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초창기 조합장을 지낸 사람은 판전문길(坂田文吉)이었으며 부산거류민단과 부산학교조합, 부산상업회의소 의원을 역임한 부산의 중진이었다. 일찍부터 부산창고회사와 부산수산회사, 조선와사전기회사 등의 임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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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결성된 철물상들의 조합. 부산금물상조합은 일제 강점기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금물상(金物商), 즉 철물상(鐵物商)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6년 3월 설립 당시에는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의 부산상업회의소 내에 있었으며, 1917년에는 본정(本町)[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1926년에는 대창정(大倉町)[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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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제령 「금융조합령」에 의해 부산 지역에 설립된 금융 조합. 부산금융조합은 조합원의 금융 여건을 완화하고 경제 발달을 기도한다는 목적 아래 설립되었다. 부산금융조합에는 부산제1금융조합·부산제2금융조합·부산제3금융조합 및 부산서부금융조합 등 4개의 금융 조합이 있었다. 부산제1금융조합은 1919년 부산부 변천정(辨川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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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에 설치되었던 금융 조합. 부산서부금융조합은 부산부 부평정(富平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거주하는 조합원의 예금과 대출의 편의를 도모하고 부산부의 경제 발달을 기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서부금융조합은 1922년 11월 1일 부평정에 부산제1금융조합이 서부출장소를 설치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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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있던 금융 조합. 부산제1금융조합은 부산부 변천정(辨川町)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거주하는 조합원의 예금과 대출의 편의를 도모하고 부산부의 경제 발달을 기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9년 3월 11일 설립 인가를 받고, 4월 1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같은 해 6월 9일 목도(牧島)[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출장소를 설치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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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있던 금융 조합. 부산제2금융조합은 소속 조합원의 예금·대출의 편의와 부산부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9년 4월 1일 부산부 좌천정 436번지[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본소가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32년 2월 1일 부산부 초량정 378번지[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지소 업무를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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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 있던 금융 조합. 부산제3금융조합은 소속 조합원의 예금·대출의 편의를 도모하고 부산부(釜山府)의 경제 발달을 기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제3금융조합은 1919년 부산제1금융조합의 목도(牧島)[현 부산광역시 영도] 출장소로 설치되었다가 1922년 3월에 독립한 것이었다. 1922년 3월 25일 영업 인가를 받고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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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본부를 두었던 조선금융조합연합회의 경상남도 지부.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경남지부는 금융 기관 상호간의 자금 조절, 금융 업무 지도, 서민 금융 구제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18년 6월 「금융조합령」을 개정하여 자금 조절, 금융 업무 지도를 주 업무로 하는 금융조합연합회의 설립을 인가하였다. 1918년 11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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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기성 양복상들의 조합. 부산기성양복상조합은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기성 양복상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부산기성양복상조합은 1932년 2월 창립되었으며, 당시 소재지는 변천정(辨天町)[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이다. 기록에 의하면 1940년에서 1942년 사이에 해산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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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노초[갈대] 세공·제작·판매업자들의 조합. 부산노초세공제작판매조합은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노초 세공 및 제작업자, 그리고 판매상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부산노초세공제작판매조합은 1932년 7월에 창립되었으며, 당시 소재지는 미기재 되어 있어 알 수 없으나, 이후 기록에는 영선정(瀛仙町)[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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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2가에 설립된 유곽업 조합. 부산녹정유곽업조합은 1910년 녹정(綠町)[오늘날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2가]의 유곽업 경영자들이 같은 업종 종사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부산의 최초 집창지 좌수토원(佐須土原) 유곽은 일본인 전관 거류지인 중구의 서쪽에 있었는데, 일본인 거류지가 서쪽으로 확장되면서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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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당분상(糖粉商)들의 조합. 부산당분상조합은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당분상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의 추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8년 3월에 창립되었으며, 당시 소재지는 영정(榮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창동]이었다. 조합원 수는 6명이었다. 창립 당시 대표자는 평야종삼랑(平野宗三郞)이었으며, 1932년부터는 내등팔장(內藤八藏)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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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에 있던 맥주 판매상들의 조합. 부산맥주판매조합은 부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맥주 판매상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부산맥주판매조합은 1913년 9월에 창립되었으며, 그 소재지는 본정(本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이다. 조합원 수는 11명이며, 대체로 일본인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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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던 부산 지역 거주 수입상들의 조합. 부산수입상조합은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수입상들의 상호 부조와 무역 촉진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부산수입상조합은 1909년 10월 부산상업회의소 내에 설립된 부산 지역 수입상을 대표하는 조합이다. 중간 기착지인 부산에 거주하는 무역상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일본과 조선 간 무역을 발전시키려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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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결성된 신문 배달부 조합. 식민 지배로 들어가면서 산업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였으나 이들의 노동 조건은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3·1 운동을 경험하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지고 노동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과 더불어 1920년대에 노동 운동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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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서민 금융 기관. 부산신용조합은 부산에 있는 중소 상공업자의 금융을 원활하게 하고 불량 금융업의 출현을 저지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신용조합은 원래 부산제1금융조합 이사 산천정(山川定)의 제창에 의해 1925년 4월 설립되었다. 당시 ‘서민 금융 기관’으로 자처하던 기구는 금융 조합 외에 무진회사(無盡會社) 등이 있었지만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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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부산 영도구 지역에 설립된 동업 조합. 부산영선동대좌부영업조합(釜山瀛仙洞貸座敷營業組合)은 영도의 유곽업 영업자들이 동 업종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13년 영도[절영도] 영선동에 부산영선동대좌부영업조합이 설립되었는데, ‘목도유곽조합’ 또는 ‘목도대좌부조합’이라고 불리었다. 이는 현재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과 봉래동[당시 모두 영선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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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원예업자들이 조직한 동업 조합. 부산원예조합은 부산 거주 식물·생화 생산 판매업자 및 정원업자들이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부산원예조합은 1933년 9월 3일 오후 6시 부산부 토성정(土城町) 신림(神林)의 집에서 발회식 및 간담회를 개최했으며 당시 조합원은 모두 22명이었다. 조합 사무실은 초대 조합장인 신고민삼(神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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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설립된 수산업 관련 업자들의 조합. 부산제일산업조합은 수산물의 가공과 판매, 기타 어구의 구매 등을 원활히 하여 조합원들의 산업과 경제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제일산업조합은 1928년 1월 19일 부산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부산부 남빈정(南濱町) 1정목[현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1가]에서 업무를 시작하였다. 설립 당시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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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조선(造船)·철공업자들의 조합 부산조선철공업조합은 목도(牧島)[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일대 조선업자 및 철공업자들의 상호 부조와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조선철공업조합은 1932년 1월 조직되었다. 부산조선철공업조합이 설립되기 전에는 조선업자만의 단일한 조합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조선업과 조선단치공업(造船鍛治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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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있던 해산물 취급업자들의 조합. 부산중요해산물조합은 해산물 취급과 판매 업무의 원활을 기하고, 기타 수산업에 관련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부산중요해산물조합은 1913년 4월 남빈정(南濱町) 1정목[현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서 설립되었다. 부산중요해산물조합은 설립 당초에는 부산의 해산물 취급업자들의 판매를 돕는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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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타뢰망 어업자들의 이익 단체. 부산타뢰망조합은 타뢰망 어업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영업상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타뢰망조합은 1934년 8월에 설립되었다. 이전까지 부산에는 애지조합(愛知組合), 목도어우회(牧島漁友會), 삼중조합(三重組合), 부민정조합(富民町組合) 등 4개의 타뢰망 조합이 있었는데, 이들을 통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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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있던 해산물 위탁 판매상 조합. 부산해산상조합은 원활한 해산물의 위탁 판매를 목적으로 부산의 해산물 중간 상인들이 설립한 조합이다. 부산해산상조합의 창립은 1915년이지만 그보다 전인 1910년 적판정일(赤坂正一) 외 14명이 창립한 부산해산물중매상조합과 1911년 무구사길(武久捨吉) 외 11명이 창립한 부산중요해산물문옥조합이 그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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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부평정 시장에 있었던 공동 구매 조합. 부평정시장 식량품구입조합은 1932년 7월 29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설 시장이었던 부평정 시장의 건물(乾物) 상인들이 모여 설립하였다. 이들은 식료품을 공동으로 구입하여 가격을 안정화하고자 하였다. 창립 위원은 복전수길(福田秀吉)·강등가조(江藤嘉助)·곡전중일(谷田重一)·원목영이(元木榮二)·하기승삼랑(河崎勝三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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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 있던 대중국(對中國) 수산물 수출업자 조합. 조선수산물지나수출조합은 일제 강점기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대중국 수산물 수출상들의 상호 부조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수산물지나수출조합은 1924년 8월에 창립되었으며, 당시 소재지는 본정(本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이었다. 1934년 당시 조합원 수는 45명이었으며...
민족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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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지역에서 자본주의와 의회 민주주의 중심의 민주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진행된 항일 독립운동의 한 갈래. 일제에 의해 가장 먼저 개항된 탓에 근대 문물과 사조를 수용하는 것이 빨랐던 부산은 개화 운동이 활발하여 독립협회 경남지부가 설치된 것을 비롯하여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태극학회, 교남교육회 등의 자강 운동 단체들과 연결되었다. 1907년 부상항상무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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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등에서 신사 참배 강요에 반대하고 일어난 기독교계의 반일 저항운동. 한국 교회에 대한 일제의 박해는 다양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신사 참배 강요였다. 일제는 내선 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 정책(皇民化政策)의 일환으로 신사(神社, 神祠)에 정기적인 참배를 강요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의 강요였으므로, 심각한 신교(信敎)의 자유에 대한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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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초기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전개된 불교 개혁 운동이자 민족 운동. 구한말 한국의 승려들은 일제의 사찰 정책이 한국 침투에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고, 심지어 1911년 「사찰령」이 조선 불교를 중흥시킬 것이라 여겼다. 이런 가운데 1910년 10월 6일 원종의 대종정인 이회광이 일본의 조동종과 한국 불교의 통합을 꾀하는 조동종 맹약을 체결한 사실이 알려지자 각처에서 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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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1월 부산 지역에서 육영을 목적으로 결성된 민족 운동 단체.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는 3·1 운동으로 민족 운동의 열기가 크게 드높아진 분위기 속에서, 3·1 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한 청년 세대가 그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 독립과 민족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난한 청년 인재에게 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고자 설립되었다. 안희제(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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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지역에 있던 항일 비밀결사 단체. 기장광복회는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국외 독립운동 단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언제 결성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권상중(權商重), 박세현(朴世鉉), 박인표(朴仁杓), 최신언, 이조원 등 기장의 유지를 중심으로 지역 청년들이 가담했고, 또 양산의 윤현태, 부산의 안희제(安熙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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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경에 결성되어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한 비밀 결사. 대동청년단은 국권 회복을 위하여 군자금을 조달하고 인재를 육성하며, 국내외 독립운동가들과 연락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09년 10월 경 안희제(安熙濟), 서상일(徐相日), 이원식(李元植), 남형우(南亨祐) 등 경상남도 지역의 계몽 지식인을 중심으로, 17세에서 30세 미만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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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 비밀 결사. 대붕회는 1910년 한일 합병 소식을 들은 부산상업학교 변상태(卞相泰), 최기택, 성학년 등 6명이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현재 대붕회의 정확한 활동 내역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학생 비밀 결사의 경우 보통 교내 독서회 조직, 강연회 등을 통한 사상 전파나 국내에 잠입한 애국 지사나 독립 단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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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 단체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의 부산 지역 지부. 1919년 3·1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혈성단과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대한민국 애국부인회가 결성되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부산지부는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항일 독립 운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각 지방의 부, 군에 지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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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부산 동래 지역에 설립된 여성 청년 단체. 동래불교여자청년회는 1922년 7월 30일 동래 지역 여성들의 지식 계발을 목적으로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장소순을 발기인으로, 동래불교청년회의 후원으로 창립되었다. 동래불교여자청년회는 교육부, 포교부, 음악부, 교풍부, 문예부, 평의부, 이재부 등 의 부서를 두고 활동하였다. 동래 지역 부인들의 문맹을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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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안희제가 중심이 되어 부산 지역에 설립한 민족 기업. 백산무역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 국내 독립운동 기지 역할과 독립운동 자금 공급을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9월에 부산부 본정 3정목[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10-2번지]에서 안희제(安熙濟)가 이유석(李有石)·추한식(秋翰植) 등과 합자 회사인 백산상회를 설립하였다. 1919년 1월 14일에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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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부산에서 안희제(安熙濟)가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회사. 백산상회는 구국 운동도 경제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백산 안희제[1885~1943]가 국외 독립운동가와의 연락망을 확보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독립운동 기지로 설립하였다.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 대다수는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활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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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유지들이 조선인의 생활과 교육,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한 사회단체. 부산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은 3·1 운동 이후 고양된 민족의식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사회 경제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것이 부산예월회(釜山例月會)이다. 부산예월회는 1919년 11월 결성된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와 함께 1920년대 초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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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부산에서 설립된 여성 항일 비밀 결사. 1910년대 부산의 여성 항일 운동은 항일 비밀 결사였던 송죽회 부산분회의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송죽회는 1913년 9월 평양의 숭의여학교 기숙사에서 숭의여학교 교사 황애덕(黃愛德)[이칭 황에스터], 이효덕(李孝德) 및 숭현여학교 교원 김경희(金敬熙), 교회 부인 안정석(安貞錫) 등 20여 명의 여성이 송(松) 형제로 뭉치면서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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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자산가층이 참여한 비밀 결사 조직. 조선국권회복단은 단군(檀君)을 모시며 국권 회복 운동에 매진하고, 국내외 독립 운동을 연결하여 대규모 항일 운동을 전개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항일 비밀 결사이다. 조선국권회복단은 1915년 달성친목회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서상일, 이시영 등이 경상북도의 한학자, 지식인, 자산가 등을 포섭하여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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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부산에서 조직된 조선물산장려회의 동래 지부. 조선물산장려회 동래지부는 1923년 2월 5일 국산품 애용을 통해 민족 자본을 육성하여 일본으로부터 조선 경제를 자립시키고자 설립되었다. 1923년 1월 20일 서울에서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자, 부산에서도 동래청년회를 중심으로 하여 불교청년회, 여성청년회 등이 연합하여 조선물산장려회 동래지부[동래물산장려회]를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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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10일 부산 범어사에 설립된 불교 단체. 조선불교청년회 범어지회는 1920년 6월 20일 한용운(韓龍雲)을 주축으로 발족된 조선불교청년회의 항일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부산 지역에 확대 발전시키기 위하여 1922년 9월 10일 설립되었다. 조선불교청년회는 일제의 조선 사찰 장악을 위해 제정된 「사찰령」 철폐 운동 및 불교계의 통일 기관 설립을...
사회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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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1919년 3·1 운동 후 봇물 터지듯 결성되었던 각 지역의 청년회는 1922년경 대개 침체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때 민족 운동의 새로운 방도로서 사회주의 이념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사회주의 이념은 운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나 특히 청년 운동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20년 서울에서 결성된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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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부산 기장 지역의 여성들이 근우회의 지회로 설립한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 기장지회는 여성의 단결과 의식 훈련을 통해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고 나아가 반(反)제국주의 반(反)봉건 운동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기장여자청년회와 기장정진청년회 여자부가 발전적으로 해체하면서, 1928년 7월 14일 근우회 동래지회 기장분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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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부산 동래 지역 여성들이 근우회의 지회로 설립한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 동래지회는 여성의 단결과 의식 훈련을 통해 여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고, 나아가 반(反)제국주의 반(反)봉건 운동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근우회 동래지회는 1928년 5월 19일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동래여자청년회를 해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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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 기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노동 운동 단체. 기장노동혁신회는 기장 지역 무산대중의 권익 확보를 위한 통합 단결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2년 11월 8일 기장 유지들의 발의로 동부리 노동 야학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임원으로는 회장 권호창(權皓昌), 총무 오신근(吳信根), 덕육부 위원 김생수(金生水), 지육부 위원 겸 서기 박일형(朴日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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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9월 동래소년동맹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반제 독립운동 단체. 동래반제전위동맹은 기관지 『적기 뉴스』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 절대 반대, 일본 제국주의 타도, 조선 독립 등을 주장하였다. 1931년 11월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여 부산 시내에 반제 격문 1,500매를 살포한 것을 비롯해, 1932년 1월에는 부산 지역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감행코자 반전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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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던 좌우익 세력 합작 항일 단체. 신간회 기장지회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와의 결합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각성과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 배격을 강령으로 내걸고 조선 민족의 경제적·정치적·민족적 해방 실현 등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신간회가 창립되고 나서 전국 각지에 군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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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통일 전선체로서 결성된 사회 운동 단체. 1927년 2월 비타협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세력의 민족 협동 전선으로 신간회가 출범하자 전국에 걸쳐 부군(府郡) 단위의 100여 개의 지회가 설립되었다. 부산 지역에서도 1927년 7월 30일 부산 청년 동맹 회관에서 설립 대회를 열고 신간회 부산지회를 설립하였다. 종래의 파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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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부산 동래 지역에서 설립된 여성 사상 단체.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1925년 부산의 동래 지역에서도 수영여자청년회, 구포여자청년회와 같은 무산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 운동 단체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동래여자청년회, 동래불교여자청년회, 기장여자청년회 등 계몽 운동을 위주로 하던 기존의 단체와 함께 1925년 11월 동래청년연맹에 가입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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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있던 사회주의 단체. 혁파회(革波會)는 사회주의 사상의 연구·보급과 사회 운동의 사회주의화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혁파회는 1926년 1월 4일 동래군 동래면 청년 사회주의자 9명이 복천동에서 모여 현대 경제 조직과 사회 과학의 학술적 연구를 목표로 창립하였다. 창립 당시 위원은 서무부 박문희(朴文憙)·유수준(兪守濬), 도서부 김철...
청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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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청년 단체들의 민족 운동. 부산 지역 청년 운동은 3·1 운동을 전후하여 부산진, 고관(古館), 초량, 영주동, 영도, 부민동, 아미동 등지에서 활동하던 청년회, 또는 구락부 형태의 7개 청년 단체들이 1920년 11월 말 ‘부산청년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부산청년회는 1920년 12월 청년 운동의 전국적 조직체로서 창립된 조선청년회연합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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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의 구포예배당에서 결성한 기독교 계열 청년 단체. 1925년 8월 9일 오후 9시 구포예배당에서 박치종(朴致宗)의 사회 하에 구포기독교면려청년회 창립 대회를 개최하고 오후 11시에 폐회하였다. 창립 목적을 명시한 기록은 현재까지 찾아볼 수 없으나, 단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종교적 목적과 함께 당대 청년회의 공통점인 수양 단체로서의 성격도 가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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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 기장 지역에서 항일 운동을 한 사회주의 청년 운동 단체. 기장정진청년회는 1920년대 초에 확산되었던 실력 양성론을 사상적 기반으로 한 청년 운동을 극복하고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운동을 촉진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기장청년회가 해체되면서, 1925년 3월 기장정진청년회가 창립되었다. 1926년 12월 당시 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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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지역에 있던 청년 운동 단체. 기장청년회는 부산 기장 지역 청년들에게 신사상을 고취하고 불합리한 제도 개선 등을 주도하면서 청년 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 창립되었다. 기장청년회의 결성은 기장기독청년회와 기장여자청년회를 중심으로 문화 운동적 성격을 띠던 기장 지역 청년 운동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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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지역에 있던 청년 운동 단체. 동래청년동맹 기장지부는 청년 운동을 무산 계급 운동에서 전민족적 운동으로 확대하고, 모든 청년 단체를 지역적 단일 청년 동맹으로 재편성하여 청년 운동의 대중적 기반 확대와 운동의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7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은 새로운 운동 방침에 따라 ‘1개 지방 1개 동맹’주의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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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 동래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운동 연합체. 동래청년연맹은 1920년대 초반 문화 운동에 한정된 청년 운동을 혁신하고 동래군 내 각 청년 단체의 대동단결된 조직을 결성하여 운동 전선의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타협적 민족 운동을 배격하고 혁명적 민족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20년대 전반 사회주의 청년 운동의 전국적 확산으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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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설립된 청년 운동 단체. 동래청년회는 1922년 설립되어 동래 지역 청년 운동의 중심 단체로 역할하다 1928년 동래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해산하였다. 동래청년회는 청년 운동을 활성화하고 신흥 사상의 기치 하에서 대중 본위의 신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동래청년회는 1922년 1월 3일 동래청년구락부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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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청년 운동을 주도했던 청년 단체. 부산청년회는 1920년대 부산 지역 청년 운동의 중심 조직으로 물산 장려 운동, 도항 노동자 권익 옹호, 조선인 교육 강화 등 지역의 여러 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민족 운동을 고취시킨 청년 단체이다. 3·1 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부산진, 고관(古館), 초량, 영주동, 영도, 부민동, 아미동 등지에 있었던 친목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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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반기 부산청년회 등의 청년 단체들을 지도한 전국적 규모의 청년 조직. 조선청년회연합회는 사회 혁신, 지식 광구(知識廣求), 건전한 사상으로 단결, 덕(德)의 존중, 건강 증진, 산업 진흥, 세계 문화 공헌 등의 7대 강령 아래 1920년 12월 1일 전국의 120여 개 청년 단체들이 참가하여 결성되었다. 3·1 운동 이후 교육과 산업을 일으켜 조선의 독립을...
노동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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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노동자 계급이 전개하던 조직적인 활동. 일제 강점기 노동 운동은 부산 지역의 노동자들이 경제적·사회적인 지위의 안정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하던 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의 노동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불황에 따라 1920년대 초부터 크고 작은 규모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21년의 부산 부두 노동자 총파업을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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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의 하자마 농장에서 전개된 소작 쟁의. 경상남도 김해 진영 하자마 농장[迫間農場] 소유주인 하자마 가츠오[迫間一男]의 아버지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는 부산 최고의 땅 부자이자 ‘조선 재계의 중진’으로 불리었던 재벌이다. 그는 부산 개항 4년 후인 1880년 오사카의 한 무역상의 부산 지점 지배인으로 한국에 건너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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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9월 부산 부두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단행한 파업. 제1차 세계대전[1914~1917년] 이후 일본이 겪게 된 불경기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21년 1월 부산의 택산(澤山)형제상회, 내국상선만철회사, 일본상선회사 등 하역업 회사들이 예고도 없이 부두 하역 노동자의 임금을 한꺼번에 3할이나 인하하였다. 이는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 조건 아래 있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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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월 부산 지역 조선방직 노동자들이 노동력 수탈과 민족 차별에 항거하여 벌인 총파업. 1917년 11월에 설립된 조선방직주식회사[약칭 조선방직, 조방]는 조선의 값싼 공업 원료와 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형 기업이었다. 조선방직은 일본 미쯔이[三井] 계열의 중외산업(주)과 우마꼬시[馬越恭平], 야마모토[山本條太郞] 등이 자본금 500만 원을 출자하여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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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설립된 부산 기장 지역의 노동·농민 운동 단체 기장노농회는 기장 지역의 노동자와 농민을 조직하여 노동·농민 운동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기장노농회는 1926년 4월에 창립되었는데, 1922년 설립된 기장노동혁신회 내의 농사부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26년 당시 기장노농회의 회원은 71명이었고, 집행 위원은 김규엽(金圭燁) 등 19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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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지역에 있던 농민 운동 단체. 기장농민조합은 지식인 중심의 사상운동이 아닌 농민이 중심이 되는 농민 운동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기장농민조합은 기장노농회와 동래청년동맹 기장지부의 노력으로 1928년 9월 중순경 창립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창립된 기장노농회는 1920년대 전반기 노동혁신회의 농사부의 활동을 잇고...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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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 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된 부산 지역의 실천 활동. 부산은 1876년 조일 수호 조규[병자 수호 조약]의 체결로 우리나라 최초로 개항이 된 도시이다. 일본 전관 거류지의 설치와 항구라는 지리적 조건은 부산으로 하여금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륙 침략의 교두보 역할 및 일본 경제 수탈의 관문 역할을 강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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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기독교 항일 비밀 결사. 의용단(義勇團)은 부산진교회의 교인인 강영조(姜永祚), 박갑선(朴甲善) 외 7명과 여신도 박덕술(朴德述) 외 3명이 독립운동을 원조하기 위하여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설립한 비밀 결사이다. 이 가운데 박덕술은 부산진일신여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부산여자청년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22년 4월 11일 의용단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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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하순까지 부산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부산 3·1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던 3·1 운동의 소식을 접하고, 부산 시민들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월 11일부터 4월 하순까지 부산 각지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이다. 첫 개항지로서 일제의 조선 침략에 교두보 역할을 했던 부산은 바로 그런 이유로 민족 모순이 첨예한 지역이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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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부산 가덕도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만세 운동이 일어난 가덕도동 가덕도는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이다. 예부터 국방의 요지로 이곳에는 가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침을 방비하는 곳인 만큼 섬의 주민들의 자주성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제는 이곳 가덕진을 무단 점거하고 가덕진의 무기고를 불법으로 털어가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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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사건. 서울에서 시작된 3·1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지고, 4월 12일 장유면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진주농림학교에 다니던 문위동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계획하였다. 문위동, 문위동의 사촌 문위호, 윤상기(尹相基), 변동윤 등 20세 전후의 청년 수명은 4월 13일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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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9일 구포 장터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던 3·1 운동의 소식을 접한 구포 지역 유지와 노동자, 농민, 상인을 중심으로, 구포 장날인 3월 29일 구포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이다. 서울의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양봉근(梁奉根)이 구포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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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기장면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4월 5일과 8일, 10일에 걸쳐 기장 장터와 기장공립보통학교 등 기장면 일대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이다. 전국으로 퍼져나가던 3·1 운동과 3월 13일에 있었던 동래 장터 3·1 만세 운동의 소식이 기장 일대에 전해지고, 서울 모 신문사에 다니던 김수룡(金壽龍)이 기장으로 내려와 김도엽(金度燁) 등에게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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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3일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동래 장터에서 벌인 만세 시위. 1910년대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가 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민족 자결주의가 성행하자 조선에서도 이에 편승하여 종교계 지도자들에 의하여 독립 선언서가 제작되고 3월 1일 만세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도 3월 3일 독립 선언서가 배포되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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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0~11일 양일간 명지면 일대에서 일어난 3·1 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이 전해지고, 사립동명학교 교사 이진석(李鎭奭)이 동창인 김연복(金淵輻)[경성약학전문학교 학생]의 연락으로 독립 선언서를 입수하면서 명지면 3·1 운동의 계획이 진행되었다. 이진석은 동창생 양왕석(梁旺錫), 김영두(金榮斗), 이규회(李圭恢),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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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범어사 승려와 학생들이 주도하여 동래 일원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 1919년 3·1 운동을 앞둔 2월 하순경 불교계를 대표하는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로 내려와 오성월(吳惺月)을 비롯하여 이담해(李湛海), 오이산(吳梨山)을 만나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에 범어사 주지 오성월, 이담해 등은 김법린(金法麟), 김영규(金永奎), 차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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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의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전개한 3·1 운동.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여성 교육을 통한 자각과 부산 지역 기존 여성 운동의 경험, 송죽회와 같은 비밀결사 활동 등은 여성들의 항일 의식을 고조시켜 부산진일신여학교 및 부산 지역 여성들이 3·1 운동의 발발과 전개에서 그 중심이 되게 하였다. 3·1 운동이 발생한 직후 서울의 학생 대표가 부산으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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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전국으로 확대되어 가던 3·1 운동이 기장 일대에 전해져 기장 장날인 4월 5일 기장 장터에서 대대적인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일광면 이천리에서 망건 제조업을 하던 박영준(朴英俊)은 기장장에 망건을 팔러 갔다가 시위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독립 선언서를 품고 돌아온 박영준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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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9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좌천 장터 3·1 운동은 1919년 4월 9일 좌천 장날을 기해 정관면 청년들 주도하에 좌천 장터와 좌천 주재소 등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운동이다.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속에 기장면에서도 4월 5일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정관면에도 이 소식이 전해져 만세 운동의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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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0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4월 5일 기장면에서도 3·1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과정을 목격한 철마면민들은 이후 4월 8일과 좌천 장날인 9일, 또 기장 장날인 10일에도 대대적인 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에 김수찬(金守燦)·오덕근·정인준·김운일 등이 중심이 되어 철마면에서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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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인 박재혁(朴載赫)이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사건. 1919년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항일 의식이 고조된 속에서 1919년 11월 일제의 무력에 대항해 보다 강력한 방법 채택을 결의한 의열단이 만주에서 결성되었다. 김원봉(金元鳳)을 단장으로 한 의열단은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의 암살과 탄압 기구인 조선총...
항일 학생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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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부산의 동래중학교,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이 전개한 항일 학생 운동. 일제는 1937년 7월 중일 전쟁을 일으킨 후 식민 통치 안정을 위해 일본 경찰과 경찰의 보조 기관인 경방단원을 크게 증원시켰다. 특히 일제의 침략 전쟁에 필요한 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각종의 동원령도 내렸다. 이러한 일제의 전시 체제 강화는 급기야 조선 학생들의 군사 교련 훈련의 강화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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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부산 지역의 항일 조직인 순국당 당원들이 검거된 사건. 순국당은 1943년 부산진초등학교 동창생인 차병곤(車炳坤), 박정오, 신정호 등이 만든 윤독회에서 비롯하였다. 이들은 차병곤의 사촌 형인 조선청년독립당 이관수의 영향을 받으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동시에 또래의 청년 학생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순국당은 윤독회의 회원과 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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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부산 지역의 항일 조직인 조선청년독립당 당원들이 체포된 사건. 조선청년독립당은 1940년 11월 23일 부산 항일 학생 의거[일명 노다이 사건]에 참여한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서회에서 비롯되었다. 동래중학교는 전통적으로 민족적 정서가 팽배한 곳으로, 일제 강점기 내내 부산 지역 항일 학생 운동의 거점이었다.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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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비밀 독서회를 기반으로 조직된 반일 성향의 학생 결사 단체. 192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치안 유지법」이 국내에 적용되자 학생들의 반일 활동도 표면적으로는 줄어들고 비합법적 영역에서 점차 비밀 결사화되어 갔다.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한 혁조회(革潮會) 역시 그러한 여파로 생겨난 학생 단체였다. 혁조회 외에도 당시 조선의 각 학교에서는 독서회 및...
애국 계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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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부산 기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기장기독청년회는 3·1 운동 후 기장 지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청년 단체이다. 1921년 4월 결성되었으며 회장은 오신근(吳信根)이었다. 3·1 운동 이후 대중의 계몽과 교육 사상 고취를 내용으로 하는 문화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1년 6월 기장여자청년회와 협력하여 기장읍 예수 교회당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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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활동한 부산 기장 지역의 여성 운동 단체. 기장여자청년회는 3·1 운동 이후 여성 계몽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지·덕·체 삼육의 발달과 교육의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기장여자청년회는 1921년 9월 권은해(權銀海)의 발의로 결성되었다. 첫 회장은 박차순이고, 총무는 오경원(吳庚元)이었다. 처음 기장여자청년회의 활동은 야학 운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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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부산 기장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기장월전보인청년회(機張月田輔仁靑年會)는 기장 지역 대중에 대한 교육을 통해 계몽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정확한 창립 시기는 알 수 없다. 1922년 10월 25일 제2회 총회를 개최하고 있어, 적어도 1922년에는 창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기장 지역에 있던 야학회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소방대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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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부산 동래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여성 계몽 단체. 동래부인회는 서희숙, 염치일, 한동년 등이 발기하여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여성들의 지식을 계발하며, 풍속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2년 11월 11일 동래부인회가 창립되었다. 동래부인회는 동래군에 주소를 두고 있는 10세 이상의 여성은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회원 수는 17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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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부산 동래 지역에서 설립된 불교계 소년 운동 단체. 동래불교소년회는 1922년 8월 1일 동래 지역 소년들의 의식을 교화하고 건전한 불교적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하여 범어사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1920년대 범어사는 근대식 학교와 포교당을 설립하고, 야학 및 불교 청년 단체를 후원하는 등의 활동으로 다양한 지역 교화 사업을 활발히 벌였다. 동래불교소년회도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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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설립된 청년 단체. 동래청년구락부는 3·1 운동 이후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계몽, 지덕체 삼육의 발달, 교육의 보급, 산업의 발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3·1 운동 이후 고양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청년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동래 지역에서는 동래청년구락부가 제일 먼저 결성되었는데, 정확한 설립 일시는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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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계몽 운동 단체. 부산여자청년회는 문맹을 타파하고, 여성 대중을 계몽하여 봉건적 인습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1년 6월 13일 부산여자청년회가 설립되었다. 창립 시 임원은 회장 양한나, 부회장 김기숙, 총무 오대련 등 기독교와 관련된 여성이었다. 이들은 주로 일신여학교 출신, 초량교회와 부산진교회의 교인 또는 주일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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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부산 지역에 설립된 여성 운동 단체. 부산중앙여자청년회는 1923년 7월 여성의 문맹 타파 등 여성 계몽을 위해 설립되었다. 부산중앙여자청년회는 초량여자청년회를 계승한 단체로, 부산 지역 여자 청년회의 효시이다. 1924년 회장은 김한순(金漢淳)이었다. 1925년 5월 7일 열린 제7회 정기 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선하여, 회장 이금옥, 부회장 최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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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장안청년회는 1922년 7월 26일 정인진(鄭寅秦), 차상명(車相明) 등의 발의로 창립되었다. 창립총회는 당시 장안면 14개 마을에서 600여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장안면사무소에서 열렸다. 창립대회에서는 회장에 정인진, 총무에 차상명, 교육부장에 손태영(孫泰瑛), 위생부장에 정경원(鄭敬元), 교풍부장에 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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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철마청년회는 철마 지역의 교육과 위생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 계몽 사업을 위해 설립하였다. 철마청년회는 1922년 9월 7일 장전강습소에서 청년 50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철마면 면장이 창립총회의 사회를 보고, 임원을 선출하였다. 회장으로는 김민수(金玟守), 총무로는 문기순(文麒淳), 운동부장으로...
친목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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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결성된 구포 지역 원로들의 친목 모임. 구포기로사(龜浦耆老社)는 1918년 3월 유홍환(兪弘煥), 강신호(姜信鎬)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구포와 사상 지역 거주 원로들의 친목 모임으로, 회원은 50세 이상 80세 이하의 원로로 되어 있다. 구포기로사 취지서에는 “좋은 때 좋은 날짜에 꽃 피는 아침, 달 뜨는 저녁에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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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부산 지역의 일본인 재력가들이 설립한 경상남도 지역 경마 사업 총괄 단체. 일본인 재력가들의 취미와 사교의 수단인 경마 단체가 1922년 경성의 조선경마구락부를 시작으로 평양과 대구, 신의주 등지에서 생겨나면서, 부산에서도 1926년 부산일보사 사장 개천정(芥川正)을 중심으로 자본금 4만 엔[円]으로 조직되었다. 부산경마구락부는 부산 지역 내 경마와 관련한 각종 단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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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부산 지역에서 설립된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의 모임. 부산 재주자를 중심으로 부산 등 지역의 고고학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1931년 9월 12일에 설립된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의 모임인 부산고고회는 1936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1941년 9월까지 그 명맥을 이어갔다. 주로 강연회·학술 발표회, 연구 여행·발굴 조사, 전람회 등의 학술 활동을 하였으며, 부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