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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742
한자 釜山靑年會
영어의미역 Busan Young Adult Group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청년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11월연표보기 - 부산청년회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0년 12월 -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창립될 때 가맹단체로 참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1년 7월 - 회관 기공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4년 5월 17일 - 부산 시민 대회 개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11월 - 부산부청년연맹 결성에 중추적 역할
최초 설립지 부산청년회 -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부산청년회는 1920년대 부산 지역 청년 운동의 중심 조직으로 물산 장려 운동, 도항 노동자 권익 옹호, 조선인 교육 강화 등 지역의 여러 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민족 운동을 고취시킨 청년 단체이다.

[설립 목적]

3·1 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부산진, 고관(古館), 초량, 영주동, 영도, 부민동, 아미동 등지에 있었던 친목회 성격의 7개의 부산 지역 청년 단체들이 연합하여 1920년 11월 말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부산청년회를 결성하였다.

[변천]

부산청년회는 결성된 지 한 달 뒤인 12월 전국의 청년 단체를 지도할 전국적 조직인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창립될 때 가맹단체로 참가하여 중앙의 운동 방침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부산 지역 청년 운동의 핵심적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11월 부산부청년연맹 결성에도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청년회는 1921년 7월 회관을 기공하고 각 부서별 활동을 구체화하였다. 즉, 학예부에서는 회보 발행과 야학회를 개최하고, 사회부에서는 노동 단체의 조직과 회원 확보 및 학생 의복 개량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 노동, 영어, 실업보습의 3개 야학을 열었으며, 이 밖에도 조선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해수욕장을 개장하고 추계 시민 대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4년 5월 17일에는 부산 시민 대회를 열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노동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도항증 발급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부산 청년 회관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하여 도항 수속 사무를 처리하였으며,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함으로써 도항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의의와 평가]

부산청년회는 1920년대 전반기 부산의 문화 운동을 이끈 대표적 민족 운동 단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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