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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부산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26
한자 新幹會釜山支會
영어의미역 Singanhoe Busan Branch|New Trunk Society, Busan Branch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 단체
설립자 김국태 외
설립 시기/일시 1927년 7월 30일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1년 3월 29일연표보기 - 해산
최초 설립지 부산 사회단체 회관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1927년 2월 비타협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세력의 민족 협동 전선으로 신간회가 출범하자 전국에 걸쳐 부군(府郡) 단위의 100여 개의 지회가 설립되었다. 부산 지역에서도 1927년 7월 30일 부산 청년 동맹 회관에서 설립 대회를 열고 신간회 부산지회를 설립하였다.

[설립 목적]

종래의 파벌적 운동을 통일하기 위해 지역 내 사회 운동 단체들을 통합할 필요성을 느꼈던 부산 지역 운동가들은 조선 민족 각층의 총역량을 집중하여 전민족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고 전민족의 의식적 각성과 공고한 조직 완성을 기한다는 강령 아래 신간회 부산지회를 설립하였다.

[변천]

신간회 부산지회는 설립 초기 지회장 김국태(金局泰)를 비롯해서 최천택(崔天澤), 김홍권, 심두섭, 김영식(金永植), 오택(吳澤) 등 비타협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들이 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1928년 이후로는 강대홍(姜大洪), 김봉한, 김칠성(金七星), 노상건, 안상교(安常敎), 김시엽(金時燁) 등 사회주의 계열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12월 6일에 열린 제5회 정기 대회에서 신간회 부산지회신간회 해소를 주장하여 전국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켰는데, 1931년 3월 29일의 임시 대회를 통해 신간회 부산지회를 해소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신간회 전체 대회에 건의하기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부산지회는 서무부, 재정부, 정치문화부, 조사연구부, 선전부의 5개 부서를 두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1927년 12월에는 조직부와 출판부를 신설하였다. 회보를 발행하여 지회의 소식을 민첩하게 전하는 한편 하부 단위로서 반(班) 조직의 결성을 꾀하는 등 대중적 기반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설립 대회 때 38명이었던 회원 수가 1928년에는 240명, 1930년에는 305명으로 증가하였다.

신간회 부산지회는 강연회를 개최해 회원과 민중들의 민족의식을 계발하거나 자연재해에 대한 구제 활동을 일상적으로 전개하였다. 특히, 1929년 11월 지역 내 각 사회 운동 단체 소속 회원을 대상으로 개최한 ‘오분간 연설회’는 부산에서는 처음 시도된 것으로 그 연제(演題)를 통해 당시의 관심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1929년 이후로는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다방면에 걸쳐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2월 개최된 제4회 정기 대회에서는 취업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도일 노동자(渡日勞動者)들이 일제의 각종 규제와 이에 편승한 도항 사기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차가인 동맹 결성을 적극 지원하여 임대 주택을 독점한 일제 자본가의 횡포로 인해 조선인 무주택자들이 겪는 참상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언론 집회 자유 획득 동맹을 조직하여 공황기 일제의 신간회에 대한 각종 탄압에 맞서 활동 공간의 확대를 꾀하였다. 1929년 9월 집행 위원회에서는 재동경 노동 동포 귀환 문제와 신간도연합회 발기회에 관한 문제, 경상남도 내 가뭄 실태 조사에 관한 문제, 도내 지주에게 지세 면제를 권유할 것에 관한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신간회 부산지회의 활동과 관련해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노동 운동과 관련된 것인데, 신간회 부산지회는 노동 단체인 노우회와 보조를 맞추며 지역 내 파업에 대한 진상 조사와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28년 부산 전차 종업원 동맹 파업과 1930년 조선방직 총파업 때에도 진상 조사와 지원에 나섰다. 특히 조선방직 총파업과 관련해서는 신간회 본부로부터 진상을 조사하라는 지령이 신간회 부산지회로 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지회원이 노동 단체에 가담하는 형식이 아니라 신간회 부산지회 차원에서 노동 운동에 개입했던 것으로, 다른 지회와의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현황]

신간회 부산지회초량동 부산 청년 동맹 회관에서 설립 대회를 개최한 후 부산 사회단체 회관을 사무실로 사용했는데, 현재 부산 사회단체 회관 터에는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1927년 7월 설립 이후 해소될 때까지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의 통합을 통해 부산지역 사회 운동의 역량을 강화·통일하여 민족 해방 운동에 기여하였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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