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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기장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74
한자 新幹會機張支會
영어의미역 Gijang Branch of the Shinganhoe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족 운동 단체|항일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9년 3월 15일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1년 경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신간회 기장지회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설립 목적]

신간회 기장지회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와의 결합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각성과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 배격을 강령으로 내걸고 조선 민족의 경제적·정치적·민족적 해방 실현 등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신간회가 창립되고 나서 전국 각지에 군 단위로 지회가 설립되었고 기장에서도 설립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7년 11월 23일 신간회 기장지회 설립 준비 위원으로 조형진, 양봉근(楊奉根), 박주복 등이 선임되었다. 1928년 2월 19일 정진 청년 회관에서 지역 유지들이 신간회 기장지회 설치 발기인회를 열어 오대우, 오태근, 장지호, 권종철, 노단우 등을 준비 위원으로 선출하였다. 이들 준비 위원들 대다수는 정진청년회 회원들로 정진청년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1929년 3월 15일 동래청년동맹 기장지부 회관에서 노단우의 사회로 신간회 기장지회 설치 대회를 열었다. 임시 집행부로 의장 노단우, 부의장 오대우, 서기 심재필·김태영 등을 선임하였다. 대회에서 선출된 간부는 지회장 노단우, 부회장 오태근, 서무 재정부 총무 간사 김귀조, 간사 유병권, 정치 문화부 총무 간사 권종철, 간사 최태희, 조사 연구부 총무 간사 000[확인 불가], 간사 송갑용, 조직 선전부 총무간사 김태영, 간사 노재갑 등이었는데, 이상의 인원 구성으로 볼 때 신간회 기장지회는 일광, 좌천 등 인근 지역을 포괄해 조직된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군 단위로 지회가 설립된 데 비해 기장면동래군 소속이지만 면 단위에 따로 지회가 설립된 것이 특징이다.

1929년 9월 10일 신간회 기장지회는 제1회 임시 대회를 개최하여 신임 집행 위원을 선출하였다. 이때 위원장 권종철, 서기장 김규엽, 회계 김귀조, 검사 위원장 이규옥, 검사부원 오태근, 송갑용 등이 선출되었다. 이후 일제의 금지 책동으로 정기 대회를 개최하지 못하다가 1930년 8월 16일 박맹표 집에서 제1회 정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1930년 12월 신간회 해소론이 최초로 부산지회에서 제기되면서 신간회 기장지회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기장지회 활동은 토의 안건을 통해 볼 때 신간회 본부 차원의 사안들이 활동의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간사회 안건으로 회원 증강과 회비 징수, 원유회 개최 등 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활동상은 확인할 수 있으나, 구체적 활동의 내역은 알 수 없다. 다만 신간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면장 선임에 관여하고 있어 면민들의 여론에 힘입어 식민지 일선 행정 조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기장지회의 결성과 활동은 지역 청년 단체들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면 단위에서 지회가 설립된 사실을 통해 기장의 운동 역량 정도를 알 수 있다. 신간회 기장지회 회원들은 신간회 해소 이후 지역 내 농민 조합 운동과 부산 지역 당 재건 운동 등 혁명적 대중 운동을 이끄는 등 민족 해방 운동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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