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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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影島待風浦埋立工事 |
영어의미역 | Yeongdo Daepung-po Reclamation Construction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대교동|남항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석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대교동·남항동 일대에서 진행된 매축 공사.
[역사적 배경]
원래 ‘바람이 기운차게 일어나는 포구’라는 의미로 풍발포(風發浦)라고도 불렸던 대풍포는 1900년대 초부터 일본 어선들이 몰려들면서 변화하게 되었다. 3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어선들이 큰 풍랑을 피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던 영도 대풍포는 배를 정박하기 좋았고 왜관이 가까이 있어 급수나 선박의 수리가 용이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곳은 자연적인 만의 형성으로 풍랑을 피할 수 있는 포구라는 의미로 ‘바람을 기다리는’ 대풍포(待風浦)라는 지명이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대풍포는 나중에 대풍포(大風浦) 또는 대평포(大平浦)라고도 표기되었다. 대풍포가 대소 어선 및 기타 다양한 선박들의 피난, 건조, 수리처로서 각광을 받게 되자 일본인들이 개발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보다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경과]
대한 제국 시기 부산 주재 일본 영사는 한국 정부의 고관에게 대풍포 일대 사용을 요청하였고, 그 고관은 토지의 소유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구두로 사용을 허가하였다. 이에 이 지역 한국인 소유자가 동래부에서 대풍포 일대의 토지 소유 증명서를 발급받아 한양으로 올라가 정부 당국에 소원하였으나 정부에서는 모두가 모른다는 핑계로 일관하였다. 결국 대풍포 일대의 개인 소유 토지는 일본인 전관 거류민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 뒤 일본인 시무라[志村]라는 인물이 대풍포를 매립하려고 일본 거류민단의 승낙을 얻어 매립권을 가지고 최초로 매립을 시도했으나 매축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고, 또 다른 일본인 오사와[大澤]라는 사람이 매립권을 양도받아 1916년 매축 공사를 시작하여 1926년 6월 준공하였다. 10년에 걸친 장기 공사였지만 구체적인 공사 진행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결과]
영도 대풍포 매립 공사에서 총 132,892.562㎡가 매립되었다. 현재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대교동, 남항동에 포함되는 이 일대는 대풍포 매축 공사의 완성과 이후 1930년대 식민지 공업화에 편승하여 여러 개의 조선소들이 들어서는 등 공업지대로 변신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도 대풍포 매축은 본격적인 영도 개발의 시작이었으며, 당시에는 공업 지대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영도구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