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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77
한자 釜山海關敷地埋築工事
영어의미역 Busan Haegwan Reclamation Project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이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매축 공사[매립 공사]
관련인물/단체 하문덕(何文德)[Robert Hart]|부산해관[부산세관]|부산매축주식회사
발생|시작 시기/일시 1887년 - 부산해관 부지 매축공사 허가
종결 시기/일시 1908년 8월연표보기 -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완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3년 10월 3일 - 부산해관 개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9년 10월 - 해관 잔교와 보세 창고 건립
발생|시작 장소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장소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종결 장소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장소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정의]

1887~1908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던 부산해관 앞바다를 매축한 공사.

[개설]

개항 이후 교역의 확대로 부산해관 부지의 확대가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해관장인 하문덕(何文德)[Robert Hart, 영국인]의 주도로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釜山海關敷地埋築工事)가 진행되었다.

[역사적 배경]

1883년 6월 재조선국 일본 인민 통상 장정(在朝鮮國日本人民通商章程)의 체결로 1883년 10월 3일 부산해관(釜山海關)[1907년 부산세관으로 개칭]이 개설되었다. 부산해관이 개설된 당시 부산 항만의 설비 시설로는 일본 전관 거류지 동쪽 용미산[옛 부산시청 자리, 현 부산 롯데 월드 예정지] 아래 약 2만 3140㎡[7,000평]의 선류장(船留場)이 있었다. 무역의 발달에 따라 소형 선박의 정박에 이용되는 선류장이 아니라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이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부산해관 북쪽 해안의 매립 공사가 시행되었다.

[경과]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는 세관 업무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이홍장(李鴻章)[중국 청나라 정치가]이 추천한 하문덕이 부산해관장으로 부임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1887년 조선 정부로부터 현재 중구 중앙동부산 데파트 앞바다인 부산해관 부지 매립 허가와 공사비 1,000냥을 받았다. 이후 청나라 기술자를 초빙하여 설계한 뒤 공사를 착공하였다. 1888년 4월 29일 완공하였다.

[결과]

매축된 자리에는 1889년 10월 구 한국 정부로부터 교부받은 공사비 2,546냥으로 해관 잔교(海關棧橋)와 보세 창고가 세워졌다.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는 이후에도 진행되었다. 1902년 부산매축주식회사가 기존의 선류장에서 구 부산 본역[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교보 빌딩과 무역 빌딩 근처]에 이르는 곳까지 매축하여, 1908년 8월 총면적 약 13만 5777㎡[4만 1375평]의 매축을 완료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는 구 한국 정부가 공사비를 제공한 국내 사업으로 부산 지역의 바다 매립 중 체계적으로 인공 매축한 최초의 공사였다.

[참고문헌]
  • 부산광역시(http://www.busan.go.kr)
  • 부산본부세관(http://www.customs.go.kr)
  • 부산항만공사(http://www.busanp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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