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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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待風浦- |
영어의미역 | Daepungpo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대풍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경업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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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0년 - 동래부 사중면 영선리에서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25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에서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4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에서 부산부 사중면 갑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7년 - 부산부 사중면 갑정에서 부산부 대평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부산부 대평동 1·2가에서 부산시 대평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1년 - 부산시 대평동 1·2가에서 부산시 영도출장소 대평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부산시 영도출장소 대평동 1·2가에서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1·2가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평동 1·2가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영도구 대평동 1·2가에서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1·2가로 개편 |
자연 마을 | 대풍포 마을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대풍포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대풍포(大風浦)는 대평동 끝자락과 남항동 사이에 있어서 동·서·남의 3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호안으로 지형상 풍랑에 대피하기 좋은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대풍포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 두모포 왜관이 설치될 때까지 임시 왜관[1601년(선조 34)부터 1607년(선조 40) 사이의 기간 동안 일본 사신이 머물던 장소]이 있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1876년(고종 13)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일본 어선의 어업 전진 기지가 되어, 동해안과 남해안까지 출어하였으며, 어선단들은 이곳에서 풍랑을 피하고 어선을 수리하며 급수를 받는 등 포구로 이용하였다. 이에 일본 선박이 모여 들여 조선소나 선박 관련 업종이 집중하게 된다.
대평동이 속한 지역은 1910년 동래부 사중면 영선리에서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로 개편되었으며, 1916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인 오자와[小澤]가 대풍포 해안을 매립하여 주택지와 용지를 조성하였다. 1925년에는 영선리가 영선정(瀛仙町)으로 개칭되었다. 1944년 영선정이 6개 정(町)으로 분할되며 갑정(岬町)[매립되기 이전 바다로 돌출된 지형을 바탕으로 붙여진 이름]이 되었고, 1947년 광복으로 일본식 동명을 개칭하며 대평동(大平洞) 1·2가가 되었다.
1949년에는 부산부가 부산시로 승격하였고,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57년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1·2가가 되었다. 대풍포 마을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산업화와 부산항의 개발을 통해 급속한 변화를 겪어 옛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조성된 유곽[사창]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나 대화재 후 사라졌다.
[자연 환경]
대풍포 마을은 남항동 끝자락의 호안을 둘러싸고 바다로 뻗어 나온 낚시 바늘 모양을 닮은 큰 사주상에 있어 호안이 포구로 이용되었으나, 1900년 이후 매립지가 조성되며 해안가의 넓은 평지로 변하였다.
[현황]
대풍포 마을은 현재의 대평동 대동 맨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도시화되어 그 흔적을 알 수 없다. 북쪽으로 STX조선·조양조선·삼화조선·동아조선 등의 조선소와 선박 관련 업종이 집중해 있고, 북서쪽으로 영도 도선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