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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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國權回復團 |
영어의미역 | Joseon's Resumption of Soverign Grou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1[동광동 3가 10-2] 백산상회 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정원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에 있었던 항일 비밀결사.
[설립 목적]
조선국권회복단은 단군(檀君)을 모시며 국권 회복 운동에 매진하고, 국내외 독립 운동을 연결하여 대규모 항일 운동을 전개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항일 비밀 결사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국권회복단은 1915년 달성친목회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서상일, 이시영 등이 경상북도의 한학자, 지식인, 자산가 등을 포섭하여 결성하였다. 여기에는 부산·경상남도 지역 인사들도 참여하였는데, 부산을 무대로 활동한 경상남도 출신 관련자는 이조원[동래], 윤현태[양산], 안희제(安熙濟)[의령], 최태석[청도], 정인찬[동래], 손영순[밀양] 등이다.
조선국권회복단의 기구는 중앙 총부와 지부로 편성되었으며, 통령(統領)과 외교·교통·기밀·권유·문서·결사 등이 조직되었다. 곡물상, 잡화상의 상업 조직을 연락 거점으로 하여 군자금 모집, 친일 부호 처단, 독립군 양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조선국권회복단의 거점인 태궁상점(太弓商店)·향산상회(香山商會)와 대한광복회의 거점인 대구 상덕태상회(尙德太商會), 대동청년단의 거점인 부산의 백산상회(白山商會)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만주·안동·봉천의 상업 조직과도 연계되어 해외 독립 운동을 지원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 관계자로 이후 임시 정부의 사법부 총장(司法部總長)이 된 고령 출신의 남형우(南亨祐)는 1918년 가을 백산상회에서 상업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운동자금을 조달하다 1919년 4월 초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 때문에 1919년 8월 백산상회가 남형우로 하여금 운동자금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아 안희제, 윤병호, 윤현태가 일제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인 김유덕, 김재열이 주일상회의 손영순과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손영순과 주일상회 역시 일제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1919년 각 지방의 3·1 운동과 4·3 창원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마산지부장이었던 안확은 진동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독립 청원서를 작성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하였으나 1919년 6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이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국권회복단은 1910년대 민족 해방 운동의 주객관적 상황 변화 속에서 한말 의병 운동 계열과 계몽 운동 계열이 통합하여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1910년대 운동 단체 중 존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점에서 강고한 조직력을 엿볼 수 있으며, 1910년대 국내 민족 해방 운동의 양상과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