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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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要塞司令部 |
영어의미역 | Headquarters of Busan Fort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윤미 |
[정의]
일제 강점기 말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던 일본군 요새 사령부.
[설립 경위 및 목적]
1941년 진해요새사령부가 부산 중구 영주동으로 이전하고, 1942년 부산요새사령부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이는 인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부산항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이어서 미군 함선 진입을 막고, 일본 항해 함선 원호단을 형성하여 해상과 상공에서 대한 해협을 방어하기 위해 주력 부대들을 부산으로 집결시켰다. 부산요새사령부의 이전·설립은 부산과 진해만을 하나의 방어 요새 기지로 상정하고, 진해만 방어에 더 비중을 두었던 기존의 작전 계획을 바꾼 결과였다.
[관련 기록]
「조선총독부 관보」[제4647호] 1942년 7월 25일자에 “1942년 7월 10일 진해만요새지를 부산요새지로, 진해만요새사령부를 부산요새사령부로 개정”한다는 것을 고시하였다.
[변천]
1941년 6월 독일과 소련전이 시작되자 진해만 요새와 나진 요새에는 고사포 부대 요원이 임시 소집되었고, 요새 및 근교 도시, 군사 시설의 방공 임무가 주어졌다. 같은 해 7월 9일 ‘진해만-쓰시마[對馬]-잇끼[壹岐]-사세보[佐世保]’를 잇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해협을 방어하는 요새에 준전시령이 하달되었다.
부산의 전략적 위치가 변화됨에 따라 각종 부대가 부산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1941년 4월 육군부산군수수송통제부가 설치되고, 7월 진해만요새사령부와 마산중포병대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부산방공대도 배치되었다. 11월에는 육군선박운송사령부 부산지부를 설치하였다.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시작한 이후, 1942년 7월 1일자로 진해만요새사령부의 명칭을 부산요새사령부로 바꾸었고, 진해만요새중포병연대도 주력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부산요새중포병연대로 개칭하였다. 진해보다 부산항의 정면을 중시하여 수송 동맥을 확보하는 것이 일본군으로서는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1944년 6월 마리아나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하면서 언제든지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미군의 본토 공격에 대비해 1945년 1월 20일 본토 전장화, 즉 ‘본토 결전’을 결정하였다. 일본과 조선을 7개의 작전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지역을 제1호에서 제7호로 구분하여 ‘결호 작전’을 시행하였다. 이때 조선은 제17방면군이 담당하는 결7호 작전 구역이었다. 제17방면군은 러시아를 방어하는 대신 미군을 방어하는 임무로 변경하였다. 미군의 상륙을 예상해서 군산 일대의 서해안과 부산항 중심의 동남 해안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다. 부산 일대는 상륙 미군의 저지라는 의미도 있었으나 더 큰 의도는 항구 방어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요새사령부는 1941년 아시아 태평양 전쟁과 가까운 시기에 부산에 이전·건립되었다. 부산으로 병력이 집결하기 시작하고, 부산항을 통해 수많은 물자들이 들고나갔다. 부산이 일제 강점기부터 물류의 중심지이자 대한 해협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려준다. 부산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구축된 군사 시설물을 활용·개발한다면 일제 강점기 역사 체험의 장이자 평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