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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요새사령부 방어 진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364
한자 釜山要塞司令部防禦陣地
영어의미역 Defence Camp for Garrison Busan Headquarters
이칭/별칭 장자등 포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 시설
관리자 남구청|국군기록정보관리단
조성|건립 시기/일시 1924년 10월~1930년 10월연표보기 - 장자등 1포대 조성
조성|건립 시기/일시 1934년 5월~1935년 12월연표보기 - 장자등 2포대 조성
조성|건립 시기/일시 1939년 1월~3월연표보기 - 장자등 3포대 조성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요새 재정비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구축한 요새.

[개설]

1941년 부산으로 옮겨 온 진해요새사령부가 1942년 부산요새사령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따라서 진해요새사령부가 구축한 요새들을 부산요새사령부가 모두 관할하였다. 가덕도 외양포 포대, 거제도 저도 포대, 거제도 지심도 포대, 거제도 장승포 포대, 부산 장자등 포대, 부산 기장 포대, 부산 절영도 포대 등이다. ‘기장~해운대~용호동~영도~가덕도~거제도~진해’를 잇는 해안 방어선인 것이다. 이중 장자등 포대가 가장 중심이 된 요새로, 3개의 포대가 설치되었다. 그래서 부산요새사령부 방어 진지를 일명 장자등 포대라고도 한다.

[건립 경위]

대한 해협을 방어하고, 부산항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이다. 장자등 1포대는 1924년 10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만든 것으로 일본 쓰시마의 도요[豊] 포대와 같은 형태로 구축되었다. 40㎝ 캐논포를 탑입한 1기 2문의 포탑 포대로, 1922년 워싱턴 군축 회의 결과 폐선된 전함의 포를 배치하였다. 2포대는 1934년 5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만들었고, 3포대는 1939년 1월부터 3월까지 축조하였다. 1945년에는 장자등 포대에 15㎝ 두께의 동굴 진지 축성과 40㎝ 방탄벽 구축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요새 축조에 대한 용호동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먼저 구축이 필요한 만큼 산허리를 잘라 내고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완공 후 다시 걷어 낸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본래의 산 모습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위치]

부산요새사령부 방어 진지는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예비군 훈련장[장자등 1포대],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SK뷰 아파트 인근[장자등 2포대]에 위치한다.

[형태]

장자등 1포대는 연구 자료와 일본 쓰시마에 구축된 도요 포대를 통해 형태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포탄 보관실, 기관실 등이 있는 요새에 커다란 둥근 콘크리트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포탄을 자동 장착하는 시스템을 갖춘 포가 있었다. 장자등 2포대는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터널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장자등 3포대에 관해서는 조사되거나 알려진 바가 없다.

[현황]

부산요새사령부 방어 진지는 지금도 군사 지역으로 접근이 어려워, 국군기록정보관리단의 정보 공개와 남구청의 협조를 얻어야 전체적인 현황이 파악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요새사령부 방어 진지 중 가장 큰 규모로 요새를 구축하고, 병력을 대거 집결시켰던 곳이 장자등 포대였다. 처음에는 러시아로부터 대한 해협을 방어하고자 하였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부산항을 사수하고, 미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던 곳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때의 부산 역사, 나아가 우리나라가 어떻게 전쟁터가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시설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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