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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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新聞配達夫組合 |
영어의미역 | Busan Delivery Combin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보영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신문 배달부 조합.
[개설]
식민 지배로 들어가면서 산업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였으나 이들의 노동 조건은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3·1 운동을 경험하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지고 노동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과 더불어 1920년대에 노동 운동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1920년 4월 경성에서 조선 최초로 조직된 대규모 노동 단체가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였다. 바로 이 조선노동공제회가 전국의 노동자 계층을 조직화시켜 나가는 가운데 신문 배달부들도 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성 외의 각 지역에도 신문 배달부 조합이 설립되면서 활동에 들어갔다.
[설립 목적]
부산신문배달부조합은 부산 지역 신문 배달부들의 친목 및 단결을 도모하고 유관 단체와의 연대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부산신문배달부조합은 1925년 9월 13일 설립되었다. 1927년 3월 3일에 일본 신문 오카나마이니찌의 조선인 배달부 20여 명이 동맹 파업을 단행하였다. 『동아 일보』 1927년 3월 6일자 4면에서 「배달부맹파/대우개선코서」라는 제목으로 그해 들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임금을 삭감하자 그동안 일본인과 차별하던 것에 대한 불만까지 겹치면서 파업에 돌입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대해 부산의 신문 배달부 조합은 3월 6일에 임시 총회를 소집하여 동맹 파업의 경과에 대한 보고를 듣고 기타 다른 안건도 논의하였다. 이어 6월 3일에도 임시 총회를 소집하여 이 건에 대한 입장을 위원회에 일임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 달인 7월 17일에는 월례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다시 ‘○○일보 수금 불급 문제에 대하야 위원회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야 교섭할 것’을 결의하였다.
동종 업계의 현안에 대해 이처럼 입장 정리가 어렵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범 당시에 표방했던 목표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운영에서는 여러 가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번 모임이 있을 때마다 회비 미수금의 문제와 회원 추가 확보 문제 등에 대한 결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보아도 재정이나 조직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27년 하반기부터는 신문 배달부 조합의 활동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 때문에 활동이 매우 약화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1929년 5월에는 부산의 8개 노동 단체들이 모여 부산노동연맹을 창립하는데 출판종업원조합과 함께 신문 배달부 조합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조직은 경찰 당국의 탄압으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부산신문배달부조합은 1930년까지는 유지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이후의 상황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6년 1월 17일에 총회를 개최하여 조합의 운영과 관련하여 네 가지 사항을 결의하였다. 네 가지 결의 사항으로 조합의 성격과 운영 방침의 개요를 알 수 있다. 우선 상당히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월 월례회를 통해 계급 의식을 계발하려는 시도도 그렇지만 전국 연합체에 대해서도 그 사상적 기반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지향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매월 집행 위원이 회원 가정을 방문하여 비참한 생활을 위문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당시 배달부들의 생활이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로부터 당시 배달부 조합도 일반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근로 조건 개선이 주된 목적의 하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조합은 집행 위원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집행 위원회는 1926년 7월 14일에 제 5차 회의를 열었다는 내용이 『동아 일보』 1926년 7월 20일자 4면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 거의 매월 회의를 개최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창립과 함께 부산의 신문 배달부 조합은 조합 본연의 활동 외에 강연회 개최에도 나섰다. 1925년 11월 1일에 창립 기념 신문 강연회를 부산의 청년 회관에서 개최하였다. 연사는 박동주(朴東柱), 김칠성(金七星) 두 사람이었으며, 강연 주제는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었다. 1926년 9월 17일에는 신문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부산 청년 회관에서 열린 이 강연회에서 연사 노상건은 ‘노동조합 필요’라는 제목으로, 강대홍(姜大洪)은 ‘노동조합 정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강연회의 주제가 모두 노동조합 관련인 것을 보면 이 배달부 조합은 노동조합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원들의 노동자로서의 계급 의식을 계발하여 노동조합으로 발전시킬 방침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부산 언론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신문 배달부 조합이 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언론사의 사주나 기자가 아니라 신문 배달부가 노동자성을 인식하고 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했다는 것은 언론사적으로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