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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기자 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262
한자 慶南記者大會
영어의미역 Press Meet in Gyeongsangnam-d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조선시보|동아일보 부산지국|조선일보 부산지국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8년 2월 4~5일연표보기 - 부산에서 제3회 경남 기자 대회 개최
발단 시기/일시 1925년 3월 22~23일 - 진해에서 제1회 경남 기자 대회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34년 5월 5~6일연표보기 - 부산에서 제9회 경남 기자 대회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4년 4월 19일 - 부산 기자단 구성
발생|시작 장소 경남 기자 대회 - 부산광역시
종결 장소 경남 기자 대회 - 부산광역시

[정의]

1925년부터 부산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일대에서 매년 개최된 기자 동맹 대회.

[역사적 배경]

1924년부터 시작된 언론 자유의 압박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1925년 4월 15일 경성의 기자 단체 무명회가 전조선 기자 대회를 개최하려 하자, 이를 앞두고 그해 3월 경남 기자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경상남도의 기자들이 모여 언론의 권위 문제를 포함하여 도내 공동 현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펼치는 장으로 이후 매년 개최되었다.

[경과]

제1회 대회는 진주 청년 회관에서 1925년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양일간, 시대일보 4인, 조선일보 7인, 동아일보 13인 모두 23명의 참석으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경남기자동맹을 출범시키기로 하였다. 제3회 기자 대회 및 경남기자동맹 정기 총회는 1928년 2월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4일과 5일 양일간 부산 국제관에서 개최된 이 대회에는 70여 명이 참석하여 다양한 논의 끝에 언론의 권위와 친목 도모, 공공복리 기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동맹 사무소를 부산으로 옮기며 부산과 마산, 진주에 분회 사무소를 두어 인접 지역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제9회 대회는 1934년 5월 5일과 6일 동래읍 소재 일성관(一誠館)에서 개최되었다. 창립 10주년 기념 기관지 발행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다각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실제로 발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창간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과]

이후의 경남기자동맹이나 경남 기자 대회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다. 그러나 1945년 12월 1일 설립된 조선신문기자회 경상남도 지부가 설립되면서 경남 기자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개최 단체나 해방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의 차이가 있으므로 그 성격은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경남 기자 대회는 대부분 조선총독부 경찰 당국의 방해와 탄압, 그리고 엄중한 감시 속에 진행되었다. 경찰 측의 방해로 대회가 연기되기도 하고,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현장에 경찰이 배치되어 감시 활동을 벌였다. 또한 축전이 압수되고 축사도 내용에 따라 현장에서 낭독 도중 중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해마다 대회를 개최하면서 경상남도 지역의 조선인과 관련된 현안 문제와 언론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의지들을 모아나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경남기자동맹의 결성과 대회를 계기로 도내 각 지역에도 기자단이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부산은 이미 1년 전인 1924년 4월 19일에 기자단이 구성되었으며, 1925년에는 진주, 마산, 1926년에는 하동, 고성, 울산, 1927년에는 사천, 통영 기자단이 구성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 확산되어 1928년부터 1935년까지 거창, 동래, 합천, 함안, 양산, 창녕, 언양 등지로 확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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