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685 |
---|---|
한자 | 朝鮮絹織 |
영어의미역 | Joseon Silk Corpor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호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었던 섬유 관련 제조업체.
[설립 목적]
조선견직은 인조 견직물(絹織物)을 제조하여 판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37년에 일본인 신류조가 세운 조일(朝日)견직[아사히견직]이 조선견직의 전신이다. 조일견직은 당시로는 조선 최고의 설비를 갖춘 인조 견직물 회사였다. 1940년에 전시 체제가 강화되자 생사를 원료로 한 군수용 피복과 낙하산 천 등의 군수 공장으로 가동되었다. 1946년에 김지태(金智泰)가 관리인을 맡았다. 1949년에 회사명을 조선견직으로 변경하였고, 1951년에 정식으로 불하받았다. 언양잠사와 자명건설, 자명해외건설 등의 계열사도 두었다. 1955년 4월에는 원료 회사인 대동산업을 인수하여 대동산업의 상호를 한국생사로 변경하였다. 원료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1960년대에 전국의 16개 제사 공장을 운영하였고, 이를 경남합동제사로 통합하였다. 당시 생산 규모를 보면 일본의 가타쿠라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또 춘천시 춘성군에 동방제사를 설립하여 20만 그루의 대규모 뽕나무 밭을 조성해 원료의 안정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1966년 말부터 나일론과 테트론 등 화학 섬유가 보급되고 인조 양단이 등장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에 거제리[현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공장을 매각하는 등 하청 생산 위주로 운영되었고, 1995년에는 중국 이전을 시도하였지만 이마저 실패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견직의 주요 사업은 인조 견직물의 제조 및 판매였다. 1960년대 조선견직의 제품은 일본 제품의 절반 정도의 가격에 생산되었고, 특히 생사 네가닥을 꼰 견연사(絹撚絲)는 수출이 늘면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정도였다. 1975년에 한국생산성본부 선정 전국 1,000대 기업 중 130위를 차지하였으며, 부산 지역에서는 15위의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당시 매출액은 108억 7,200만 원이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견직은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섬유 공업 회사인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