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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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水産會社 |
영어의미역 | Busan Fisheries Company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석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1가에 있었던 수산업 관련 일본인 회사.
[설립 목적]
부산수산회사는 1889년 조선의 수산물을 매집하여 일본에 수출할 목적으로 당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자본가 10명이 발기하여 설립하였다. 자본금은 5만 원으로 이중 설립 발기인들이 절반을 부담하였다. 발기인에는 당시 부산 지역 경제계를 주도한 일본인 자본가 중에서도 ‘1차 3대 거두’라고 불렸던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사카타 요이치[坂田與一]가 모두 참여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903년에는 부산 어시장을 개장하여 종래의 일본에 대한 수산물 수출 사업 외에 본격적으로 조선 내에서의 수산물 매매·유통 사업을 시작하였다.
[변천]
1907년 5월 기존 회사를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여 재설립하고, 초대 사장은 부산을 거점으로 무역업과 제약소(製藥所)를 경영하고 있던 야바시 칸이치로[矢橋寬一郎]가 선임되었다. 자본금은 70만 원으로 이중 35만 원이 불입되었다. 사업 영역은 기존 수산물 매매·유통·대일 수출 외에 어장 조사, 수송, 수산물 제조 가공, 수산물 냉장용 제빙 및 판매, 자금 대여 등으로 보다 다각화되었다. 주요 투자자로는 기존 3대 거두 외에 진해만 어장 경영을 통해 부산 지역 대자본가로 급성장한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郎]가 가세하였다. 카시이 겐타로는 오이케 츄스케, 하자마 후사타로와 함께 부산 지역 일본인 자본가를 대표하는 ‘2차 3대 거두’로 일컬어졌다.
1911년 오이케 츄스케가 2대 사장에 취임했고, 1929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그리고 오이케 츄스케가 사망한 1930년부터는 카시이 겐타로가 사장으로 일제 패망 때까지 회사를 경영하였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철수한 이후에는 귀속 재산으로 미군정에 접수되었다. 그리고 미군정의 관리를 거쳐 한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 20일자로 52만 원에 이윤영(李允榮)에게 불하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수산회사는 남해안 거문도 등에 출장소를, 통영에는 지점을 설치해 어획고를 올렸다. 어획된 수산물들은 부산 어시장을 통해 조선 내부 시장에 유통시키는 한편으로 일본, 만주에 대한 수출도 행하였다. 일본의 경우 부산에서 인접한 큐슈[九州], 칸사이[関西] 등 일본 서부 지역에 시장권을 형성하였고, 만주의 경우 안동, 장춘 지역이 중심이었다. 1930년대 일본의 대륙 침략에 편승하여 만주는 물론 중국 화북 지역까지 수출 시장을 넓히면서 수출의 비중이 전체 수산물 유통의 70%를 차지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수산회사는 일본인이 경영한 수산업 분야의 대표 회사로 근대성과 식민지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일제 강점기 수산업의 전개 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