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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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島神祠 |
영어의미역 | Samdosinsa Shrine |
분야 | 종교/신종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2가|남항동 2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었던 신사.
[설립 목적]
신사(神社, 혹은 神祠)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찍이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 종교와 습합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적 성격을 지닌 종교로 자리 잡았으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천황제 근대 국가를 떠받치는 중요 이데올로기적 지주가 되었고, 본국을 넘어 국외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영도에 설치된 삼도신사(三島神祠)[미지마진자] 역시 식민지에서 일본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의 통합을 위해 설치되었다.
[변천]
삼도신사는 중산평조(中山平助) 외 18명에 의해 1932년 10월 8일 경상남도 부산부 영선정[현재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일명 ‘주갑’]에 설립되었다. 이후 1937년 면적 6,600㎡[2,000평]의 목도 공원(牧島公園)이 건설되자, 그곳으로 이설되었다. 1930년과 1938년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현재의 대평동 2가 지역에 신사가, 남항동 2가 지역에 공원이 새로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삼도신사는 최초 대평동 2가에 설치되었다가, 1938년 이래 남항동 2가로 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삼도신사의 제신에 대해서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식민지 각 지역에 설립된 신사의 제신(祭神)은 제국 일본의 팽창과 식민지 통합을 위해 천황제 이데올로기 확산에 적합한 상징적 인물이 선정되었으므로, 영도의 삼도신사의 경우도 이러한 일반적 흐름과 일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일본 내에서의 삼도신사의 수는 약 700사 정도이며, 제신은 대산지신(大山祇神)[오야마츠미노카미]과 사대주신(事代主神)[고토시로누시노카미]의 양자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모두 일본의 건국과 관련된 신화적 인물이다.
[현황]
일제 강점기의 신사는 대개 해방과 동시에 철거되었는데, 영도의 삼도신사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현재 상세히 알 수 없다. 해방 이전 폐사되었는지, 해방 이후 철거되었는지조차 불명확하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신사는 우리 민족의 일상에까지 침투한 군국주의의 학습장이었다. 삼도신사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사적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