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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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南銀行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이근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었던 금융 기관.
[설립 목적]
경남은행(慶南銀行)은 은행 금융업을 통한 사업의 확대와 한국인 기업인의 사업 기반을 위한 금융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09년 2월 11일 구포저축[경남은행 전신]이 구포 지역의 물산 객주(物産客主)[장사치를 집에 머물러 묵게 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소개 또는 흥정을 붙이는 일을 주로 함]와 지주 70여 명이 중심이 되어 만든 저축 계를 모태로 하여 설립되었다. 자본금 25만 원으로 합자 형식으로 출발하였으며, 창립의 산파역을 하였던 사람은 박기종의 사위인 만석꾼 지주 윤상은(尹相殷)과 물산 객주 장우석(張禹錫)이었다.
1912년 6월 23일 구포저축에서 구포은행으로 개명하여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 후 구포은행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따른 호황에 힘입어 영업을 확장하기 위해 1915년 1월 24일 은행의 상호를 구포은행에서 경남은행으로 변경하였으며, 본점을 부산부 좌이면 구포리 362번지에서 부산부 초량동 619번지[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로 옮겼다. 1918년 경남은행은 전봉준과 김홍조 등이 발족한 주일은행을 흡수하였다. 1928년 8월 대구은행과 합병하여 경상합동은행이 되었다. 1941년 한성은행에 합병되면서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남은행의 공칭 자본(公稱資本)[정관에 기재·등기한 자본의 총액]은 50만 원이었고 납입 자본(納入資本)[주주가 실제로 납입한 자본]은 12만 5000원이었다. 경남은행은 예금과 대금업, 어음 할인업 등을 주요 업무로 취급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남은행은 1909년 구포저축으로 발족하여 1941년 한성은행에 합병될 때까지 일제 강점기 부산에 본점을 두고 금융업에 종사한 민족계 보통 은행이었다. 한국 최초의 민족계 지방 은행인 경남은행의 주 고객은 지역의 한국인 기업인이 대부분이어서, 한국인 기업인의 사업 기반 확보를 크게 지원하였다. 또한 경남 일대 지주들이 토지를 저당하고 대출을 받아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주는 창구로 활용되었다. 특히 대주주인 윤상은이 이사를 맡으면서 독립 자금 대출을 넉넉하고도 은밀하게 지원하여 당시 동포 사이에서 민족 은행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