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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헌병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08
한자 釜山憲兵分隊
영어의미역 Busan police squad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7[대청동 2가 7-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 경찰 기구
설립 시기/일시 1896년 9월 2일연표보기 - 임시헌병대 부산지부로 설치
해체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해체
이전 시기/일시 1911년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4가에서 대청동 2가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898년 12월 - 임시헌병대 부산지부에서 제3구 부산분견대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06년 10월 29일 - 제3구 부산분견대에서 제14헌병대 부산분대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08년 3월 - 제14헌병대 부산분대에서 대구헌병분대 부산분대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10년 7월 - 대구헌병분대 부산분대에서 진주헌병대 부산분대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19년 12월 1일 - 진주헌병대 부산분대에서 대구헌병대 부산헌병분대로 개칭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4가
주소 변경 이력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7-1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군사 경찰 기구.

[설립 목적]

부산헌병분대는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의 중심 기구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군사, 경찰 사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부산헌병분대는 부산 일본인 거류지 일본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1896년 9월 2일 ‘임시헌병대 부산지부’라는 명칭으로 부산항 서정 4정목에 설치되었다. 1898년 12월에는 구대(區隊)의 편성을 고쳐 ‘제3구 부산분견대’로 개칭되었다. 통감부가 설치되고 다시 1906년 10월 29일 ‘제14헌병대 부산분대’로 개칭하고 관할 구역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원으로 확장하며 본격적인 식민 탄압 통치 기구로 자리매김하였다.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원에서 전개된 조선인들의 의병 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하기 위해 1908년 3월에는 헌병분대 본부를 대구로 이전하고 동시에 ‘대구헌병분대 부산분대’로 개칭하였다. 1910년 7월에는 ‘진주헌병대 부산분대’라고 고치고 관할하는 지역인 동래 외 7개소에 분견소를 두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 후 본격적인 식민 통치와 무단 통치의 식민 탄압 기구로서 1911년 대청정 2정목에 청사를 신축하고 무단통치의 중심이 되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의 전민족적 저항인 3·1 운동 이후 기만적인 문화 통치 시기에도 보통 경찰 업무만을 경찰에게 넘겨주고 여전히 군사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1919년 12월 1일 ‘대구헌병대 부산헌병분대’로 개칭하고 일제 강점기 내내 부산·동래·양산·김해·밀양·울산 등을 관할 지역으로 하여 수많은 독립운동을 탄압하였다.

[현황]

부산헌병분대가 있었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7-1번지에는 현재 현대식 복합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87년까지도 일본군 부산헌병대로 사용했던 벽돌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현 건물을 신축하면서 멸실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부산·경상남도 지역 대표적인 탄압 기구로, 지역사 연구의 주요 대상이 되며, 이후 세대에게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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