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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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하여 「부산 영산재」 나비춤 예능 보유자가 된 범패승. 본관은 김해. 호는 해강(海岡). 아버지는 김두옥(金斗玉)이다. 김영규(金英奎)[1919~2007]는 1919년 7월 20일에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월평리에서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두옥은 슬하의 자녀들이 자꾸 죽자 김영규를 사찰로 보냈다. 그리하여 1932년 경상남도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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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종교 지도자. 광덕(光德)[1927~1999]의 본명은 고병완(高秉完)이고, 금하(金河)라는 별칭을 사용하였다. 1927년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리[현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내리]의 유교적 가풍을 지닌 평범한 소농의 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통신 강좌를 통해 5년제 중학 과정의 학력을 취득하였다. 이 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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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9호 「부산 영산재」 범패 및 장엄 보유자. 구암(九庵)[1926~2002]은 1926년에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서 태어나, 11세 무렵인 1936년에 기장 일광포교당 승려 이인봉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행자 생활을 하며 양산 상북보통학교를 다녔다. 8·15 광복 이후 통도사 강원에 입학하여 수학하며 승려 이월요(李月寮)로부터 범패를 배워 기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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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불교 미술가. 권정두(權廷斗)[1913~1969]는 1913년 경상북도 포항의 보경사에서 승려 용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경주 기림사 법당에 모셔진 건칠불을 보고 조형미에 감동을 받아 찰흙으로 모작하였다. 이것을 본 부친 용성이 1928년 승려 완호의 문하에 입문시켜 불화와 불상 등 불교 미술을 전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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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종교인. 기석호(奇石虎)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활동 시기로 보아 1900년대 전반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기석호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는 1921년 선학원이 창설된 이후였다. 1922년 기석호는 오성월(吳惺月)·오이산(吳梨山) 등 범어사 승려들을 중심으로 선우공제회를 창립하였다. 선우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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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경산(金擎山)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알 수 없다. 1910년에 명정학교에서 교육에 종사하였다는 신문 기사로 보아 1900년 이전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김경산은 1919년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에 서명을 하면서 종교계의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선불교소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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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김경홍(金敬弘)[1897~?]은 1897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1917년 범어사 명정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1년 일제는 한국 불교를 조선총독부의 감독 하에 둔다는 「사찰령」을 공포하였다. 이에 김경홍을 비롯한 한국 불교계 인물들은 1921년 불교유신회를 조직하여 조선 불교 승려 대회를 열고, 「사찰령」 폐지 건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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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불교계 사회주의자로, 말년에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김광호(金光浩)의 출생 시기와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보아 1900년 이후 서울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에는 일본 유학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에 김광호는 19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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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김기추(金基秋)[1908~1985]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190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백봉(白峯)이라는 별칭을 썼다. 10세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던 김기추는 11세에 부산으로 이주하여 영도소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 시절 김기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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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종교 지도자. 김남천(金南泉)의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알려진 바 없다. 활동 시기를 미루어 볼 때에 190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국권 강탈 이후 일제의 불교 정책으로 조선 불교가 왜색으로 변하는 폐단을 막고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자 임제종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당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범어사 서울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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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상호(金尙昊)[1889~1965]는 1889년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덕포리[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에서 태어났다. 1897년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5년에 출가하여 범어사 성해(性海)의 제자가 되었다. 1913년 범어사 명정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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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시인. 김어수(金魚水)[1909~1985]는 1909년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직동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소석(金素石)이다. 김어수의 아버지가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규탄을 하였으나 한일 늑약이 체결되자 가족 모두 부산으로 피신을 와 범어사에 의탁하게 되었다. 13세가 되던 해인 1922년 김어수는 범어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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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범어사 3·1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해관(金海管)의 생몰년과 가계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다. 김해관의 원적은 경상북도 의성군이고, 본적은 부산 동래의 북면 남산[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일대]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김해관은 범어사 지방학림[현 금정중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이때 서울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소식을 전하고 동래 지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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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불교어산회에서 활동하며 부산의 불교 의식을 거행한 범패승. 대붕(大鵬)[1915~1972]은 속명이 박종희(朴宗熙)이다. 1915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 만어읍 용전리에서 5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서당에서 한자(漢字)를 공부하였고, 1932년 17세에 범어사로 출가하였다. 1940년대 초반에는 친척 일가가 주지로 있는 부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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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범어사에서 부산불교어산회를 조직하여 범패승들을 지도한 부산 지역의 제1세대 어장. 대산(大山)은 태어난 해와 작고한 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70년대에 태어나 1942년에 작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범어사의 이름난 어장(魚丈)[불교 의례에서 범패의 전 과정을 하는 승려]이자 학자이었다. 대산은 특히 글씨를 매우 잘 써서 서체만 해도 세 가지로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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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 운동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승려.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 호는 담해(湛海). 덕기(德基)[1860~1933]는 1860년 울산에서 태어나 18세에 출가하였다. 스승은 승려 연운(蓮雲)이고, 30세에 승려 우봉(友峯)에게 법을 받았으며, 경전에 두루 밝았다. 1900년대 초 범어사의 내원암과 원응료 등에 선원(禪院)을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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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바라춤을 전수한 범패승. 만해(宋滿海) [1910~?]는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서 태어나 동자승으로 자라며 불교 의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웠다. 속명은 송술용(宋述龍)이다. 원래 어머니는 비구니였으나 만해를 낳고는 퇴속하였고, 삼촌 월암이 있는 법주사에서 어릴 때부터 동자승으로 자랐다. 1923년 무렵 불교 의식인 상주권공(常住勸供)을 다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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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산 범어사의 중창 불사에 관여하였던 승려. 명학(明鶴)은 조선 시대 숙종 연간에 금정산 범어사에서 주석(駐錫)하였던 승려였다. 설화로 전해지는 내용을 보면 명학은 사판승(事判僧)으로 절 방앗간 소임을 맡아보며, 동시에 사중(寺中)의 전답 관리 책임을 도맡아서 수천 석이 넘는 사중 재산을 관리하였다. 그런데 재산을 많이 모아 돈을 주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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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불교계 교육자. 문록선(文錄善)의 생몰년이나 가계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29년 7월 6일 문록선은 조선불교전수학교에서 개최하는 하기 순회강연 대회에 영남 지역 연사로 선발되어 강연하는 등 활발한 불교 관련 강연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에는 『금강전』이라는 불교 잡지에 글을 기고하였다. 이후 1932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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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종교인. 박성희(朴成熙)는 범어사 지방학림 출신으로,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33년에는 일본 도쿄 일본체육회 체조학교 고등과에서 유학하였다.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범어사는 범어사 지방학림의 사교과(四敎科) 과정과 대교과(大敎科) 과정을 이수한 학생 가운데 인재를 선발하여 공비생(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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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박영주(朴永珠)는 경상남도 양산군 하서면에서 태어나, 범어사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영주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1919년 서울에서 3·1 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산에서도 범어사의 승려와 학생 등 7명이 참가하였다. 이들이 돌아와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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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와 서울 등지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본명은 최영환(崔英煥), 당호는 금봉(錦峯), 법호는 효당(曉堂), 호는 석란 또는 소소생. 아버지는 최종호(崔鍾浩)이고, 어머니는 김순련이다. 범술(凡述)[1904~1979]은 1904년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 금전리[현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반개라는 어촌에서 태어났다. 13세에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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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후 범어사 어산회에 소속되어 부산에서 불교 의식 활동을 한 범패승. 벽파(碧坡)[1893~1960]는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박경문(朴敬文)이며, 또 다른 이름으로 박경원(朴敬元)이라고도 불렸다. 1910년 무렵 범어사에서 출가하여 계속 큰 절에 머물면서 수행과 불교 의식 활동을 하였다. 1910년 출가 이후 범어사 승려 대산의 소리 제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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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한 승려. 보혜(普慧)의 호는 회산(晦山)이며, 어려서 범어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송광사(松廣寺)·보림사(寶林寺)·대흥사(大興寺) 등지를 다니면서 인곡(仁谷)·법천(法泉) 등으로부터 선과 교를 배웠고, 유교 서적을 공부하였다. 특히 전라남도 나주 덕룡산(德龍山) 불회사(佛會寺) 일봉암(日封庵)에 머무르고 있던 인곡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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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일본 동본원사에서 파견되어 부산별원 윤번으로 활동하였던 일본인 승려. 삼룡도(森龍道)는 일본 시가 현[滋賀縣] 출신으로 1931년에 일본 동본원사(東本願寺)에서 파견되어 부산별원 윤번(輪番)으로 활동하였다. 삼룡도가 윤번으로 있던 1935년 3월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오랜 현안이었던 고리(庫裡)[절의 부엌]와 서원(書院) 및 종당(鐘堂)을 개축하였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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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선승. 성수(性粹)는 속성은 동래 정씨(東萊鄭氏)로 1889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02년 13세에 팔공산 은해사(銀海寺)[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479]로 출가하여 일원(一圓)을 은사로 득도하고 성수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2년 은해사 불교 전문 강원 전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같은 해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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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부산 범어사를 비롯한 전국을 무대로 선풍(禪風)을 일으킨 승려.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아버지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성우[1846~1912]는 1846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에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광주 청계사에서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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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승려 화가이자 교육자. 본명은 공암회(孔岩回), 호는 석하(石霞). 아버지는 공봉수(孔鳳樹)이고, 어머니는 이씨이다. 1920년대 부산 영도의 복천사(福泉寺)는 완호(玩虎) 낙현(洛現)이 불화와 불상 등을 제작하고 제자를 길렀던 한국 불교 3대 불화소(佛畵所) 가운데 하나였다. 불화소란 불화를 그리는 불모(佛母)를 양성하며 그 불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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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범어사 서울포교당 등지에서 불교 개혁과 항일 운동을 벌인 승려. 신상완(申尙玩)[1891~1951]은 중앙학림[현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5년 평안북도 철산군 고성면의 국청사에서 주지를 지냈으며, 1917년 영장사·천왕사·나한사의 주지를 겸임하였다. 1919년에는 수원 용주사(龍珠寺)의 승려였다. 1919년 2월 28일 밤 유심회(惟心會)를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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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양태문(梁泰汶)[1902~1941]은 1902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서 태어나, 일찍이 범어사로 출가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양태문은 명정학교[현 청룡초등학교]의 학생이었다. 1919년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던 김법린(金法麟), 김상헌(金祥憲) 등이 범어사로 돌아와 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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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전향한 친일 승려. 영담(暎潭)[1896~?]은 1896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경주(金敬注)이고, 법명이 영담이다. 1908년 범어사의 승려 용곡(龍谷)을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고, 오성월(吳性月)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911년 명정학교를 수료하고, 1915년 서울 휘문의숙[현 휘문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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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범패승. 영봉(靈峰)은 190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에는 일본에 거주하다가 부산으로 들어와 40세 이후 늦은 나이에 승려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하고 큰 절에서 정식 과정을 밟고 승려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부산에서는 범어사 출신의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부산불교어산회를 조직하여 범패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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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불교어산회에서 활동하며 부산의 불교 의식을 위해 노력한 범패승. 영파(暎坡)[1906~1975]는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속명은김수석(金壽石)이다. 21살 때 부산광역시 사하구 대치 마을[현 괴정 3동]로 내려와 결혼을 하였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 해방 무렵 다시 충청도로 이주하여 보광원 주지로 주석하였는데, 그때 고아원도 함께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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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에서 불교 개혁 운동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승려. 오성월(吳惺月)[1865~1943]은 1865년 7월 15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온산면 강양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에서 태어났다. 1885년 9월 30일 범어사에서 출가하였고, 1886년 4월부터 1893년 7월까지 경상북도 예천군의 용문사(龍門寺)에서, 1893년 8월부터 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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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범음 범패로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1호였던 범어사 출신의 승려. 용운(龍雲)[1895~1972]은 속명이 김상우(金祥祐)이다. 부산 팔송정 노포에서 태어났다. 범어사 대산 스님의 상좌로 출가하였다. 지극한 기도 후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목이 트였다는 일화가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경학(經學)에는 어려움이 있어 오로지 범성(梵聲)으로써 수행의 열정과 덕목을 완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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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 아버지는 이종빈(李鍾彬)이고, 어머니는 백천 조씨(白川趙氏)이다. 속명은 이학수(李學洙)이나 뒷날 이시열(李施說)로 개명하였다. 법호는 운허(耘虛)이고, 법명은 용하(龍夏)이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와는 6촌 지간이다. 해방 이후에는 이운허(李耘虛)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박용하(朴龍夏)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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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장안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선 후기 선종의 대덕 고승. 월조(月照)는 차성(車成)[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출신으로 당호(堂號)가 월조이고, 속성이 장씨이며, 이름이 극존(克存)이다. 수관정사(粹寬定師)에게 출가하였다가 향파(香坡)에게 교종을 배웠으며, 선종 승려인 청소(靑霄)에게 선지(禪旨)를 받은 다음, 서산 대사(西山大師) 청허(淸虛)의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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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한 승려이자 제헌 국회 의원을 지낸 정치인.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희천(希天), 속명은 유성갑(柳聖甲), 호적 이름은 유중환(柳重桓). 법명은 성안(性眼), 법호는 석계(石溪). 1910년 음력 11월 11일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대룡리 오리 마을에서 아버지 유화권(柳花權), 어머니 고령 신씨(高靈申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증조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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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3,000여 명의 포로를 데리고 온 조선 시대의 승려이자 승병장. 본관은 풍천(豊川).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峰). 유정(惟政)은 법명이다. 아버지는 임수성(任守成)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유정[1544~1610]은 1544년(중종 39)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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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동본원사 부산별원의 오쿠무라 엔신과 교류하였던 개화파 승려. 이동인(李東仁)[?~1881]의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소속에 대해서도 불명확한 점이 많다. 그동안 이동인이 부산 출신으로 범어사, 혹은 봉원사의 승려였다는 등의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으나, 지리적인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에 개항 당시 이동인의 소속은 오쿠무라 엔신[奧村圓心]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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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 지원으로 일본에서 유학하고 교육계에 투신한 교육자. 이윤근(李潤根)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938년에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을 졸업하였다. 1941년에 범어사의 후원을 받아 일본의 동양대학(東洋大學) 예과(豫科)에서 유학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범어사는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는데, 범어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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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불교인. 정귀인(鄭貴仁)의 생몰년이나 출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동래의 정정의숙을 졸업하고 야학을 설립하였다. 정귀인은 1922년 동래 지역 여성들의 지식 계발을 목적으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창립된 동래불교여자청년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이후에는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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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종교 지도자. 정일(正一)[1909~2004]은 1909년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강계중이다. 강석주(姜昔珠)라고도 한다. 정일은 법명이다.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였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친척 집의 필방을 전전하였다. 1922년 승려 남천(南泉)을 만나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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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친일 매불 타도 운동을 전개한 승려. 본관은 밀양. 자는 한영(漢永), 호는 영호(映湖) 또는 석전(石顚). 법명이 정호(鼎鎬)이다. 아버지는 박성용(朴聖容)이며 어머니는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정호[1870~1948]는 1870년 9월 14일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조사리에서 박성용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가 이전인 187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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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의 지원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교육자. 조은택(趙殷澤)[1897~1972]은 1927년 범어사의 지원으로 동경물리학교(東京物理學校)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범어사는 범어사 지방학림의 사교과(四敎科) 과정과 대교과(大敎科) 과정을 이수한 학생 가운데 인재를 공비생(公費生)으로 선발하여, 서울의 휘문의숙[현 휘문고등학교]과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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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출신으로 1950년대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선 승려. 지효(智曉)[1909~1989]는 1909년 평안북도 정주의 운흥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범어사로 출가하여 승려 동산(東山)의 상좌가 되었다. 1955년 은사인 승려 동산을 비롯해 승려 청담·구산 등이 중심이 되어 대처승을 제거하기 위한 불교 정화 운동을 벌일 때에 이 운동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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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임제종 운동을 벌인 승려. 진응(震應)[1873~1941]은 성은 진씨(陳氏), 법호는 혜찬(慧燦)으로, 1873년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에서 태어났다. 15세 되던 1887년에 구례 화엄사에서 응암(應庵)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와 선암사에서 수행한 뒤, 1896년 응암의 법을 이었다. 1913년 2월 23일 호은율사(虎隱律師)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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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이자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본관은 수원.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법명은 진종(震鍾), 법호는 용성(龍城)이다.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밀양 손씨이다. 진종[1864~1940]은 1864년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에서 태어났다. 16세에 해인사 극락암 승려 화월 아래서 출가하였으며, 이후 고운사·통도사·송광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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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친일 승려. 아버지는 차인수(車仁守)이고, 어머니는 이수년(李守年)이다. 1923년 최학전(崔學傳)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다. 차상명(車相明)[1895~1945]은 1895년 8월 2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교리[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차인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차상명은 일찍이 범어사(梵漁寺)에 들어가 명정학교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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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9호 부산 영산재 바라춤을 전수한 승려. 청공(晴空)[1932~2009]은 1932년 6월 19일 해인사 인근 마을인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에서 출생하여 가야면 소재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4살 되던 1945년 해인사로 출가, 박인봉의 상좌로 수행을 시작하여 해인사 강원에서 수학하면서 염불과 기타 재식에 관련된 기량을 익혔다.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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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최중근(崔重謹)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최중근은 1928년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조선 불교 학인 대회에 범어사를 대표하는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조선 불교 학인 대회는 당시 불교계의 모순을 개혁하려는 학승들이 계획한 집회였다. 조선 불교 학인 대회의 발기 모임은 1927년 10월 29일 저녁 7시 개운사에서 개최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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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최환권(崔煥權)의 생몰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1928년 조선 불교 학인 대회에 최환근은 범어사를 대표하여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조선 불교 학인 대회는 1928년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각황사[조계사의 전신]에서 불교계의 모순을 개혁하려는 학승들이 개최한 집회였다. 1927년 10월 29일 저녁 7시 개운사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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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장안사 대웅전의 중건 불사를 맡은 조선 후기의 승려. 학능(學能)은 1657년(효종 8) 2월 4일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한 불광산 장안사 대웅전의 중건 불사 때 승려 희인(熙印)·담현(曇玄)·조웅(祖雄)과 함께 기와를 잇는 작업을 맡은 승려 와장(瓦匠)이었다. 1660년(현종 1) 김방한(金邦翰)이 지은 「장안사 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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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활동한 불교 개혁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정옥(貞玉), 아명은 한유천(韓裕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卍海). 아버지는 한응준(韓應俊)이며 어머니는 온양 방씨이다. 한용운[1879~1944]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슬하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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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한혼해(韓混海)의 이력은 자세히 남아 있지 않으나 범어사 주지를 지낸 오성월(吳惺月)이 제자였다. 오성월은 1886년 4월부터 1893년 7월까지 경상북도 예천군의 용문사 강원에서 한혼해를 스승으로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 과정을 마쳤고, 1893년 8월부터 1897년 7월까지는 범어사 강원에서 한혼해를 스승으로 불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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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불교어산회에서 활동한 범패 강사이면서 불교 작법인 나비춤을 부산 지역에 전수한 승려. 함허(含虛)[1884~?]는 1884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속명과 가족 관계는 잘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 범어사에서 출가하여 대교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지식인이었다. 즉 엘리트이자 부산의 1세대 어장(魚丈)[범패의 모든 단계를 가르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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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부산 범어사 등에서 활동한 승려. 속명은 김진탁(金震鐸), 법명은 혜림(蕙林), 법호는 향곡(香谷). 아버지는 김원묵(金元默)이고, 어머니는 김적정행(金寂靜行)이다. 혜림[1912~1978]은 1912년 1월 18일[음력]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토성리[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16세에 천성산 내원사로 출가하여 범어사 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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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선암사 등지에서 선풍을 일으킨 승려. 본관은 평산(平山). 속성은 신씨(申氏), 법호는 혜월(慧月)이다. 혜명(慧明)[1862~1937]은 1862년 6월 19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정혜사로 입산하여, 15세에 승려 혜안(慧眼)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24세 되던 1885년 경허(鏡虛)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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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선풍 진작과 불교 정화 운동을 주도한 승려.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하동규(河東奎), 또는 하봉규(河鳳奎), 법명은 혜일(慧日), 법호는 동산(東山). 하동산(河東山)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하성창(河聖昌)이고, 어머니는 정경운(鄭敬雲)이다. 혜일[1890~1965]은 1890년 2월 25일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상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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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부산 범어사 3·1 운동에 참여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황만우(黃滿宇)[1898~1953]는 1898년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현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범어사에 입산하여 범어사 명정학교를 졸업한 후에 범어사 지방학림에 진학하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이었던 황만우는 범어사의 청년 승려와 명정학교·지방학림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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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토진종 대곡파 일본인 승려. 광야혜수(廣野惠粹)는 진종 대곡파 본원사 부산별원(眞宗大谷派本願寺釜山別院)의 윤번(輪番)으로 파견되었다. 정토진종 대곡파(淨土眞宗大谷派)는 일본 불교의 종파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서 포교 활동을 한 종파였다. 이들은 1877년 부산에 오촌원심(奧村圓心)과 평야혜수(平野惠粹)을 파견하여 포교소를 세우고,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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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금강사를 건립한 일본인 승려. 견전정조(見田政照)는 일본 아이치 현[愛知縣]에서 태어나, 1917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집안 대대로 자제 중 한 사람을 불문에 귀의하게 하는 전통에 의해 불교를 수학하였다. 절주(絶州)의 고야산대학림(高野山大學林)[현 고야산대학]을 졸업하였다. 견전정조는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한국 포교 계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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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일련종 묘각사의 주지를 지낸 일본인 승려. 한국으로 이주하기 전 고좌현조(高佐顯照)의 이력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1935년 부산 일련종 묘각사(日蓮宗妙覺寺)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일련종은 니치렌 조사[日蓮祖師]를 개조(開祖)로 하는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이다. 니치렌은 천태종(天台宗)의 법화 사상(法華思想)을 배우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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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부산 진종 대곡파 본원사 부산별원 주지를 지낸 일본인 승려. 관원적성(管原磧城)은 1897년에 진종 대곡파 본원사 부산별원(眞宗大谷派本願寺釜山別院)의 윤번(輪番)으로 파견되었다. 진종 대곡파 본원사 부산별원은 일본 불교의 종파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들어와 포교 활동을 한 정토진종 대곡파(淨土眞宗大谷派)가 세운 절이었다. 이들은 1877년 부산에 오쿠무라 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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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승려. 대전수산(大田秀山)[1890~?]은 1890년 일본 시마네 현[島根縣] 시천군(簛川郡) 고빈촌(高濱村) 자상송(字常松)에서 태어났다. 동경종교대학(東京宗敎大學) 연구과를 졸업하고, 1914년에 미국 하와이에 정토종(淨土宗) 개교사(開敎師)로 가기도 하였다. 1921년 12월 정토종 조선 개교사로 부산으로 건너왔다. 대전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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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동본원사 부산별원에서 활동한 일본의 포교승. 오쿠무라 엔신[奧村圓心][1843~1913]은 1943년 일본 규슈[九州] 사가 현[佐賀縣] 가라쓰[唐津]에서 태어났다. 1876년에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이 개항되자, 오쿠무라 엔신은 일본 정부와 교단 본부인 동본원사(東本願寺)의 명을 받고 히라노 케이스이[平野惠粹]와 함께 1877년 9월 28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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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일본인 승려. 용말법동(龍末法憧)[1864~?]은 1864년 3월 7일 일본 시마네 현[島根縣] 안농군(安濃郡) 파근동촌(波根東村)에서 태어났다. 1878년 12월 출가하여 패를 받았다. 1891년 교사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명선사(明善寺)의 주직(住職)이 되었다. 1891년 10월 대학림(大學林)의 교수보(敎授補)를 거쳐, 18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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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불교 미술가. 월주(月洲) 덕문(德文)[1913~1992]은 1913년 12월 1일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속세에 살면 단명한다’는 말에 따라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를 수료한 직후인 1925년 13세의 나이에 부모에 의해 범어사 암자인 복천암(福泉庵)으로 출가하였다. 당시 복천암은 불모(佛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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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정토진종 계통의 서본원사 부산별원의 윤번. 전등철장(槇藤哲藏)은 일본 시마네 현[島根縣] 출신으로, 서본원사(西本願寺) 본산(本山)에서 파견된 서본원사 부산별원의 윤번(輪番)이었다. 윤번은 주직(住職)이라고도 부르는데, 주지(住持)를 의미한다. 전등철장이 윤번으로 재임하던 1935년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을 합해 7천여 호의 신자가 있었다....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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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사학 운영자. 김길창(金吉昌)[1892~1977]은 1892년 11월 11일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에서 태어났다. 9세 되던 해에 그의 집안은 처음으로 기독교를 접하였다. 1923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부산 영선정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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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라크에서 이슬람 무장 단체에 납치되어 살해된 부산 출신의 통역사. 김선일(金鮮一)[1970~2004]은 1970년 9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안창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1980년 부산 운봉초등학교, 1986년 반송중학교, 1990년 용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92년 부산 성심외국어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부산신학교를 졸업하였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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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래 부산에서 민주화 운동·진보 정치 운동·통일 운동에 헌신한 목사이자 사회 운동가. 아버지는 김영정이고, 어머니는 이종연이다. 장인 최성묵은 중부교회 목사이자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다. 김영수(金寧洙)[1952~2002]는 1952년 3월 21일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343번지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9년 무렵 한국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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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민중 신학 연구에 헌신한 신학자이자 목회자. 김정준(金正俊)[1914~1981]은 1914년 11월 6일 부산의 궁벽한 산골인 금정구 금성동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누룩을 만들어 팔아 겨우 먹고 살았으며, 쌀밥은 설날과 추석에만 구경할 만큼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정준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김정준의 신앙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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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개신교 지도자. 노진현(盧震鉉)[1904~2002]은 1904년 8월 28일 동래부 사상면 구포[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부친 노원필과 모친 장소개 사이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노진현은 부산의 동명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항일 학생 운동으로 인하여 수업이 불가능해지자 서울의 중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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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신대학교에 재직하였던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 박윤선(朴允善)[1905~1988]은 1905년 12월 11일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하였으며, 17세 때부터는 기독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을 배우게 되고, 향리의 기독교계 학교인 대동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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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한,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주의 신학자이자 교회 지도자. 박형룡(朴亨龍)[1897~1978]은 1897년 3월 28일에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교식 서당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박형룡은 김익두(金益斗)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입신하였고, 최봉석(崔鳳錫)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톤신학교[Princ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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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천주교 신부. 본관은 분성(盆城). 세례명은 도미니꼬. 1934년 8월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생곡리 272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272번지]에서 아버지 배종진(裵鐘璡)[베네딕토]과 어머니 허복수(許福守)[마리아]의 아들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곡은 분성 배씨(盆城裵氏) 집성촌으로, 배문한의 집안은 증조부 배정문(裵禎紋)[정3품 통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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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 기독교 초기 전도자이자 목사. 서경조(徐景祚)[1852~1938]는 1852년 평안북도 의주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 기독교 신자가 된 형 서상륜(徐相崙)의 전도로 신자가 되었고, 형과 함께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한국 최초의 교회로 일컬어지는 소래교회[송천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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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로 부임하여, 부산에서 고아와 빈민들의 재활에 힘쓴 종교인. 소재건(蘇再建)[1930~1992]은 1930년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알로이시오 슈왈츠(Aloysius Schwartz)이다. 1957년 워싱턴 성마틴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957년 12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신부가 된 이후에 부산에서 6·25 전쟁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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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최초 수세자(受洗者). 심상현(沈相炫)[?~1894]은 부산에서 심인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 가정 배경, 혹은 활동 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심상현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국내 유일한 기록은 백낙준(白樂濬)이 언급한 것으로, ‘멘지스 양의 어학 선생이었던 심 서방’이라는 것이었다. 심상현의 동생 심취명(沈就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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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초기 기독교 지도자. 심취명(沈就明)[1875~1958]은 1875년 12월 5일 심인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심상호(沈相鎬)였으나 후일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심취명으로 개명하였다. 전통적인 양반 가문에서 출생한 심취명은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유가적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심취명이 목회자가 된 것은 그의 형의 영향이었는데, 형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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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건립된 부산 대지교회의 설립자. 이병수(李幷秀)[1859~1947]는 1859년 1월 27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덕면 대저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태어났으며, 낙동강 삼각주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한 부농 출신이었다. 1907년 낙동강을 건너 부산을 왕래하던 가운데 구포에서 한 전도인에 의해 전도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김해 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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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부산 수영 장대골에서 참수된 천주교 순교자. 이정식(李廷植)[1794~1868]은 무인 가문의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동래 병영의 장교를 지냈다. 59세에 이르러 부인 홍주 출신 박씨의 권고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입교한 뒤에는 무관직을 사임하고 천주교의 일부일처의 가르침대로 첩을 내보내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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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 출신의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이며 의사이자 아프리카 선교사. 이태석(李泰錫)[1962~2010] 신부는 1962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아버지 이봉하와 어머니 신명남의 4남 6녀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열심인 부모의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송도성당을 다녔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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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부산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의문사한 목사. 임기윤(林基潤)[1922~1980]은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석정리에서 임찬하의 4남으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 조만식(曺晩植) 선생의 지도 아래 청년 운동을 하던 중 소련군의 체포령이 내려져 남하하게 되었다. 남하 도중에 소련군들에게 포위되어 일시 위기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이때 탈출에 성공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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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지역 출신의 목사. 정덕생(鄭德生)은 1881년 8월 30일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283번지에서 정재진과 오성결의 5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래의 이름은 정치영(鄭致榮)이었으나, 1911년 7월 15일 정덕생으로 개명하였다. 어릴 때는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다른 형제들은 불교를 믿었지만, 정덕생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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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창녕 조씨(昌寧曺氏) 감무공파의 30세손이며, 사우당(四友堂) 조이추(曺爾樞)의 6세손으로, 아버지 조대연의 5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순교 당시 함께 참수당한 조석증(曺錫曾)이 동생이다. 조석빈(曺錫賓)[1825~1872]은 1825년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에서 태어났다. 초기 천주교 신자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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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창녕 조씨(昌寧曺氏) 감무공파의 30세손이며, 사우당(四友堂) 조이추(曺爾樞)의 6세손으로, 아버지 조대연의 5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순교 당시 함께 참수당한 조석빈(曺錫賓)이 형이다. 조석증(曺錫曾)[1834~1872]은 1834년 유서 깊은 창녕 조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천주교로 개종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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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산광역시 동래구 한빛교회에서 활동한 진보적 종교인. 조창섭(趙昌燮)[1927~2007]은 1927년 8월 1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독실한 크리스천 장로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활동하던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의 전도로 기독교를 접하고 당시 신월교회[현 북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의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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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사목하고,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옥사한 개신교 지도자. 아버지는 주현성이고, 어머니는 조재선이다. 주현성은 경남노회 소속 웅천 북부리교회의 장로였다. 주기철(朱基徹)[1897~1944]은 1897년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웅천(熊川)은 조선 초기 내이포(乃而浦) 또는 제포(薺浦)로 불렸으며 일본 세견선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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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신대학교를 설립하고 이사로 활동한 장로교 목사. 주남선(朱南善)[1888~1951]은 1888년 9월 14일 경상남도 거창군 읍내면 동동 28번지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친구 오형선(吳亨善), 조재룡(曺在龍)과 함께 호주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들은 1909년 10월 10일 거창교회를 설립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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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자 종교인. 최성묵(崔聖黙)[1930~1992]은 1930년 11월 11일 경상북도 영일군 흥해면 중성동[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흥해제일교회 소년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6·25 전쟁 때 유격대에 붙잡혀 총격을 받았으나, 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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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1973년 가톨릭 부산교구장으로 사목과 선교 활동에 헌신한 종교인. 세례명은 요한. 아버지는 최봉조[세례명 요한]이고, 어머니는 서해수[세레명 요안나]이다. 최재선(崔再善)[1912~2008]은 1912년 2월 24일에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8남매 중 다섯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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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신대학교를 설립한 목회자이자 신학 교육자. 한상동(韓尙東)[1901~1976]은 1901년 7월 30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한상동의 활동은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첫째는 일제하에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저항과 반대 운동[1936년~1945년], 둘째는 8·15 광복 후 경남노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교회 쇄신 운동[1945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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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강연을 통해 부산 지역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친 종교인이자 사회 사상가.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태어났다. 1917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1~1923년 오산학교에 재학하였다. 1924~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1부에서 수학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평안북도 오산학교에 재학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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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부터 1941년까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호주 출신의 여성 선교사. 본명은 에디 커(Edith Amelia Kerr), 거이득(巨以得)은 한국명이다. 아버지는 제임스 커(James Kerr)이고, 어머니는 메리 가디너(Mary Tayler Gardiner)이다. 아버지 제임스는 스코틀란드(Scotland)의 아버딘(Aberdeen) 출신으로 호주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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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일신여학교 교장을 역임한 호주 장로교 목사이자 선교사. 겔손 엥겔(Gelson Engel)[1868~1954]은 1868년 독일 위템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한국식 이름은 왕길지(王吉志)로, 호주 빅토리아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의 파송을 받고, 1900년 10월 29일 32세의 나이로 내한하였다. 겔손 엥겔은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특출한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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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이자 임진왜란 당시 종군 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1551~1611]는 1551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세스페데스는 살라망까 예수회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신학을 공부하였고, 1569년 1월 28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에는 순방 신부였던 알레한드로 발리그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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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캐나다 출신의 의료 선교사이자 부흥 운동가.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1865~1949]는 1865년 6월 11일에 캐나다 온타리오 주(Ontario) 할디만(Haldiman)에서 태어났다. 하리영(河鯉泳)이라고도 불리었다. 로버트 하디의 초기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칼레도니아(Caledonia)에서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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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호주 장로교 선교사. 매견시(梅見施)[1865~1956]는 1865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맥켄지(Mackenzie)이다. 1910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 부산에 와서 선교와 교육·의료 등 봉사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때 매견시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매견시는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52개 시골 교회를 방문하여 전도와 세례를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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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호주 출신의 초기 여선교사. 미스 브라운(Miss A. Brown)[1868~1954]은 1868년 8월 11일에 호주 빅토리아 주 밸러랫(Ballarat)에서 태어났다. 호주 빅토리아 주 장로교단 소속 여선교사로, 1895년에 내한하여 1935년까지 40년간 한국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 그리고 평양에 체류하며 선교사로, 혹은 선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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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과 통영 지역에서 활동한 초기 호주 장로교의 여선교사. 베지 무어(Miss Elizabeth Bessie S. Moore)[1863~1956]는 1863년 12월 31일 호주 빅토리아 주 데일스포드(Daylesford)에서 태어났으며, 한국 이름은 모이리사백(牟以利沙伯)이다.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의 파송을 받고 1892년 내한하여 1913년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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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일신여학교를 설립한 호주의 여선교사. 벨레 멘지스(Miss Belle Menzies)[1856~1935]는 8·15 광복 전까지 내한하였던 78명의 호주 선교사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교사 중의 한 사람으로 부산에서 1891년부터 1924년까지 일하였다. 멘지스는 후배 선교사들에 의해 흔히 ‘호주 선교부의 어머니’ 혹은 ‘대모(代母, 大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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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최초의 개척 전도자로 활동한 선교사의 아내. 애니 베어드(Annie Baird)[1864~1916]는 1864년 9월 15일 미국 인디애나 주 디케이터 카운티에서 태어났으며, 안애리(安愛理)라고도 불리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Rev. William M. Baird)[일명 배위량(裵緯良)]의 아내였다. 1891년 한국에 온 후,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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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호주 장로교 초기 선교사. 앤드류 아담슨(Andrew Adamson)[1860~1915]은 1894년 내한하여 1911년까지 부산 초량에서, 1911년 이후 1914년까지 마산에서 활동한 영국 출신의 호주 장로교 소속 선교사이다. 영국성서공회 선교사로 중국에서 5년간 일한 바 있는 앤드류 아담슨은 1894년 5월 20일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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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연구와 성경 번역에 기여한 부산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제임스 스카트 게일(James Scarth Gale)[1863~1937]은 해방 전까지 한국에 왔던 1,480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한국학 연구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제임스 스카트 게일은 선교사면서도 탁월한 언어학자였고, 저술가였으며 번역가였고, 역사가이자 민속학자였고, 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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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부산과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목사. 제임스 아담스(James S. Adams)[1867~1929]는 1867년 5월 2일 미국 캔사스 주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에서 안의와(安義窩)라고도 불렸다. 미국 북장로교 부산선교부를 개척한 윌리엄 베어드(William Baird)의 처남이었다. 1895년 내한하여 2년간 부산에서 체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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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사망한 첫 호주 장로교 선교사. 한국 이름은 덕배시(德倍時)이다. 부모는 영국 쉬레스버그(Shrewsburg) 출신으로 흔히 형제교회라고 불리는 플리머스형제단(Plymouth Brethren)에 속한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12남매 중 네 사람, 즉 조셉 헨리 데이비스(J. Henry Davies)와 누나 메리가 한국 선교사로, 동생 타보르(T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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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에서 활동한 호주 장로교 선교사이자 목사. 존 멕카이(James H. Mackay)[1857~1917]는 1857년 8월 20일 스코틀랜드 덤프리셔(Dumfriesshire)에서 태어났다. 호주 빅토리아 주 밸러랫(Ballatt)의 성 요한교회(St. John's Church) 담임 목사[1888년~1891년]였던 멕카이는 빅토리아 주 청년연합회의 파송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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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도한 최초의 성공회 신부. 존 월푸(John R. Wolfe) 주교[1832~1915]는 183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영국교회[성공회]의 목사로 활동하였다. 1861년 12월 중국 푸저우[福州]에 와서 1915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53년간 남중국의 영국교회 선교회[CMS, Church Missionary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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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호주 출신의 여선교사. 진 페리(Miss Jean Perry)[?~1935]는 호주 빅토리아 주 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의 파송을 받고 내한한 초기 호주 선교사 중의 한 사람으로, 1891년 10월 12일 부산에 왔다. 이후 호주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옮겨 걸인, 유랑자 및 고아와 맹인 소년·소녀들을 위해 독립 선교사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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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 찰스 어빈(Charles H. Irvin)[1862~1935]은 1862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어을빈(漁乙彬)이라고도 불렸다. 미국 북장로교[PCUSA] 소속 의료 선교사로 윌리엄 베어드(Rev. William M. Baird)[배위량(裵緯良)], 휴 브라운(H.M.Brown)에 이어 1894년 3월 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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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첫 장로교 목사 선교사로 부산 기독교 선교의 출발에 영향을 준 인물. 한국 이름은 원두우(元杜尤)이다. 아버지는 존 언더우드(John Underwood)이고,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그랜트 마리(Elisabeth Grant Marie)이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는 1859년 영국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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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북장로교의 첫 의료 선교사. 휴 브라운(Hugh M. Brown)[1867~1896]은 미국북장로교[PCUSA]가 부산에 파송한 첫 의료 선교사였다. 1891년 12월 8일 내한하여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지내다가, 부산 지역 첫 미국북장로교 선교사인 윌리엄 베어드(Rev. William M. Baird)[배위량(裵緯良)]의 뒤를 이어 18...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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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인. 김호직(金浩稙)[1905~1959]은 1905년 4월 16일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태어났다. 1924년에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0년에는 동경제국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다.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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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부산 지역에 기장신앙촌을 건립한 천부교 창시자. 아버지는 박영진(朴永鎭)이고, 어머니는 김천태(金天泰)이다. 1. 부흥사로 활동 박태선(朴泰善)[1917~1990]은 1917년 평안남도 덕천군 덕천읍 읍남리 148번지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덕천군 교회 주일 학교를 다니다가 소학교를 마친 뒤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고등공업학교를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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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천리교 승려. 대봉인삼랑[大峰仁三郞]은 1902년 천리교의 보급을 위해 부산으로 건너왔다. 천리교는 일본 나라 현[奈羅縣] 덴리 시[天理市]에 본거지를 둔 신흥 종교로, 1838년 나라 현의 농민 여성인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가 개창한 종교였다. 한국에서도 1893년 이래로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대봉인삼랑은 1904년 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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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일본의 금광교를 포교한 일본인 승려. 전전오조(前田伍助)가 언제 부산에 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03년 3월 전전오조는 금광교(金光敎) 관장의 인가를 얻고, 다시 부산영사관의 인가를 얻어, 부평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에 금광교 교회소를 설립하였다. 1911년 교회소를 신축하였고, 신도 수가 점차 증가하자 1932년 회관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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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에서 정토진종을 포교한 일본인 승려. 평야혜수(平野惠粹)는 1877년 일본 정토진종 대곡파(淨土眞宗大谷派) 본원사(本願寺)에서 부산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오촌원심(奧村圓心)도 함께 왔다. 이들은 9월 28일 부산에 도착하여, 먼저 연락을 받은 일본인 근등진서(近藤眞鋤)의 원조를 받았다. 평야혜수와 오촌원심은 10월 관사를 빌려 포교소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포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