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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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基 |
영어음역 | Deokgi |
이칭/별칭 | 담해(湛海),이담해(李湛海)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 운동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승려.
[활동 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 호는 담해(湛海). 덕기(德基)[1860~1933]는 1860년 울산에서 태어나 18세에 출가하였다. 스승은 승려 연운(蓮雲)이고, 30세에 승려 우봉(友峯)에게 법을 받았으며, 경전에 두루 밝았다. 1900년대 초 범어사의 내원암과 원응료 등에 선원(禪院)을 개설하는 데 앞장섰고, 중국의 선종(禪宗)과 관련된 중요한 글들을 뽑아 선학(禪學)의 지침으로 활용하였던 『선문 촬요(禪門撮要)』와 『권왕문(勸王文)』을 적극 배포하였다. 승려 덕기의 이러한 활동이 선찰 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서 범어사의 사격(寺格)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덕기는 한용운(韓龍雲)·오성월(吳惺月) 등과 함께 원종(圓宗)의 이회광(李晦光)이 조선 불교를 일본의 조동종에 병합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여, 임제종 운동에 동참하였다. 3·1 운동에 앞서 범어사를 찾은 한용운을 통해 상황을 전해들은 덕기는 김법린(金法麟)·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 등 7명의 대표를 서울로 보냈다. 이들은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 범어사 승려와 학생들이 주도하는 범어사 3·1 운동을 계획, 지도하였다. 이후 덕기는 범어사의 오성월·오이산(吳梨山) 등 여러 승려들과 같이 사재(私財)를 내어 상해 임시 정부에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1920년부터 1924년까지 덕기는 범어사의 주지를 역임하였고, 1933년 7월 8일 세수(歲首) 74세, 법랍(法臘) 56세로 입적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