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388
한자 李泰錫
영어음역 Yi Taesuk
이칭/별칭 요한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 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부|의사
성별
대표경력 아프리카 케냐 관구 소속 남수단 톤즈 선교 사제
출생 시기/일시 1962년 9월 16일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95년 1월 30일 - 살레시오수도회 첫 서원
출가|서품 시기/일시 2000년 4월 27일 - 살레시오수도회 종신 서원[이탈리아]
출가|서품 시기/일시 2000년 6월 28일 - 부제서품[로마예수성심성당]
출가|서품 시기/일시 2001년 6월 24일 - 사제 서품[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3동성당]
수학 시기/일시 1978년 3월~1981년 2월 - 경남고등학교 재학
수학 시기/일시 1981년 3월~1987년 2월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수학 시기/일시 1988년 4월~1991년 4월 - 육군 군의관 복무
수학 시기/일시 1992년 3월~1994년 12월 -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 편입
수학 시기/일시 1995년1월-1997년1월 -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 사목 실습
수학 시기/일시 1997년 1월~2001년 6월 - 로마교황청 설립 살레시오대학교 유학
활동 시기/일시 2001년 10월 - 아프리카 선교 파견[살레시오 케냐 관구]
활동 시기/일시 2001년 12월 7일 - 남수단 톤즈에 부임
몰년 시기/일시 2010년 1월 14일연표보기 - 선종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12월 21일 - 제1회 KBS 감동 대상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7월 - 국민 훈장 무궁화장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12월 29일 - KBS1 TV 「아프리카 찾은 행복-수단」 방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5년 11월 - 제7회 인제 인성 대상 특별상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3월 31일 - 제23회 보령 의료 봉사상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12월 27일 -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출생지 이태석 출생지 - 부산광역 서구 남부민동
학교|수학지 경남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 111번길 65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인제대학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 633-165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광주가톨릭대학교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중남길 12-25
활동지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디지털로 424

[정의]

현대 부산 출신의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이며 의사이자 아프리카 선교사.

[활동 사항]

이태석(李泰錫)[1962~2010] 신부는 1962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아버지 이봉하와 어머니 신명남의 4남 6녀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열심인 부모의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송도성당을 다녔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 졸업하였다. 의사가 된 뒤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1991년 4월 전역하였다.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던 성소(聖召)의 길을 걷고자 그해 8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여 사제 양성 교육을 받았다. 1994년 1월 30일 살레시오회의 수도자로서 첫 서원을 받았다. 1995년부터 2년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에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사목 실습을 하였다. 1997년 1월 로마 교황청 설립 살레시오대학교에 유학하였다. 유학 도중인 2000년 4월 27일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에서 종신 서원을 받았다. 곧이어 6월 28일 로마의 예수성심성당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살레시오대학교를 수료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6월 24일 서울 구로3동성당에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1년 10월 아프리카 케냐 관구 소속으로 아프리카 선교 길에 올라, 12월 7일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부임하였다. 톤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지로 불리는 곳이며, 오랫동안 수단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었다. 이태석 신부는 하느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펼치는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우선 의사 활동을 위해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 가는 주민들과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다. 또한 병원을 찾아오지 못하는 더 깊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순회 진료를 하였다. 이태석의 열성과 노력으로 병원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 건물을 지어 확장하였다.

또한 톤즈의 아이들과 원주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처음 초등학교로 시작한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하였다. 그리고 유능한 교사들을 영입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이태석 신부가 세운 돈 보스코 초·중·고등학교는 수단 남부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교로 알려졌다. 특히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하며 음악을 좋아한 이태석은 총과 칼을 들고 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악기를 가르쳐 브라스 밴드(brass band)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서로 갈등하지 않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며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의 브라스 밴드는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정부 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을 하였다.

2003년 12월 KBS 방송을 통해 이태석의 톤즈에서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를 후원하는 다음 카페[cafe.daum.net/WithLeeTaeSuk]가 개설되었다. 이를 통해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병원과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돌아온 이태석은 검진 결과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봉사로 병을 얻은 것이다. 이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암세포가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서울성모병원에서 48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사상과 저술]

톤즈의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톤즈의 배고픈 아이들, 사흘간 꼬박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같은 민족조차 외면하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바라보는 이태석의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를 보고 사람들을 그를 슈바이처라고 부른 것이다.

이태석은 사제이며 의사, 음악가, 건축가 등 다재다능한 업무 능력으로 톤즈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일을 하고 난 뒤에 이런 말을 남겼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여러 사업을 벌여 그들의 건강과 재능을 길러 주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같이 있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이태석 신부는 사제로서, 의사로서 마지막까지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저서로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 2009], 『당신의 이름은 사랑』[다른우리, 2011]이 있다. 그리고 이태석을 추모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KBS, 2010]가 있다.

[묘소]

전라남도 담양군 광주대교구 성직자 묘재 내 살레시오회 묘역에 묻혔다.

[상훈과 추모]

2005년 11월 제7회 인제 인성 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31일 제23회 보령 의료 봉사상, 2009년 12월 17일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을 받았고 2011년 7월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2.30 내용오류 대표분야(기독교 → 천주교) 변경
2018.05.18 오타 수정 송동성당 -> 송도성당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