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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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南善 |
영어음역 | Ju Namseon |
이칭/별칭 | 주남고(朱南皐)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규 1 |
[정의]
부산 고신대학교를 설립하고 이사로 활동한 장로교 목사.
[활동 사항]
주남선(朱南善)[1888~1951]은 1888년 9월 14일 경상남도 거창군 읍내면 동동 28번지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친구 오형선(吳亨善), 조재룡(曺在龍)과 함께 호주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들은 1909년 10월 10일 거창교회를 설립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했을 때는 거창교회 중심인물인 오형선 장로, 고운서(高雲瑞) 등과 3월 20일 독립 시위를 주도하여, 이덕생(李德生), 김태연 등 13명과 함께 1921년 1월 검거되었다. 징역 1년의 선고를 받고 복역 중, 1921년 12월 29일 부산감옥 진주분감에서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에 짧은 기간 권서(勸書)로 활동하였다.
1920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주남선은 거창교회 전도사[1922년 1월~10월], 거창 지방 권서인으로 일하면서 수학하여, 1930년 3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해 10월 목사가 된 이후 거창교회 담임 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1935년부터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여 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일로 1938년 9월 12일 거창교회를 사면하였으나,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던 중에 1940년 7월 16일 체포되었다. 그 후 5년간의 투옥 생활 끝에 1945년 8월 17일 해방과 함께 출옥하였다. 그의 이름은 원래 주남고(朱南皐)였으나 옥중에서 주남선으로 개명하였다.
출옥한 주남선은 다시 거창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비록 거창에 정주하였으나 한상동(韓尙東) 목사와 더불어 부산에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를 설립하고[1946년 9월 20일], 이사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3일에는 부산진교회당에서 열린 제47회 경남노회에서 노회장으로 추대되어 부산 지방과 경상남도 지방 교회를 관장하였다. 주남선은 신실한 목회자이자 설교자였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6·25 전쟁 기간에도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와 신자들을 보살폈던 주남선은 1951년 3월 23일 간암으로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상과 저술]
주남선은 성경은 부분과 전체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과 성경의 무오성[inerrancy], 그리고 성경의 최종적 권위를 확신하였던 보수주의자이자 개혁주의 목회자였다. 그는 자유주의적인 조선신학교(朝鮮神學校)에 한국 교회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확신 때문에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고, 이 학교의 발전을 위해 이사로 활동하며 학교를 후원하였다. 주남선은 개혁주의 신학의 신봉자였다. 저술로 몇 편의 단문과 설교문이 있는데, 『거창교회와 주남선 목사』[이상규 저]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 공로 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