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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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John R. Wolfe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상규 1 |
[정의]
부산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도한 최초의 성공회 신부.
[활동 사항]
존 월푸(John R. Wolfe) 주교[1832~1915]는 183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영국교회[성공회]의 목사로 활동하였다. 1861년 12월 중국 푸저우[福州]에 와서 1915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53년간 남중국의 영국교회 선교회[CMS, Church Missionary Society] 소속 선교사로 일하였다. 중국에서 사역한 지 22년이 지난 1884년, 청불 전쟁으로 야기된 불안한 정세 아래에서 건강이 좋지 못하여 일정 기간 휴양을 권고 받은 월푸는 일본 나가사키[長埼]를 방문한 후, 1884년 10월 24일경 부산을 방문하였다.
부산 방문 당시 기독교가 소개되지 않는 점을 알고 푸저우로 돌아가 이 사실을 남지나선교회[The South China Mission] 연례 대회에서 보고하였다. 또 이때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선교회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1885년 11월 말경에는 호주의 영국교회 선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두 사람의 중국인 전도자와 함께 다시 부산을 방문하여 선교를 시도하였다. 이때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없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월푸의 부산 방문이 후일 한국에서의 성공회 선교 운동의 한 계기가 되어 영국의 외지복음선교회[SPG,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Gospel in Foreign Parts]가 1890년 콜페(C. J. Corfe)[고요한(高堯翰)] 감독을 최초의 조선 선교사로 파송케 하는 동기가 되었다. 또 알취데콘 존 월푸가 쓴 편지가 호주 멜버른(Melbourne)의 코필드(Caulfield)에 위치한 성메리교회[St. Mary Church]의 메칼트니(H. B. Macartney) 목사가 편집·발행하는 『국내 국외 선교[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에 게재됨으로써 호주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의 한국 선교 자원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