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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64
한자 滿海
영어음역 Song Manhae
이칭/별칭 송술용(宋述龍)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서구 남부민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서정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성별
대표경력 부산불교어산회 활동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10년 - 충청남도 법주사 출가
수학 시기/일시 1923년 - 법주사에서 불교의식인 상주권공 배움
수학 시기/일시 1945년 - 밀양 표충사 대은에게 범패를 다시 배움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천부사 창건
활동 시기/일시 1953년 - 부산불교어산회 활동
출생지 법주사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
학교|수학지 법주사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
활동지 장송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활동지 천부사 -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정의]

현대 부산에서 바라춤을 전수한 범패승.

[활동 사항]

만해(宋滿海) [1910~?]는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서 태어나 동자승으로 자라며 불교 의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웠다. 속명은 송술용(宋述龍)이다. 원래 어머니는 비구니였으나 만해를 낳고는 퇴속하였고, 삼촌 월암이 있는 법주사에서 어릴 때부터 동자승으로 자랐다. 1923년 무렵 불교 의식인 상주권공(常住勸供)을 다 마치고 13세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왔다.

1945년 전후 표충사의 주지 대은에게서 건당(建幢)[스승에게서 법맥(法脈)을 이어받는 일]을 받고 은사(恩師)로 삼으면서 부산 지역에 큰 재(齋)가 있으면 대은을 초청하였다. 만해는 원래 음성이 좋은 편인데다 배우려는 열정이 있어 밀양의 대은을 부산으로 모셔 다시 범패를 배우기도 하였다.

또한 화청(和請)[불교 음악인 범패의 한 갈래. 대개 재를 끝낼 때 징·북·목탁 등의 타악기를 치며 부르는 노래]을 잘해 만해가 화청 법문을 하면 신도들이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한다. 특히 만해는 바라춤을 잘 춘 승려로도 유명하다. 현재 부산의 바라춤이 만해로부터 내려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작법[나비춤]은 주로 승려 함허가 하였지만, 부산에서 바라춤은 매우 귀한 편이었다. 현재 부산 지역 범패승의 한 파도 만해로부터 바라춤을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라춤은 홀로 추는 경우도 있지만, 쌍으로 추게 될 경우 더욱 화려해서 빛을 발하는데, 벽파는 당시 북한에서 부산으로 피난으로 내려온 비구니인 흥월과 함께 쌍바라를 많이 추었다. 쌍바라는 큰 재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춤이다. 또한 만해는 탁월한 재능과 재치를 가지고 있어 윗녘 소리인 경제 범패와 아랫녘 소리인 영제 범패를 모두 잘하여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정도였다.

1945년 이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장송사[당시 일본의 임제종 사찰. 현재는 없어짐]에서 주석하였는데, 나중에 서구 남부민동에서 천부사(天富寺)를 창건하여 주지로 주석하였다. 1946년 부산불교어산회에서 용운과 함께 활동하였다. 1986년 76세 무렵에 입적하였다. 상좌[제자]도 여럿 두고 있으며 슬하에 아들 송병기, 송병우를 두었는데 대성하여 의사가 되었다.

[묘소]

화장하여 묘소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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