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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299
한자 朴允善
영어음역 Bak Yunseon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규 1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목사
성별
대표경력 고려신학교 교장|합동신학교 교장
출생 시기/일시 1905년 12월 11일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40년 3월 - 목사 안수 받음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평양신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34년 - 평양신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6년~1960년 - 고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54년 9월 - 미국 훼이스신학교 명예 신학 박사 학위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60년~1963년 - 서울 동산교회 설립 및 목회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3년~1980년 - 총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명예 신학 박사 학위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80년~1988년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재직
몰년 시기/일시 1988년 6월 30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평안북도 철산군
학교|수학지 평양장로교신학교 - 평양직할시
학교|수학지 미국웨스트민스터신학교 - 미국
활동지 고려신학교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149-1지도보기
활동지 총신대학교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3동 산31-3
활동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동수원로 610

[정의]

부산 고신대학교에 재직하였던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

[활동 사항]

박윤선(朴允善)[1905~1988]은 1905년 12월 11일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하였으며, 17세 때부터는 기독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을 배우게 되고, 향리의 기독교계 학교인 대동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이어서 양전백(梁甸伯) 목사가 설립한 신성중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고,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1931년에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고 1934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유학을 통해 메이첸(J. Gresham Machen)[1881~1937]과 반틸(Conelius van Til)의 문하에서 헬라 어와 신학을 연구하였다. 특히 반틸의 영향으로 신학이란 어떤 자연론적인 유추나 철학적 사변에서 출발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제한 성경 계시에서 출발하는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1936년에 유학에서 귀국한 박윤선은 평양신학교에서 원어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2차 유학 후에는 만주 봉천으로 가 교수하였다.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한 박윤선은 1946년부터 1960년까지 14년간 부산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 교수 혹은 교장으로 봉사하였다. 1954년 9월에는 미국 패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부터 1960년까지 14년간 고려신학교에서 가르쳤던 박윤선은 1960년 고려신학교 교장 및 교수직을 사임하고, 1960년부터 1963년까지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동산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자로 활동하였다.

1963년에는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1980년까지 교수로 일하였다. 1979월에는 설립 50주년을 맞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다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10월 말에는 총신대학교 대학원장직을 사임하고 김명혁, 신복윤(申福潤), 윤영탁 등과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여 원장 혹은 교수로 봉사하였고, 83세의 나이로 1988년 6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박윤선은 부산 고려신학교 교수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 혹은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의 초석을 다지고 이를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1940년 이후 40여 년간의 교육 활동과 저술, 특히 성경 주석의 집필, 목회 활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해명하고, 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적인 삶을 통해 한국 교회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에 대한 모범과 이상을 보여 주었다.

[사상과 저술]

박윤선의 가장 중요한 저술은 성경 주석인데, 주석 집필은 1938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로부터 40년간의 노고 끝에 1979년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완간하였다. 박윤선의 첫 주석은 1949년 3월에 출판된 『요한 계시록』 주석이었고, 마지막 주석은 1979년에 출판된 『에스라·느헤미아·에스터 주석』이었다. 박윤선의 주석은 구약 총 7,347쪽, 신약 총 4,255쪽에 달해, 신구약을 합한 주석은 총 1만 1,602쪽에 달하였다.

주석 외에도 『영생의 원천』[1970], 『응답되는 기도』[1974], 『주님을 따르자』[1975] 등의 설교집과, 『성경 신학』[1971], 『헌법 주석』[1983], 유고집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1989] 등을 남겼다. 단행본 외에도 고려신학교가 발행하였던 『파수꾼』에 218편, 총신대학교의 『신학 지남』에 40편, 합동신학교의 『신학 정론』에 1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박윤선이 고려신학교에서 일한 기간은 14년인데, 218편의 글을 발표했으므로 연 15.6편의 논문을 발표한 셈이었다.

박윤선은 조직 신학자는 아니었으나 조직 신학과 역사 신학에도 박식하였고, 그의 성경 주석에는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의 신학자와 하지(Hodge), 워필드(Warfield), 메이첸(Gresham Machen) 등 미국 신학자들은 물론, 잔 메이어(Jahn Meyer), 델리취(Delitzsch) 등 독일 신학자들과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비빙크(Herman Bavinck), 보스(G. Vos), 리델보스(Ridderbos), 클라스 스킬더(K. Schilder) 등 네덜란드의 신학자들의 신학을 동시에 소개하였다. 박윤선은 개혁주의 신학을 석명하고 이를 구체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 위에서 신정통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 개혁주의 신학자였다.

박윤선은 단순한 이론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신학자가 아니라 그가 믿는 개혁주의적인 삶을 몸으로 체달(體達)하였던 신학자로서 경신애학(敬神愛學)의 삶을 살았으며, 겸손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박윤선고신대학교[1946~1960], 총신대학교[1963~1980],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1980~1988]에서 학장으로 혹은 교수로 활동하면서 그의 영향 하에 개혁주의 신학과 그 학맥(學脈)은 위의 세 학교를 통해 체계적으로 계승되었고, 한국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형수'님의 글은 서비스 정책에 맞지 않아 삭제합니다. 20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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