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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673
한자 崔再善
영어음역 Choe Jaeseon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가톨릭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출생 시기/일시 1912년 2월 24일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8년 6월 11일 - 사제 서품 받음
출가|서품 시기/일시 1957년 5월 30일 - 주교 서품 받음
수학 시기/일시 1926년 9월 18일 -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37년 -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8년 6월~1957년 - 전라북도 김제, 경상북도 영천, 김천, 대구광역시 등지에서 주임 신부와 보좌 신부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경상북도 김천 성의중학교·성의고등학교 교장 겸임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대구광역시 대건중학교·대건고등학교 교장 겸임
활동 시기/일시 1957년 5월 - 천주교 부산교구장[초대]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2년 10월 26일 - 재단법인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0년 2월 10일 - 학교법인 세종학숙 이사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3년 9월 19일 - 천주교 부산교구장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73년 11월 7일 - 교황청 포교성성 한국지부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3년 11월 7일 -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주교회의 선교위원회 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교황청 전교회 한국지부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85년 5월 15일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설립
몰년 시기/일시 2008년 6월 3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학교|수학지 성유스티노신학교 - 대구광역시
활동지 성의중·고등학교 - 경상북도 김천시
활동지 대건중·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활동지 천주교 부산교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70-4지도보기
활동지 한국외방선교회 - 서울특별시
활동지 한국외방선교수녀회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51-15지도보기

[정의]

1957년~1973년 가톨릭 부산교구장으로 사목과 선교 활동에 헌신한 종교인.

[개설]

세례명은 요한. 아버지는 최봉조[세례명 요한]이고, 어머니는 서해수[세레명 요안나]이다.

[활동 사항]

최재선(崔再善)[1912~2008]은 1912년 2월 24일에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8남매 중 다섯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가톨릭 신앙을 이어왔다. 최재선은 13세까지 서당과 보통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1926년 9월 18일 대구에 있던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최재선은 이곳에서 3년 과정의 라틴어 학습을 받았으며, 이후 철학과와 신학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1937년에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1938년 6월 11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후 전라북도 김제, 경상북도 영천, 김천, 대구 등 여러 지역을 돌면서 주임 신부와 보좌 신부로 사목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1945년과 1955년에는 경상북도 김천의 성의중학교·성의고등학교와 대구 대건중학교·대건고등학교에서 학교장을 겸임하며 교육 활동에도 종사하였다. 그의 헌신적인 사목 활동은 여러 사람에게 귀감이 되어 1957년 5월에는 신설 천주교 부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선출되었고, 5월 30일에 주교 서품을 받았다. 이후 1973년 9월 19일 은퇴할 때까지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교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대 교구장으로서 최재선은 무엇보다 교구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부임 이전에는 인사이동을 실시하여 교구 사제와 각 본당의 주임 신부들을 조정하였다. 주교 서품 이후에는 교구의 사목 체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교구청 수뇌부[부주교·교구 경리·교구 평의원]를 구성하여 교구 사업들을 기획하였고, 경상남도 도민 전체를 전교의 대상으로 삼았다.

1957년에 신설된 천주교 부산교구가 관할하는 지역은 부산·마산·김해·거제·진주·진양·울주·충무·함안·거창·고성·밀양·진해·창녕 등 사실상 경상남도 전역을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것이었다. 최재선천주교 부산교구와 경상남도 전역에 본당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빈민 주택 사업·교육 사업·의료 사업 등도 병행하였다. 새로운 본당의 설립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사제가 필요하였기에 사제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1962년 최재선천주교 부산교구 유지재단 이사장에 선출되었으며, 1970년 2월 10일 학교법인 세종학숙의 이사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973년 교구장에서 물러났고, 1973년 11월 7일 교황청 표교성성 한국지부장에 임명되었고, 1975년 11월 7일에는 한국외방선교회를 만들었다. 한국외방선교회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선교회로서 그 동안 한국 가톨릭이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에 1975년 주교회의 선교위원회 위원장, 1979년 교황청 전교회 한국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84년 5월 15일에는 부산에서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설립하고, 2008년 6월 3일 선종할 때까지 절약과 청빈한 삶으로 여생을 보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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