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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견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425
한자 梅見施
영어음역 Mackenzie
이칭/별칭 맥켄지(Mackenzie)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좌천동 768-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선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선교사
성별
대표경력 상애원 한센병원장
출생 시기/일시 1865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부산에 도착
활동 시기/일시 1911년 - 구라 사업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 시기/일시 1930년 6월 11일 - 나환자관리협회가 기념비 건립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조선총독부 훈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호주로 귀국
몰년 시기/일시 1956년 7월 2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호주
학교|수학지 호주
활동지 상애원 한센병원 - 부산광역시
활동지 경상남도 일원
관련 유적 매견시 기념비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호주 장로교 선교사.

[활동 사항]

매견시(梅見施)[1865~1956]는 1865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맥켄지(Mackenzie)이다. 1910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 부산에 와서 선교와 교육·의료 등 봉사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때 매견시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매견시는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52개 시골 교회를 방문하여 전도와 세례를 행하는 등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경상도 지역은 기후 관계로 한센병 환자들이 많았으므로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조선총독부에 한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할 필요성이 시급함을 계속적으로 보고 하였다.

마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어을빈(魚乙彬)[Dr.C.H. Irvin, 만병수약 창제자]이 1909년에 구라(救癩)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1911년에 은퇴하게 되자, 매견시는 이 사업을 인계받아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매견시는 항상 인자한 성품과 사랑이 넘치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환자들을 대하였다. 상애원 한센 병원의 병원장을 맡으면서 상애교회를 운영하여 54명의 환자들이 같이 생활하였는데, 얼마지 않아 상애원이 60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되었다. 그 후 시골의 환자를 합하여 900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한센병 환자의 사망률이 25%에서 2%로 감소하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매견시는 한센병의 약제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주사약을 개발하여 치료 효과를 높이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지역에 산재한 환자들을 위해 매견시는 전문 간호원을 지도, 훈련하여 각 지방마다 간호원을 보내어 환자 진료를 도왔는데, 이러한 효과적 활동으로 상애원은 후에 국립나병원 용호분원의 전신이 되었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사회로부터 터부시되고 냉대 받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음성으로 치료된 환자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기에 힘썼다. 음성 환자들로 하여금 부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지금의 금성중학교·금성고등학교의 높은 축대를 조성하게 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매견시는 한센병 환자의 자녀들을 위한 양육과 교육 사업에도 정성을 쏟았다. 상애원 내에 명신학교를 설립하여 주간, 야간으로 운영하고, 부산진구 범천동에 고아원을 설립 운영한 것이 그것이다. 동시에 매견시는 성경 학교를 열어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의 부인 켈리(Mary Kelly) 역시 부산진을 중심으로 여성을 위한 주일 학교와 성경 학교를 열어 교회 여성 지도자들을 교육·훈련시키는 일에 내조를 하였다.

또 1913년 소녀들을 위한 야간 학교를 운영하기도 하고,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대표역을 맡았다. 이런 활동으로 켈리는 부산 여성들에게 신교육 보급과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매견시는 1938년 73세의 고령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1956년 7월 2일 91년간의 인생을 마감하고 멜버른에서 소천하였다. 매견시의 두 딸 매혜란(梅惠蘭)[Dr. Helen, 산부인과 의사]과 매혜영(梅惠英)[Miss Catherine Mackenzie, 간호 조산사]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6·25 전쟁 중 한국 여성을 위해 동구 좌천동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봉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30년 6월 11일 매견시 사역 20주년을 맞아, 나환자관리협회가 주도하여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정공단 옆에 기념비를 세웠다. 1930년 조선총독부매견시에게 훈장을 수여하였다. 1942년에서 1946년 사이에 기념비가 분실되었으나, 2001년에 처음 세워졌던 부근인 일신기독병원에 복원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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