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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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峰 |
영어음역 | Monk Yeongbong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매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범패승.
[활동 사항]
영봉(靈峰)은 190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에는 일본에 거주하다가 부산으로 들어와 40세 이후 늦은 나이에 승려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하고 큰 절에서 정식 과정을 밟고 승려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부산에서는 범어사 출신의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부산불교어산회를 조직하여 범패 강습을 하고 있었는데 영봉은 이들과 함께 재(齋)를 지내며 함께 활동하였다. 절을 따로 두지는 않았고 가정집에서 거주하며 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해서 용운을 비롯한 제자 범패승들과 함께 불교 의식을 거행하였다.
영봉은 나병 환자여서 손이 조금 오그라들어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징은 만지지 못하고 주로 꽹과리를 들었으며, 손가락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북을 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코에서도 비염 소리가 많이 났었다. 그래도 불교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용운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바라지를 하였다. 부산불교어산회 회원 승려들과 식사를 할 때면 용운은 묵묵히 받아 줬지만, 다른 승려들은 영봉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하곤 하였다고 한다.
1973년 부산불교어산회에서 영봉을 강사로 초빙하였으나 워낙 성격이 괴팍하고 난폭한 편이어서 조금만 따라하지 못하면 제자들을 두들겨 패곤 하였다. 결국 그 밑에서 공부하던 승려들이 남아나질 못하고 60여 명의 수강생 대부분이 그만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그런 성격을 묵묵히 받아 주며 입적할 때까지 제자로 남아 범패를 배운 승려가 도진이다.
도진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 2동의 원광사 주지이다. 도진은 용운이 입적한 뒤 13년 동안 영봉의 수제자가 되어 영봉의 소리를 모두 배운 범패승이다.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호 보유자였던 용운이 입적하자 새로운 문화재 보유자로 등극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무형 문화재가 부담스러워 모두 기피하였다. 이에 도진은 당시 영봉이 무형 문화재가 되지 못한 것을 지금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비록 난폭하고 거친 성격이었지만, 범패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전수한 영봉은 1984년 부산불교어산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어 활동하다가, 1990년대 초에 입적하였다.
[묘소]
화장하여 묘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