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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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浩稙 |
영어음역 | Gim Hojik |
분야 | 종교/신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용소로 45[대연3동 59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욱 |
[정의]
1950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인.
[활동 사항]
김호직(金浩稙)[1905~1959]은 1905년 4월 16일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태어났다. 1924년에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0년에는 동경제국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다.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와 숙명여자전문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물학과 영양학을 가르쳤다. 김호직은 우리의 전통적인 식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한반도의 역사·기후·풍토가 우리의 식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8·15 광복 이후 1949년 정부 파견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학에서 영양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 개신교 장로교인이었던 김호직은 미국 유학 생활 과정에서 학교 친구였던 올리버 웨이맨의 전도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속칭 모르몬교]의 신앙을 접하였고, 1951년 7월 29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침례를 받게 되었다. 1952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는 영양학자·교육자이자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개척자로 활동하였다.
한국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시작은 1950년 6·25 전쟁 시기에 유엔군으로 한국에 파견된 군인 가운데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린 것이 처음이었다. 주로 부산에서 모임이 활발하였는데, 부산의 여러 대학에서 영어 공부 모임을 광고하여 이에 관심을 가진 젊은 대학생과 함께 성경 공부 모임을 꾸려 나갔다. 귀국한 뒤 김호직 역시 부산 모임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학장, 건국대학교 학장, 유네스코 한국 대표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에는 개신교 주류의 반대를 뚫고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재단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1959년에는 세계식량농업기구의 세미나에 초대되어 인도로 출국하였으나 고혈압으로 쓰러져 불편한 몸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서울시 교육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토론을 벌이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1959년 8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사상과 저술]
저서로 『조선 식물 개론』[1944]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3년에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