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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033
한자 辰鐘
영어음역 Jinjong
이칭/별칭 용성(龍城),백용성(白龍城),상규(相奎)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3·1 운동 민족 대표
출생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79년 - 해인사 극락암 승려 화월 아래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912년 -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의 개교사장으로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13년 3월 - 범어사의 법계 고시에서 대선사가 됨
활동 시기/일시 1916년 - 대각사 창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3·1 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대각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대각교 해외 포교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선농불교 제창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양산 내원암으로 만일결사를 옮기고 역경 사업에 몰두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대각교 해산
몰년 시기/일시 1940년 2월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41년 - 해인사에 백용성 추모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은관 문화 훈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4년 - 해인사에 용성선사 행적비 건립
출생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학교|수학지 고운사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학교|수학지 통도사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학교|수학지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활동지 해인사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대각사 -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1

[정의]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이자 부산 범어사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본관은 수원.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법명은 진종(震鍾), 법호는 용성(龍城)이다.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밀양 손씨이다.

[활동 사항]

진종[1864~1940]은 1864년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에서 태어났다. 16세에 해인사 극락암 승려 화월 아래서 출가하였으며, 이후 고운사·통도사·송광사 등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수도 정진하였다. 진종범어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12년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의 개교사장(開敎師長)으로 취임하면서였다. 중앙포교당의 설립은 범어사와 통도사가 주축이 된 임제종 운동이며, 항일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진종은 1913년 3월에 실시된 범어사의 법계고시(法戒考試)에 응하여 대선사(大禪師)의 법계를 받았다. 이후 진종은 줄곧 자신이 출가한 해인사가 아니라, 범어사의 승려임을 자처하였다. 1921년 필사한 『범망경 연의(梵網經演義)』에서 자신을 ‘금정산 범어사 사문 백용성(金井山梵魚寺沙門白龍城)’이라 하고, 같은 해 저술한 『심조 만유론(心造萬有論)』에서도 ‘금정사문 용성당 백상규(金井沙門龍城堂白相奎)’로 기술하고 있다. 간혹 진종범어사의 주지를 지냈다는 설도 있으나 『범어사지(梵魚寺誌)』를 살펴보면 범어사의 주지를 지낸 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1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한 뒤, 1919년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2년 대각교(大覺敎)를 설립하였으며, 1927년 이후 대각교의 해외 포교에 나섰다. 1926년 양산 내원암으로 만일 결사(萬日結社)를 옮긴 이후 역경 사업에 몰두하였으며, 1936년 대각교의 재산을 범어사로 이전한 뒤 대각교를 해산하였다. 1940년 2월 대각사에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진종은 다양한 형태로 불교계 개혁 운동에 주력하였다. 진종의 사상은 ‘대각 사상(大覺思想)’이라 할 수 있다. 대각의 근원은 여래장(如來藏)으로, 대각이란 모든 중생이 갖고 있는 근본 심성인 불성을 자기 스스로 깨치고 또 다른 사람을 깨우치게 하는 것[自覺覺他]을 뜻한다. 이러한 사상에 입각하여 사회적 실천 운동인 대각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진종은 불교 의식을 한글로 하여, 포교를 대중화하고 현대화하려 하였다. 또한 사원 경제의 자립화를 위해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여 함양 백운산과 북간도에 농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선문 요지(禪門要旨)』[1905·산실]·『귀원 정종(歸源正宗)』[1913]·『심조 만유론』[1921]·『대각교 의식(大覺敎儀式)』[1927]·『팔양경(八陽經)』[1928]·『조선글 화엄경』[1928]·『조선어 능엄경』[1928]·『각해 일륜(覺海日輪)』[1930]·『각설 범망경(覺說梵網經)』[1933]·『석가사(釋迦史)』[1936]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경전 등을 번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1년에 만해(萬海) 한용운이 찬한 백진종 추모비를 해인사에 건립하였고, 1962년에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90년에 은관 문화 훈장이 추서되고, 1994년에 해인사에 진종 선사 행적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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