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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63
한자 大鵬
영어음역 Bak Daebung
이칭/별칭 박종희(朴宗熙)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서정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성별
대표경력 부산불교어산회 부회장
출생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2년 - 범어사에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용화사에서 부전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범어사 어산 강사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부산불교어산회 활동 시작
활동 시기/일시 1952~1958년 - 부산불교어산회 총무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9~1960년 - 부산불교어산회 부회장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부산불교어산회 범패 강사
활동 시기/일시 1960~1970년 - 용운과 범패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방장사 주지
몰년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입적
출생지 대붕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학교|수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활동지 용화사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
활동지 방장사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정의]

현대 부산불교어산회에서 활동하며 부산의 불교 의식을 거행한 범패승.

[활동 사항]

대붕(大鵬)[1915~1972]은 속명이 박종희(朴宗熙)이다. 1915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 만어읍 용전리에서 5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서당에서 한자(漢字)를 공부하였고, 1932년 17세에 범어사로 출가하였다.

1940년대 초반에는 친척 일가가 주지로 있는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의 용화사에서 부전[절에서 예불을 맡는 소임]을 맡으며 주석하였다. 당시 범어사 강사였던 학봉은 부근에 위치한 관음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외숙모를 통해 학봉의 맏상좌가 되었다. 학봉은 많은 제자를 거느린 범어사 승려로, 『불조원류(佛祖源流)』에 기록된 상좌만 9명에 이른다. 특히 학봉은 범어사의 이름난 큰 승려인 대산(大山)의 상좌였으므로, 법맥으로 보면 대붕대산의 손자 상좌가 된다.

스승이던 학봉은 범패승이 아니었으므로, 범패는 대산의 둘째 제자[상좌]인 용운[1972년 「범음·범패」 보유자]에게 배웠다. 1940년경부터 불교 의식에 관련된 일을 하였고, 범어사에서는 불교 의식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일하였다.

1946년부터는 부산불교어산회에서 용운과 함께 활동하면서 1952~1958년 총무, 1959~1960년 부회장직을 맡았다. 계속 다른 사찰의 부전 일을 맡다가, 1960년경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는 방장사의 주지가 되었다. 방장사는 절 뒤의 방장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지금은 칠성암으로 바뀌었다. 1960년 부산불교어산회 범패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키가 크고 인물도 굉장히 좋은 편이며, 성품이 온화하고 말수가 적었다. 다만 조금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나서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부산불교어산회에서 용운과 함께 부산의 불교 의식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72년 57세의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입적하였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은행 지점장, 딸 둘은 의학 박사로 대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묘소]

화장하여 따로 묘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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