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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브라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04
영어음역 Miss A. Brown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상규 1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교사
성별
출생 시기/일시 1868년 8월 11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5년 - 부산으로 내한
활동 시기/일시 1907년 7월 3일 - 선교사 엥겔과 결혼
활동 시기/일시 1919년 이후 - 남편을 따라 평양으로 이거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호주로 귀국
몰년 시기/일시 1954년 8월 16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호주 빅토리아 주 밸러랫
활동지 부산광역시
활동지 평양직할시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호주 출신의 초기 여선교사.

[활동 사항]

미스 브라운(Miss A. Brown)[1868~1954]은 1868년 8월 11일에 호주 빅토리아 주 밸러랫(Ballarat)에서 태어났다. 호주 빅토리아 주 장로교단 소속 여선교사로, 1895년에 내한하여 1935년까지 40년간 한국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 그리고 평양에 체류하며 선교사로, 혹은 선교사의 아내로 일생을 살았다. 1895년 내한 후, 부산에서 브라운의 주된 활동은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성경 공부 인도와 전도, 그리고 지역 교회 순회와 고아 보육 등 자선 봉사 활동이었다. 미스 브라운의 성경 공부반은 부산진에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인 전도 부인과 함께 주로 동래 지역과 기장, 울주, 울산 병영 등의 경상남도 동부 지역으로 순례 전교를 다녔다. 특히 동래 지역을 빈번하게 방문하였고, 그 노력의 결실로 동래수안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 또 선교부 내의 여성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브라운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미혼이었으나 1907년 7월 3일 호주 에벤에셀교회에서 동료 한국 선교사인 겔슨 엥겔(Gelson Engel)[한국명 왕길지(王吉志)]과 혼인함으로써 선교사 부인이 되었고, 1919년 이후에는 남편을 따라 평양으로 이거하여, 그곳 장로교신학교 교수로 활동한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부산과 경상남도에서의 활동은 평양에서도 계속 이어져, 평양외국인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돌보고 평양여자성경학교에서 강사로 봉사하였다. 1935년에 본국으로 귀국하여, 1954년 8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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