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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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鼎鎬 |
영어음역 | Jeongho |
이칭/별칭 | 영호(映湖),석전(石顚),한영(漢永),박한영(朴漢永)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나철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친일 매불 타도 운동을 전개한 승려.
[개설]
본관은 밀양. 자는 한영(漢永), 호는 영호(映湖) 또는 석전(石顚). 법명이 정호(鼎鎬)이다. 아버지는 박성용(朴聖容)이며 어머니는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활동 사항]
정호[1870~1948]는 1870년 9월 14일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조사리에서 박성용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가 이전인 1878년 3월부터 1885년 3월까지는 통사(通史)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수학하면서 한문과 학문적인 기초를 닦았다. 19세에 전주 태조암에서 승려 금산(錦山)의 제자로 출가하였다. 1890년 백양사 운문암의 환응(幻應) 탄영에게 사교(四敎)를 수학한 뒤, 선암사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수학하고, 순창 구암사에서 설유 처명(處明)으로부터 법을 받았다. 1896년부터 부산 동래의 범어사를 비롯하여 구암사·대흥사·법주사·화엄사 등지에서 불법을 강의하였다. 이로써 한국 불교계의 사상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정호를 따르는 학인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교 개혁에 뜻을 품고 상경하였다. 1911년 합천 해인사 주지 이회광(李晦光)이 일본의 조동종과 우리나라 불교를 연합하려는 데 반대하여, 한용운(韓龍雲)과 더불어 임제종 전통론을 내세워 친일 매불 불교를 타도하는 운동을 펼쳤다. 1913년 『해동 불교(海東佛敎)』를 창간하고, 3·1 운동 직후에는 한성 임시 정부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고등불교강숙·중앙학림·개운사·대원암의 불교 강원 강사, 조선불교월보사 사장을 지냈으며, 1931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6년까지 조선 불교 교정을 지내며 불교의 근대화에 앞장서다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사에서 1948년 4월 8일 세수 79세, 법랍 60세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석전 시초(石顚詩抄)』·『석전 문초(石顚文鈔)』 등의 문집 외에 『정선 치문집설(精選緇門集設)』·『정선 염송급설화(精選拈頌及說話)』·『계학 약전(戒學約詮)』·『염송 신편(拈頌新編)』 등의 단행본과, 각종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100여 건이 넘는 논설과 수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