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은행가.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원로(元魯)이다. 1918년 설립된 동래은행은 부산시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 232번지에 본점을 두고 있었다. 설립 당시 취체역 두취[대표 이사]는 윤병준, 취체역 전무[전무 이사]는 추종엽이었다. 김석만(金錫萬)은 박인표, 오태환과 함께 취체역[이사]을 맡았으며, 1기[1918년 12월]부터 25기[193...
-
개항기 부산 출신의 객주. 김성우(金聖佑)[1864~1918]는 최남순(崔南順)과 결혼하여 김두운, 김무연, 김새연, 김두휘, 김순영 등 2남 3녀를 두었다. 동생 김덕우도 함께 객주업을 하였다. 김성우는 개항기 객주업을 하였다. 당시 청룡환과 황룡환을 비롯한 40~50척의 선박을 소유하고 해운업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이 배를 이용하여 함경도에서 생산되는 해산...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교육자. 김재준(金在俊)은 1898년 5월 26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같은 나이인 공무성(孔武成)과 결혼하여 김규현, 김석현, 김정현 세 아들을 두었다. 김재준은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뒤, 1924년부터 해산물 객주 회사 마루카네상점을 경영하며 북해도, 상해, 청도, 대만과 조선 각지로 판로를 확장...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사회 운동가, 교육 활동가. 어대성(魚大成)은 1877년 4월 6일 동래부 관속으로 있던 어성우(魚性愚)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래의 담뱃대 만드는 기술을 익혀 공장을 차렸다. 1898년부터 1908년까지 순검(巡檢)으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중구 영주동에서 전당포를 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경...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오남근(吳南根)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개항 후 부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후 부산 객주업계를 대표하는 경제인으로 우뚝 섰다. 1900년(고종 37)에 설립되어 1927년 부산 객주들이 운영하게 되는 남선창고주식회사에서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1월까지 이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해륙 물산을 취급하는 오남근상점을 운...
-
근대 부산 출신의 객주이자 금융업자. 윤병준(尹炳準)은 개항기부터 부산에서 곡물과 면포, 주단, 해산물 무역과 위탁 판매를 해 온 객주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윤병준상점’을 운영하였는데, 이 회사는 『조선은행 회사 요록』[1921년판]에 따르면 1920년 3월 2일에 설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매일 신보』[1919년 1월 1일]에는 1919년에 이미 영업을 하고...
-
근대 부산 출신으로 해운 회사를 운영한 객주. 정치국(丁致國)은 1865년(고종 2) 7월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개항 후 부산에서 객주업을 하다가, 1884년(고종 21) 인천으로 이주하여 객주업과 중개업에 종사하였다. 1899년(고종 36) 1월 농상공부의 허가를 받아 협동기선회사(協同汽船會社)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한국 정부의 현익호(顯益號), 창...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추내유(秋乃有)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성장한 초량 객주였다. 초량 객주는 부산 인근의 하단포 객주, 구포 객주와 함께 부산항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초량 객주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명태 등을 교역하다 부산에 정착한 상인과 부산 출신의 상인들로 구성되었다. 추내유도 그 중 한 명이었으며, 점차 자본을 축적하여 1906년(...
동래 상인
-
조선 후기 부산 지역에서 왜관의 개시 무역(開市貿易)에 참여한 동래 상인. 조선 시대 동래부에서는 부산에 설치된 왜관(倭館)에 드나들면서 일본과 무역을 할 상인을 특별히 지정하였다. 이것은 왜관에서 밀무역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왜관의 개시 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물려서 동래부의 재정 수입을 늘리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왜관의 개...
-
조선 후기 동래부 무임으로 활동하면서 초량 왜관의 개시 무역을 담당한 상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유(乃維). 개국원종공신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13세손이다. 아들은 최명호(崔命昊), 손자는 최정순(崔定洵)[1851년생]이다. 최정순은 『조선 신사 대동보(朝鮮神士大同譜)』에 의하면 부산부 읍내면 옥정동 9통 8호에 거주하였으며 범어동 동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기업인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호는 동명(東明). 1907년 12월 21일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동에서 아버지 강병우(姜炳佑)와 어머니 서순득(徐順得)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1927년 고장호(高長湖)의 둘째 딸 고고화(高古華)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강석진(姜錫鎭)은 1923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있는 청도공립보통학...
-
부산 지역에서 조선방직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인. 강일매(姜一邁)는 1906년 1월 2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상사운수주식회사(朝鮮商事運輸株式會社)에 입사하여 사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산업 시보』, 『조선 일보』, 북지경제평론사(北支經濟評論社)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직후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의 경험을 살려 언...
-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LG그룹 창업자 아명은 정득(丁得), 호는 연암(蓮庵). 1907년 8월 27일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아버지 구재서(具再書)와 어머니 진양 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만회공(晩悔公) 구연호(具然鎬)가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내 그의 집은 구교리댁으로 통하였다. 1920년 허을수(許乙壽)와...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기업인이자 사회 운동가. 권인수(權仁壽)는 1892년 11월 부산부 중도정(中島町)[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서 태어났다. 1908년 동래 동명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1909년 김해군에서 석탄 장사를 하였다. 1920년대에는 부산에서 조선인 청년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1925년 8월부터 서부청년회 회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에...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약학자이자 기업인. 김근규(金根圭)는 1914년 12월 24일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12번지이고, 이곳에서 거주하며 부인 황월선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김근규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
-
부산 출신의 기업가. 최분숙(崔粉淑)과 결혼하여 2남 5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진재는 다섯 번에 걸쳐 국회 의원을 역임했고, 큰손자인 김세연은 제18대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김도근(金稌根)은 1917년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출생하였다. 고학으로 1935년 초량상업고등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 동일화...
-
부산 지역에 있던 대한조선공사 사장을 지낸 군인이자 기업가. 김두찬(金斗燦)은 1919년 1월 24일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났다. 1938년 평양에 있는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중퇴를 하였다. 해방 후 군인으로 투신하여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4·3 당시인 1950년 8월30일에는 해병대 정보...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기업가이자 행정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정산(井山). 1880년[또는 1887년] 12월 11일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났다. 동래기영회 회원으로 동명학교 제3대 교장을 역임한 지전(芝田) 이광욱(李光旭)이 외삼촌이고, 동래기영회 회장을 역임한 이회보가 외사촌이다. 김병규(金秉圭)는 어려서 외가에서 성장한 탓에 한학자이자 외삼촌인...
-
부산 출신의 정치가이자 실업가, 육영 사업가. 김억조(金億兆)는 1909년 5월 6일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실천학교(釜山商業實踐學校)[현 동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52년 3월 주식회사 한일상회 사장에 취임하였다. 1955년에 제일흥업주식회사[제일 극장] 사장에 취임하였고, 1962년에는 극장협회 이사에 피선되기도 하였다. 초대...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정치인. 본관은 김해(金海). 1908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산에서 12대를 살아온 토호였고, 재력도 상당해서 할아버지 김채곤(金采坤)은 영남의 대사찰 통도사의 신도회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김지태(金智泰)는 1927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14회로...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거대 정미업자. 김진곤(金晋坤)은 일제 강점기 구포의 최대 정미업자이자 5,000석 갑부로서, 낙동강 유역의 창녕과 남지 등에서 나락을 가져와 도정한 후, 이를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고베[神戶]에 수출하여 재력을 쌓았다. 1940년 당시 구포면의 납세 순위 기록을 보면, 김진곤은 허원도(許元道)와 설경해(薛慶海)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어 그...
-
부산 출신의 기업가이자 5선 국회 의원을 지낸 정치가. 동일고무공업소의 창업주인 아버지 김도근(金稌根)과 어머니 최분숙(崔粉淑) 사이의 2남 5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내는 성효인(成孝仁)[1946년생]이며, 아들은 국회 의원 김세연이다. 김진재(金鎭載)는 1943년 2월 19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61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해에...
-
부산 출신의 기업가이자 한일그룹 창설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수당(壽堂). 아버지 김창준(金唱準)과 어머니 변남이(卞南伊)의 2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장복달(張福達)과의 사이에 6남 4녀를 두었다. 김한수(金翰壽)는 1922년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에 속했던 명지면 동리[현 부산광역시 북구 명지동 155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성호공립보통학...
-
개항기 부산 출신의 지주, 자본가, 사회 운동가. 김형찬(金炯贊)은 1885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출신의 지주 출신 자본가이다. 1910년대 후반 부산과 경상남도의 많은 지주 출신들이 부산에서 상업에 투자할 무렵 김형찬도 태복상회(泰復商會)를 경영하였다. 또 1911년 5월 25일 봉래일기계(蓬萊一紀契) 설립에 참여하였고, 1918년에는 동래은행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동시...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금융가. 문상우(文尙宇)는 1882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좌천동에서 문세화(文世化)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문상우는 어려서 부산진에 위치한 육영재(育英齊)에서 한학을 배웠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부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부자였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의 점원으로 생활하였다. 문상우가 박간상점(迫間商店)에 입사할 때 조선...
-
부산 출신의 기업가이자 관료. 박건자(朴健資)는 1914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태어나,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낙동강주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낙동강 소주’, ‘낙동강 청주’ 등을 생산하였다. 또한 지역 사회에서 신망이 높아 1947년 구포체육회 회장을 맡으면서 8·15 해방을 기념하고 지역 주민의 화합을 기하기 위해 구포 지구...
-
부산 출신의 대선발효공업주식회사 경영자. 박선기(朴善琪)는 1912년 6월 16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593번지에서 부친 박계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슬하에 5녀를 두었다. 박선기는 부산공립직업학교[현 부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인 제재업에 종사하였다. 스포츠와 사진에 취미가 있던 박선기는 부산공립직업학교 재학 중 정구 선수로 활...
-
근대 부산 출신의 대지주이자 기업인. 박인표(朴仁杓)의 동생은 박맹표(朴孟杓)와 박공표(朴孔杓)이다. 박공표는 기장 3·1 운동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이후 동래 지역의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아들 박영출(朴英出)은 1925년 7월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 휴학에 가담하여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 후 교토제국대학에 재학...
-
부산 출신의 기업인. 박차록(朴次菉)은 1906년 10월 11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화전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해금융조합 이사를 역임한 데 이어 조선개척주식회사 부사장을 거쳐 잠시 토건업에도 종사하였다. 해방 후인 1946년 양조업계에 진출하여 부산의 명주였던 보수(寶水)양조공업주식회...
-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제과점인 부산뉴욕제과를 설립한 기업인. 박한기(朴漢基)는 1911년 경기도 평택시 평택읍에서 태어나서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이후인 1954년 3월 15일 부산 지역에 본점을 두고 서울과 대구에 지점을 개설한 부산뉴욕제과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박한기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를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경제인이자 사회사업가. 신덕균(申德均)은 1909년 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가덕도]에서 출생하였다. 신덕균의 가계는 혼인을 통한 정계와 재계와의 인맥 형성이라는 한국 재벌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신덕균은 자녀로 3남 2녀를 두었는데, 큰딸 신현숙은 동방의료양행 회장인 남해용과 결혼하였다. 큰아들 신명수는 이승만...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 신중달(愼重達)은 1910년 12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났다. 부인 문순덕(文順德)과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신중달은 일본 해초중학교(海草中學校)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부산에서 1940년에 조선석유통제회사의 제3종 면허를 획득하면서 석유업계에 몸을 담았다. 1949년 경남조개표석유㈜와 동아석...
-
부산에서 활동한 기업가이자 교육자.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원곡(圓谷). 할아버지는 안기정(安基禎)이고, 할머니는 김광도(金光度)의 딸이다. 아버지는 안찬복(安贊福)이고, 어머니는 김인화(金仁嬅)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오희복(吳熙福)이다. 3대째 천도교 집안이다. 아버지는 독립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과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아들은 안원철[현...
-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향토 기업인. 본관은 남원(南原). 1921년 9월 13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태진(粱泰振)은 동래구 안락동에서 출생한 부산 토박이로, 동래공립보통학교[현 낙민초등학교]를 중퇴하고 행상을 하여 모은 돈으로 쌀가게를 열어, 1938년에 큰 정미소를 설립할 정도로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일본인과 같이 설립하였던 이 정미소를 해...
-
부산 출신의 기업인으로 국제그룹 창업자. 1901년 부산에서 아버지 양재석(梁齋錫)과 어머니 송보순(宋父順)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11세 때인 1911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머니와 함께 행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김덕년과 결혼 후 동래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며 재산을 모아 거대 기업인으로 성장하였다. 양태진(梁泰振)은 일찍이 서당에서 수학하였으며,...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제면·제분업 자본가. 오명구(吳命九)는 1916년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곡물 객주 오성문(吳成文)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명구는 구포공립보통학교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무렵 구포에 현대식 자동 설비를 갖춘 광전제분제면공장을 설립하였다....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경제인으로 ‘여객 자동차 왕’으로 불린 기업인. 오창좌(吳昌左)는 1909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내 강순인(康順仁)과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오창좌는 일본의 야마구치 현[山口縣]에 있는 하기중학교[萩中學校]를 졸업하였다. 1932년 오카노자동차상회[岡野自動車商會]의 시모노세키지점[下關支店]...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해운과 조선업계의 대표적인 기업인. 윤종근(尹鍾根)은 1913년에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녹산리 1110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서 태어났다. 1928년 4월 부산제2상업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으로 중도에 그만두고 1929년 일본인이 경영하던 고메쓰네 상점에 점원으로 들어갔다. 고메쓰네 상점은 일본인 미야모...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년재(李年宰)는 1911년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나, 14세에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의 양산 공장 등을 전전하며 돈을 모았다. 비가 많은 일본에서 우산이 장차 헝겊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데 착안한 이년재는 1937년 5월 공업 지대인 오사카에 길본제작소(吉本製作所)를 설립하여 양산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사업이...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전 삼성그룹 회장.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호암(湖巖).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의 2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 박두을(朴杜乙)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이병철(李秉喆)은 1922년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 같은 해 9월 서울의 수...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기업인이자 정치인. 이영언(李榮彦)은 1899년 10월 3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에서 태어나,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조선흥업주식회사 부산지점에 10여 년간 근무하다가 부산봉래주조주식회사 전무로 취임하였다. 그 동안 부산제3금융조합에서 평의원부터 감사를 거쳐 조합장에 이...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 이용범(李龍範)은 1905년 10월 30일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석산리의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지 1년이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이후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으로 이주하여 19세 되던 해인 1923년 일본 규슈[九州]로 건너가 20년 동안 탄광의 인부로 생활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강원도...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종인(李鍾仁)은 1916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 황성옥(黃成玉)이 운영하는 해산물 상회 지배인으로 활동하였다. 8·15 해방 후 일본인 소유였던 적산 기업 즙양조주식회사(汁釀造株式會社)의 관리 지배인을 하였다. 6·25 전쟁을 전후해 중앙여객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51년 7...
-
부산 출신의 군인이자 기업인. 장지수(張志洙)는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화명동의 대지주로, 할아버지 장우석은 구포은행과 사립구명학교의 설립 발기인이며, 아버지 장진원 역시 사립화명학교의 설립 발기인으로 학감을 역임하였다. 아내 김우정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장지수는 구포공립보통학교, 일본풍포중학교를 거쳐 1947년...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가이자 7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해석(海石). 1915년 9월 울산에서 태어났으며, 아들로 정재문이 있다. 정재문은 제12~16대 국회 의원을 역임한 5선 의원이다. 정해영(鄭海永)은 1931년 부산제2공립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11월 울산의 병영정미소에 중...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기업인. 최금공(崔金公)은 1911년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영지리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남해 상주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 등지에서 운수업과 무역업에 종사하였다. 약 6년간 오사카의 요시다무역회사[吉田貿易會社] 지점장을 지내기도 하였고, 오사카흥아공업주식회...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가. 최태욱(崔泰旭)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79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중반 일본에 유학하는 동안 많은 유학생과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대 후반 귀국하여 민족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 무렵 부산으로 와 태공상회(泰共商會)를 설립하고 미곡과 해산물을 취급하였다. 당시 부...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현수명(玄修明)은 부인 강민선(姜敏善)과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다. 큰아들이 현 화승그룹 회장인 현승훈이다. 현수명은 1922년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생하였다. 현수덕, 현수창, 현수명 3형제는 서울에서 공장을 하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1951년 현수명은 초량에 있던 유리 공장을 인수하여 동양고무공업...
경제인
-
근대 부산 출신의 관료이자 경제인. 김영규(金永圭)는 1860년(철종 11) 6월 14일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금녕군(金寧君) 김목경(金牧卿)의 24세손으로 태어났다. 부인 권정순은 초량부인회 총무를 지냈고, 아들 김성준은 경성공업전습소 도기과를 졸업한 후 경상남도 산청면 사월면 단속동에서 자기 제조소를 설립하였다. 김영규는 개항기 문과 초시에 합격하여...
-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이자 경제인, 언론인. 김예준(金禮俊)은 1907년 11월 2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대 부산에서도 청년 운동이 발흥하면서 마침내 1927년 12월 4일 부산의 4개 청년 단체가 발기하여 부산청년동맹을 창립하였다. 이에 김예준은 조사연구부의 부원...
-
부산 출신으로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연합 식량부장을 지낸 경제인. 김용순(金溶淳)은 부산 출신으로 쌀 도매상을 운영하였다. 1945년 10월 5일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대표자대회에서 김철수(金喆壽) 등 일부 대의원이 인민공화국 지지와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결성 방침에 반발하여 퇴장하였다. 이에 이튿날인 10월 6일 오전 11시 대...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친일 자본가. 김장태(金璋泰)는 1886년 2월 6일 부산부 좌이면 만덕동 1통 2호[현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서 태어났다. 1909년 일본의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과를 수료한 뒤, 부산공립보통학교 훈도를 맡아 교직에 종사하였다. 1910년 일본 삼중현(三重縣) 사일시상업학교(四日市商業學校) 교원으로 있다가, 1913년 부산공립상업학교...
-
부산 출신의 행정가이자 기업가. 김종대(金鍾大)는 아내 이명영(李明榮)과의 사이에 김상수[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김정수[에스아이에스기술 상무] 등 2남 2녀를 두었다. 사위는 이홍규[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조욱래[동성개발 회장]이다. 김종대는 1921년 3월 2일 부산광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구포공립보통학교[현 구포초등학교]와 부산제...
-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사회 운동가. 박왕희(朴枉希)는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경남직물 밀양 공장을 운영하였고, 농업에도 종사하였다. 1945년 10월 5일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 대표자 대회에서 김철수(金喆壽) 등 일부 대의원이 인민공화국 지지와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결성 방침에 반발하여 퇴장하였다. 이에 따라 이튿날인 10월...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 설경해(薛慶海)는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경신상점 사장이자 구포곡물조합 이사로 활동하였다. 그의 경제력은 주로 토지 자본에서 기인한 것으로, 1940년 허원도(許元道)에 이어 두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낸 구포 면민이었을 만큼 지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지주였다. 설경해는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정치인. 신수갑(辛壽甲)은 1900년 동래군 동래읍 원동리[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부터 1913년까지 동래읍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917년 동래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고등부기학원에서 부기 각과를 수료하였다. 1922년부터 영선정[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서 곡물상 및 정미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경...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 양경환(梁卿煥)은 1888년 12월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서 태어났다. 1900년 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실업에 뜻을 두고 1912년 조선우선회사 소속 제주도 김녕취급점을 개업하였다. 1921년 2월 제주도~오사카[大阪] 간 항로의 유망함을 인식하고 조선인 실업가와 뜻을 모아 합자회사 제우사(濟友社)를 부산에 설치하여 조일환(朝日丸)...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최초의 민족 은행인 구포은행[경남은행]을 설립한 경제인.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청운. 개항기인 1887년 8월 10일 동래 부사와 사천 군수를 지낸 윤홍석(尹弘錫)[1843~1902]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는 위로 윤필은, 윤명은과 아래로 윤영은이 있었다. 윤필은은 동래 부사, 윤명은은 고성 군수와 울산 군수를 지냈다. 동생 윤영은은 1908년...
-
근대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사회 활동가, 정치인.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건영(李建榮)이며, 동생은 1915년 부산조선인상업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였던 이규정(李圭正)이다 이규직(李圭直)은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1878년 2월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다. 1898년 명례궁(明禮宮)의 감관(監官)으로 김해에 부임하여 김해와 양산군 내의 호전(芦田) 감리...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경제인. 이진상(李震相)의 출생지와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래와 구포 일대 경제, 사회 방면에서 존재가 뚜렷하여,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진상은 개항기에는 계몽 운동에 전념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경제 활동에 주로 참여하였다. 이진상은 개항기에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6...
-
개항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교육자. 장우석(張禹錫)은 1871년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대지주로 민족 학교인 구포 사립구명학교[현 구포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지주(支柱) 역할을 하였고 1906년 초대 교장을 맡았다. 또 구포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던 물상객주와 지주를 모아 구포저축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이를 육성시켜 최초의 지방 은행인 구포은행을 창설하...
-
근대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사회 운동가. 정기두(鄭箕斗)는 1869년 3월 15일 부산진 초량[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설 한문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889년부터는 조선물산이란 무역상을 경영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1906년에 잠시 탁지부 세무관에 임명되어 함경남도에서 근무하였다가 1907년에 사임하였다. 이후 초량에서 미곡상을 경영하...
-
근대 동래부 소속 무청의 무임을 역임한 은행가이자 교육자. 본관은 추계(秋溪). 고조할아버지는 장관청 천총과 파총·초관, 별군관청 병방, 별기위청 별장·백총, 작대청 별장, 수첩청 백총을 역임한 추운룡(秋雲龍)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추석민(秋碩民)이다. 할아버지는 장관청 파총, 별기위청 별장을 역임한 추성조(秋聖祚)이며, 아버지는 추병주(秋秉周)이다. 어머니는 장관청 중군과 천총,...
-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사회사업가. 허원도(許元道)는 1895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출생하였다. 일제 강점기 구포의 대표적 정미 공장인 대동공사를 설립·운영했으며, 구포청년회에서 청년 운동을 주도하고, 구포곡물조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특히, 1932년 4월 구포곡물조합 경영이 어려워지자 설경해(薛慶海)와 함께 자본을 추가로 투자하여 위기를 넘기는...
-
일제 강점기 부산의 일본인 자본가. 나카무라 규조[中村久藏]는 1866년 6월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 웅모군(熊毛郡) 좌하촌(佐賀村) 좌합(佐合)에서 태어났다. 아들인 나카무라 코지[中村高次]도 가업을 이어 부산 영선정에서 조선 철공업에 종사하고 남빈정에 선구점도 경영하며 부산상공회의소 상의원, 부산부회 의원을 역임하는 등 부산의 일본인 유력자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 기업인. 나카무라 코지[中村高次]는 1893년 2월 24일 일본 야마구치 현 웅모군 좌하촌 좌합[山口縣 熊毛郡 佐賀村 佐合] 54번지에서 나카무라 규조[中村久藏]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나카무라 규조는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 제3금융조합 이사, 목도신탁주식회사 이사 및 대주주, 부산상사주식회사 이사 및 대주주, 영선정 총대, 용두산...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실업가. 나카무라 토시마츠[中村俊松]는 일본 오이타 현 풍전[大分縣 豊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독학을 했고, 나가사키[長崎]와 고베[神戶] 등지에서 장사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조선과의 인연은 개항 후 일본군을 따라 어용상인으로 활약하면서 맺었다. 즉, 1894년 청일 전쟁과 1900년 6월 의화단...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실업가. 나카베 요시기치[中部義吉]의 생년월일 및 출신지 등 인적 사항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성인 나카베[中部]는 장인의 성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출생 시 본명 또한 상세하지 않다. 장인은 나카베 이쿠지로[中部幾次郞]로 임겸상점(林兼商店)의 대표였다. 나카베 요시기치는 1925년 임겸상점의 주식회사 전환과 함께 취체...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토목건축업자. 다나카 히데요시[田中筆吉]는 일본 오카야마 현 아도군 흉산촌[岡山縣 兒島郡 胸上村]에서 태어났다. 아내는 전중신자(田中新子)이고, 큰아들 전중근등(田中近藤)은 거제도에서 전중 농장(田中農場)을 경영하였다. 현재 부산시 등록 문화재 제349호로 남아 있는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저택에 조선으로 건너 온 지 30년을 기념하는...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관료. 다바타 쇼헤이[田端正平]는 1859년 12월 와카야마[和歌山]에서 대대로 주조장을 경영하던 상가에서 태어났다. 도쿄에서 수학한 후 외무성에 취직했고, 1898년 11월 부산영사관 1등 서기관으로 조선으로 건너와 근무하였다. 1901년 일본인 상인들의 이익 단체였던 부산상업회의소의 이사장으로 초빙되었고, 이후 정관 개정에 의해 서기...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관료이자 실업가. 다케시타 요시타카[竹下佳隆]의 생년월일 및 출신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경상남도 도회 의원을 지낸 그의 아들 죽하융평(竹下隆平)의 출생지가 일본 나가사키 현 노박정[長崎縣 爐粕町]인 것으로 보아 나가사키 현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다케시타 요시타카는 부산해관의 일본인 관리로 1884년(고종 2...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실업계의 거두. 사카다 분키치[坂田文吉]은 1876년 5월 일본 후쿠오카 현 팔녀군 상광천촌[福岡縣 八女郡 上廣川村]에서 판전여시(坂田與市)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판전여시는 부산의 유력한 무역상으로, 판전상점을 설립하여 자본을 확대하였고, 초기 거류민회 의원과 상업회의소 의원을 역임하였다. 사카다 분키치는 1903년 동경...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대자본가.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는 1856년 일본[日本] 나가사키 현 하현군 엄원정 궁곡[長崎縣 下縣郡 嚴原町 宮谷] 54번지에서 오이케 쇼베이[大池庄兵衛]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3세 때 숙부인 고오리 이베에[郡伊兵衛]의 천금단본포(千金丹本鋪)에 견습 점원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사숙(私塾)에 통학하였다. 20세 되던 1875년 2...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항만 매축으로 성장한 일본인 실업계 거두.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는 1885년 8월 25일 일본 구마모토 현 천초군 하포촌[日本 熊本縣 天草郡 下浦村] 1077번지에서 지전우언(池田友彦)과 지전리오(池田リヲ)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내는 지전코메(池田小梅)이다. 이케다 스케타다는 1899년 3월 소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미곡상. 이타니 기사부로[井谷義三郞]는 1876년 4월 28일 일본 와카야마 현 나하군 암출정 자청수[和歌山縣 那賀郡 岩出町 字淸水]에서 정곡평삼랑(井谷平三郞)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내는 산리오랑(山里五郞)의 딸인 정곡미희자(井谷美喜子)이고, 자녀로는 부산고등여학교 출신 큰딸인 정곡미지자(井谷美智子), 둘째 딸인 정곡현자(井谷絢子)...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유력 자본가.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는 러일 전쟁 당시 부산에 들어와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자본 축적에 성공한 일본인 자본가로,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郎]와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와 함께 부산의 3대 거부[거두]로 불렸다. 수산업계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조선의 수산왕으로도 불렸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최초의 발판은 1906...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 경제인. 풍전복태랑(豊田福太郞)은 1868년 풍전천우위문(豊田泉右衛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풍전마스(豊田マス)와의 사이에 큰아들 풍전천태랑(豊田泉太郞), 둘째 아들 풍전용차랑(豊田勇次郞), 셋째 아들 풍전영삼랑(豊田榮三郞), 큰딸 풍전절자(豊田節子), 둘째 딸 풍전설지(豊田雪枝)가 있다. 풍전복태랑은 1892년 5...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하기노 미자에몬[萩野彌左衛門]은 일본 후쿠이 현[福井縣]에서 태어나 조선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오사카[大阪]에 적을 두었다. 아내는 하기노 후지[萩野ふじ]이다. 하기노 미자에몬은 오사카에서 장사를 배운 후 자신의 이름으로 상점을 개설하는 한편, 오사카상선회사[大阪商船會社]와도 관계를 맺었다. 1891년 부산을 왕래하며...
-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일본인 경제인이자 정치인.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는 1860년 10월 20일 일본 화가산현 나하군 지전촌[和歌山縣 那賀郡 池田村]에서 박간가사랑(迫間嘉四郞)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자마 후사타로는 1878년 오사카에 위치한 오백정장평상점(五百井長平商店)에 입사하였다. 1879년 상점이 파산하자 재건의 사명을...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이자 교육자.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는 1864년 1월 일본의 시가 현 신기군 건부촌 대자계[滋賀縣 神崎郡 建部村 大字堺]에서 태어났다. 동생으로 후쿠나가 토요지로[福永豊治郞]와 후쿠나가 가이사부로[福永嘉三郞]가 있다. 후쿠나가 토요지로는 시가 현에 거주하는 다카세 마사타로[高瀨政太郞]의 양자가 되었다. 후쿠나가...
-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후쿠다 소베[福田增兵衛]는 1844년(헌종 10) 일본 쓰시마 상현군 주자촌[對馬島 上縣郡 舟子村]에서 사무라이 무본등좌위문(武本藤左衛門)의 아들로 출생하여 이즈하라(嚴原)의 상인 후쿠다 아무개[福田某]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자녀로 양자 복전유조(福田有造)가 있으며, 목포에 상점을 개시하고 무역상을 물려받았다. 후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