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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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金公 |
영어음역 | Choe Geumgo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기업인.
[활동 사항]
최금공(崔金公)은 1911년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영지리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남해 상주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 등지에서 운수업과 무역업에 종사하였다. 약 6년간 오사카의 요시다무역회사[吉田貿易會社] 지점장을 지내기도 하였고, 오사카흥아공업주식회사의 대표 취체역[대표 이사]을 맡기도 하였다. 해방 후 재일 교포 2세들의 교육을 위해 사재로 오사카 이쿠노구[生野區]에 오이케국민학교[大池國民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귀국 후 최금공은 신흥여객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7년 신문 기사에 의하면 신흥여객자동차주식회사는 부산 전역을 대상으로 6대의 버스를 운행하였고, 1959년경에는 200여 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부산과 경상남도 최대의 여객 자동차 사업체였다. 이를 기반으로 최금공은 경남여객자동차운수사업조합의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총선거에서 최금공은 자유당 공천으로 부산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부산대학교 후원회장, 경남고등학교 사친회장, 재부남해군향우회 회장을 지냈다. 1973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