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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206
한자 朴仁杓
영어음역 Bak Inpyo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경제인
성별
대표경력 동래은행 취체역
활동 시기/일시 1917년 12월 - 고려상회 경영
활동 시기/일시 1918년 8월 3일 - 동래은행 취체역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0년 8월 21일 - 동래은행 두취에 선출
몰년 시기/일시 1920년 11월 17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활동지 동래은행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정의]

근대 부산 출신의 대지주이자 기업인.

[가계]

박인표(朴仁杓)의 동생은 박맹표(朴孟杓)와 박공표(朴孔杓)이다. 박공표는 기장 3·1 운동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이후 동래 지역의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아들 박영출(朴英出)은 1925년 7월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 휴학에 가담하여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 후 교토제국대학에 재학 중인 1930년 재일한인학생강연회에서 독립을 호소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1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경성으로 이주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36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박인표기장면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권은해의 아버지 권상중(權商重)을 비롯한 기장 지역 부호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에 관여하였다. 1917년 12월에는 김두봉(金枓奉), 최태현(崔泰鉉), 김진원(金晉源)과 함께 김정훈(金正勳)이 경영하던 고려상회를 인수하여 합자 회사 형태로 경영하였다. 인수 과정에서 박인표는 인수에 필요한 자본을 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상회를 통해 곡물, 면포, 해륙 물산을 취급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무역상으로 성장하였다.

박인표는 상업 활동을 통해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금융업에도 진출하여 동래은행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1918년 8월 3일 사립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개최된 동래은행 창립총회 당시 17인의 발기인 중 1명으로 참가했고, 이 자리에서 동래은행의 취체역(取締役)[이사]으로 선출되었다. 동래은행의 창립에서 박인표가 갖는 중요성은 그가 소유한 동래은행 주식의 비중에서 잘 나타난다. 박인표의 주식 소유량은 700주에 달했는데, 이는 동래은행의 전체 주식 1만 주 중 7%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동래은행의 초대 임원들 중 박인표에 비견할 정도로 주식을 소유한 인물은 초대 두취[은행장]였던 윤병준[700주]뿐이었다. 이후 박인표윤병준 사임 후 1920년 8월 21일 취체역 회의에서 두취로 선출되었으나, 그 해 11월 17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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