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07 |
---|---|
한자 | 金錫萬 |
영어음역 | Gim Seokman |
이칭/별칭 | 원로(元魯)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3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은행가.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원로(元魯)이다.
[활동 사항]
1918년 설립된 동래은행은 부산시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 232번지에 본점을 두고 있었다. 설립 당시 취체역 두취[대표 이사]는 윤병준, 취체역 전무[전무 이사]는 추종엽이었다. 김석만(金錫萬)은 박인표, 오태환과 함께 취체역[이사]을 맡았으며, 1기[1918년 12월]부터 25기[1930년 12월]까지 이사를 역임했는데, 오태환·추종엽과 함께 전 시기에 걸쳐 300주 이상 소유한 최대 주주였다. 1912년 9월 설립된 구포은행의 경우도 1913년부터 1917년까지는 100주, 1918년부터 1927년까지는 130주를 소유하고 있었다.
1906년 당시 김석만은 대한자강회 동래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동래기영회 회장 송상종(宋商宗)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삼락학교(三樂學校)는 동래부 수면(首面)[읍내면] 대표자들의 총의가 반영되었다. 1907년(광무 11) 1월 작성된 「수면 노소 신사총회 완문」을 작성할 당시 수석 회원은 모두 104명인데, 김석만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1907년 12월에는 인가와 가까이 있는 우전(牛廛)을 이전하는 문제를 수면 각동 대표 70명이 연명하여 동래부윤 서리에게 청원했는데, 김석만은 여기에도 가담하였다. 1908년 6월에는 동래부 수면 사립 노동 야학교 설립에 찬동하여 의연금(義捐金)을 내었다. 『동래군지』[문기주, 동래향교, 1937]의 ‘음사(蔭仕)’ 항목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1916년 10월 동래기영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