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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타 쇼헤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69
한자 田端正平
영어음역 Tabata Shouhei
이칭/별칭 전단정평(田端正平)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보수동 1가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대표경력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
출생 시기/일시 1859년 12월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8년 - 부산영사관 서기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1년 - 부산상업회의소 이사장[서기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4년 - 부산학교조합 의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부산부 촉탁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부산부협의회 회원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에 당선
출생지 일본 와카야마 현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서구 보수동 1가
활동지 부산광역시 서구 보수동 1가

[정의]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다바타 쇼헤이[田端正平]는 1859년 12월 와카야마[和歌山]에서 대대로 주조장을 경영하던 상가에서 태어났다. 도쿄에서 수학한 후 외무성에 취직했고, 1898년 11월 부산영사관 1등 서기관으로 조선으로 건너와 근무하였다. 1901년 일본인 상인들의 이익 단체였던 부산상업회의소의 이사장으로 초빙되었고, 이후 정관 개정에 의해 서기장이 되었다. 취임 이후 부산상업회의소의 업무 쇄신과 확장에 노력했고, 일본 제품의 조선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부산상업회의소 부속 상품 진열관을 건설하였다. 동시에 대구일본인회 회장으로도 활동했으며, 해원공제회(海員掖濟會) 위원에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부산상업회의소의 서기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부산 지역의 유력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예를 들어 1907년에는 복호회(伏虎會) 부장, 명태어창고회흥사(明太魚倉庫會興社) 총무, 한국농사조합 조장, 일본인지주회 회장, 부산거류민단 의원, 해원공제회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에도 부산거류민단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14년과 1923년에는 부산학교조합 의원에 당선되어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교육 문제 해결에 적극 관여하였다. 또한 동향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추천으로 동래 면장에 천거되었으나, 동래 면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하였다. 1926년과 1929년 하자마 후사타로의 추천으로 제3~4기 부산부협의회 회원에 당선되어 당시 부산의 가장 중대한 문제인 전기 부영화 문제에 대해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른바 ‘전벌파(電閥派)’, 또는 ‘부산협화회(釜山協和會)’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32년 4월에 부산상공회의소 평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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