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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084
한자 鄭子範
영어음역 Jeong Jab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성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래 상인
성별
활동지 초량 왜관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활동지 초량 왜관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정의]

조선 후기 부산 지역에서 왜관의 개시 무역(開市貿易)에 참여한 동래 상인.

[개설]

조선 시대 동래부에서는 부산에 설치된 왜관(倭館)에 드나들면서 일본과 무역을 할 상인을 특별히 지정하였다. 이것은 왜관에서 밀무역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왜관의 개시 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물려서 동래부의 재정 수입을 늘리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왜관의 개시 무역에 참여한 동래 상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몇 상인에 대해서는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정자범(鄭子範)이다.

[가계]

왜관의 일본인들이 기록한 『일대관매일기(一代官每日記)』의 1846년 6월 23일자 기록에 따르면, 정자범은 동래 상인 정윤중(鄭允中)의 아들이다. 윤중은 자로, 그가 맡았던 직책인 오위장에서 이름을 따서 정오위장(鄭五衛將)으로도 불렸다. 『일대관매일기』 1817년 11월 7일과 12월 28일 기록에 따르면 정윤중은 왜관에 드나들면서 대일 무역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활동 사항]

『일대관매일기』 1837년 2월 26일 기록을 보면, 정자범은 내유(內維)와 공동으로 왜관의 개시 무역에 참여하고 있었다. 내유는 최행수(崔行首)라고도 불렸는데, 진짜 이름은 최주한(崔周翰)이다. 계사년인 1833년(순조 33)에 왜관의 대마도 측이 내유를 불러들여서 포상(褒賞)한 것을 보면, 그가 무역 활동을 활발히 했을 뿐만 아니라 왜관 측에도 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분류기사대강(分類紀事大綱)』11, 발행자·발행 연도 알 수 없음].

정자범은 1844년부터 1849년까지 한 해도 빼지 않고 왜관의 개시 무역에 참여하였는데, 이때는 단독으로 무역에 참가하였다. 그는 서울과 전주·대구를 오가며 당시 조선의 주력 수출 품목이던 우피(牛皮)를 조달하고 있었다. 또한 1846년에는 쪄서 말린 해삼[煎海鼠]을 그 해 봄철 왜관으로 들여보낼 목표량을 초과하는 좋은 실적을 올렸다. 한편, 정자범은 동래와 서울·전주·대구 등을 연결하는 유통망을 갖추고 활발하게 무역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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