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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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翰壽 |
영어음역 | Gim Hansu |
이칭/별칭 | 수당(壽堂)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동리길 10[명지동 155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 출신의 기업가이자 한일그룹 창설자.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수당(壽堂). 아버지 김창준(金唱準)과 어머니 변남이(卞南伊)의 2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장복달(張福達)과의 사이에 6남 4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한수(金翰壽)는 1922년 당시 경상남도 김해군에 속했던 명지면 동리[현 부산광역시 북구 명지동 155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성호공립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고노하나상업학교[此花商業學校]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 포목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1954년에 한천(寒天)을 수출하고 양복지를 수입하는 대경산업주식회사(大耕産業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1956년 경남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2년에 중앙합성섬유주식회사, 1964년에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섬유 회사로 키워 냈다. 1970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이래 1973년에는 단일 기업으로는 최초로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하였다.
1954년에 고향인 명지면에 경일중학교(慶一中學校)를 세웠으며, 1974년에는 학교법인 한효학원(翰曉學院)을 설립하고 부회장에 취임하였다. 한효학원 산하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는 마산 공장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설립되었는데, 그 뒤 대구와 수원까지 확장하여 현재 국내 최대의 실업 학교로 성장하였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 부문 5·16 민족상을 수상하였다. 또 의료 취약 지구에 의료 시혜를 베풀기 위하여 경상남도 함양군에 안의의원(安義醫院)을 설립하였다. 1974년에는 한국소모방협회 회장을, 1977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11월 산업포장을 받았고, 1969년 11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0년 11월 금탑산업훈장에 이어 1971년 11월 수출최고상을, 1972년 11월 수출특별유공상을 받았다. 1973년과 1974년 연속으로 1억불 수출탑을 받은 데 이어 1975년 11월에는 다액수출유공대통령기를 받았다. 1976년과 1977년 연속으로 2억불 수출탑을 받았고, 1978년 5월에는 5·16 민족상 교육 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1978년 12월 3억불 수출탑, 1979년 12월 4억불 수출탑을 받았다. 1982년 9월 국민 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