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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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南根 |
영어음역 | O Namgeu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53[초량동 39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활동 사항]
오남근(吳南根)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개항 후 부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후 부산 객주업계를 대표하는 경제인으로 우뚝 섰다. 1900년(고종 37)에 설립되어 1927년 부산 객주들이 운영하게 되는 남선창고주식회사에서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1월까지 이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해륙 물산을 취급하는 오남근상점을 운영하면서 남선창고주식회사에 명태 등 해산물을 기탁하였다. 부산 객주업계에서 그의 활동이 부각되면서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1918년 4월~1922년 3월], 부산객주조합 총회에서 조합장[1925년 3월]으로 선출되었다.
오남근은 부산의 사회 운동에도 참가하였다. 1920년 8월 4일 정기두(鄭箕斗), 추내유(秋乃有), 어대성(魚大成) 등과 함께 부산부 방역자위단을 조직하고, 부산 부윤 및 경찰서장과 협의한 뒤 부산진 좌천동 수정 계곡 부근에 건물을 빌려 ‘괴질 환자 치료소’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조선인은 관립피병원에 가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다.
1921년에 주택난구제기성회 주최로 부산 시민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오남근은 축사를 하였다. 당시 부산은 외부로부터 많은 조선인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소수의 일본인 자산가들이 조선인 거주지와 토지를 매입하였기 때문에 조선인의 주거 공간이 부족하였다. 오남근을 비롯한 부산의 유지들은 부산 시민대회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또한 교육 운동에도 참여하여, 1922년 이규직(李圭直), 어대성 등과 함께 부산공립보통학교 부형회를 조직하여 후원하였다. 1924년에는 도립여자고등보통학교 기성회를 조직하여 평의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27년 오늘날 경남여자고등학교의 모태가 되는 도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개교하였다. 한편, 오남근은 이상과 같은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기반으로 1926년 부산부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적으로도 부산의 조선인 사회에서 높은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