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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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仁會 |
영어음역 | Gu Inhoe |
이칭/별칭 | 정득(丁得),연암(蓮庵)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107번길 54[온천동 70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LG그룹 창업자
[가계]
아명은 정득(丁得), 호는 연암(蓮庵). 1907년 8월 27일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아버지 구재서(具再書)와 어머니 진양 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만회공(晩悔公) 구연호(具然鎬)가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내 그의 집은 구교리댁으로 통하였다. 1920년 허을수(許乙壽)와 결혼하여 아들 구자경을 두었고, 손자로는 구본무·구본능·구본준·구본식이 있다.
[활동 사항]
구인회(具仁會)는 1926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2년 수료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수협동조합(智水協同組合) 이사로 취임하였고, 1932년 포목 상점인 구인회상점을 열었다. 1945년 부산으로 이전하여 11월 조선흥업사를 창립하고, 미군정이 발급한 무역업 허가 1호를 취득하여 무역업을 시작하였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여 럭키 크림을 첫 작품으로 화장품 생산을 시작하였고, 1952년에 대한화장품협회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1952년 동양전기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범일동으로 공장을 옮긴 후 빗을 비롯한 플라스틱 가공 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였다. 1953년에는 락희산업주식회사[반도상사 전신]를 설립하였고, 1954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크림 타입의 럭키치약을 개발하였다. 1955년에는 연지동 공장을 준공하였다. 1959년 국내 최초의 전자 회사인 금성사를 설립하여 라디오[1959년], 흑백 텔레비전[1966년], 전화기[1961년], 세탁기[1969년] 등 수많은 전자 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였다. 1959년에 락희유지공업주식회사를 창립하고, 초읍의 공장에서 비누를 생산하였다.
1962년에 구인회는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와 락희비니루공업주식회사[동래 공장]을 창립하였다. 1964년에는 『국제 신보』를 인수하여 대표 이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또 한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취임하고, 1969년에 부산문화TV방송주식회사[현 MBC 부산문화방송]와 경상남도일보사를 인수한 데 이어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1969년 부산에서 본사를 서울로 옮겼고, 그 해 12월 31일 사망하였다.
[묘소]
1970년 1월 4일에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하갈리 유택에 안장하였다가 1983년 1월 15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선영으로 이장하였고, 1990년 4월 1일에 묘비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1966년 제3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법원장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국세무공무원대회에서 고액 납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청와대에서 5·16 민족상 유공자 감사장을 수상하였다. 1967년에는 고려대학교 기업경영연구소가 제정한 한국 최우수 경영자상을 수상하였다. LG 연암기념관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366-1번지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