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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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圭 |
영어음역 | Gim Yeonggyu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20통 2호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근대 부산 출신의 관료이자 경제인.
[가계]
김영규(金永圭)는 1860년(철종 11) 6월 14일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금녕군(金寧君) 김목경(金牧卿)의 24세손으로 태어났다. 부인 권정순은 초량부인회 총무를 지냈고, 아들 김성준은 경성공업전습소 도기과를 졸업한 후 경상남도 산청면 사월면 단속동에서 자기 제조소를 설립하였다.
[활동 사항]
김영규는 개항기 문과 초시에 합격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과 소헌 왕후 심씨의 능인 영릉(英陵)의 참봉을 시작으로, 전환국의 무철 감관(貿鐵監官)을 지냈다. 한편 그는 1899년(고종 36) 설립된 부산항 상무사(商務社) 설립위원장과 총무를 역임하면서 부산 지역을 무대로 경제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영규는 내지관광단시단장(內地觀光團時團長), 경상좌우도 사명사장(慶尙左右道社明査長), 일한박람회 사무장, 일본적십자 모집 위원, 일한방역회(日韓防疫會) 총무, 부산부 사중면 민의소(釜山府沙中面民議所) 총무를 역임하였다.
개항기 국운이 위태로워지자 김영규는 근대 개혁을 통한 자강을 지향하며 계몽 운동에 몸담기도 하였다. 1906년 3월 발족한 대한자강회 부산지부와 그를 이어 1907년 조직된 대한협회에서 지부장과 지부 총무를 역임하며 활동하고, 1908년 5월 개교한 동래 사립명륜학교 설립에 관여했으며, 1909년 6월 개교한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의 학무 위원을 지냈다. 또한 초량 객주였던 김영규는 1908년 8월 동래상업회의소 초대 총무를 이어 평의장을 지냈으며, 1911년 12월 부산객주조합 총무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