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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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萩野彌左衛門 |
영어음역 | Hagino Mizaemon |
이칭/별칭 | 추야미좌위문(萩野彌左衛門),추야미일(萩野彌一)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3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가계]
하기노 미자에몬[萩野彌左衛門]은 일본 후쿠이 현[福井縣]에서 태어나 조선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오사카[大阪]에 적을 두었다. 아내는 하기노 후지[萩野ふじ]이다.
[활동 사항]
하기노 미자에몬은 오사카에서 장사를 배운 후 자신의 이름으로 상점을 개설하는 한편, 오사카상선회사[大阪商船會社]와도 관계를 맺었다. 1891년 부산을 왕래하며 무역업에 종사하던 중, 오사카상선회사가 부산에 한국 항로를 개설하자, 그 취급점으로 선발되어 조선으로 건너와 부산에서 오사카상선회사 부산지점 부산상선조 조장으로 활동하였다. 부산상선조는 1913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사장으로 복무하였다.
하기노 미자에몬은 조선 진출과 동시에 오사카 소재 자신의 상점 지점을 부산에도 개설하고 무역업에 종사하였다. 1897년(고종 34) 상점 사진에 보이는 간판에는 ‘사포로맥주주식회사 특약점’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 하기노상점[萩野商店]은 맥주는 물론 우유, 서양 종이, 잡화 등의 상품을 수입하여 조선에 판매하는 문옥업[도매업]을 통해 성장하였다. 그리고 회조업(回漕業)도 경영하여 부산의 유력 일본인 실업가로 성장하였다.
또한 1913년 3월 부산의 일본인 자본가들의 금융을 보조하기 위해 스스로 자본을 투자하여 설립한 부산상업은행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두취(頭取)로 활동하였다. 1917년에는 부산연초주식회사 사장, 부산공동창고주식회사 취체역 등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에는 부산제1금융조합 조합장을 맡았고, 1920년대는 부산자동차주식회사의 대주주로 활동하는 등 부산 경제계의 중진으로 활약하였다.
이상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기노 미자에몬은 부산 일본인 사회의 중심인물로 각종 단체 및 ‘자치 기구’에서 수많은 활동을 하였다. 1908년 부산번영회 간사를 비롯하여, 1911년 부산 일본인들의 자치 조직인 부산거류민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일본인 자본가들의 이익 단체였던 부산상업회의소 의원은 1903년 이전에도 역임하였으며, 병합 이후인 1912년에는 상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18년에는 부산부 협의회원으로 당선되어 부산의 일본인 사회를 위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