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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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한 노동 열사. 곽재규(郭在圭)는 1955년 7월 18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아내 정갑순과의 사이에 곽경민, 곽영욱 두 딸을 두었다. 곽재규는 1974년 2월 금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1989년 2월 동의전문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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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있는 (주)대봉의 부당한 노동 현실에 항거하여 투신자살한 노동자. 권미경(權美卿)은 1969년 6월 24일 아버지 권씨와 어머니 박영애의 1남 3녀 가운데 큰딸로, 전라남도 장수에서 태어났다. 오빠 권홍기와 여동생 권미자, 권혜경이 있다. 권미경은 1971년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여, 1982년 아미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완구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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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노동 운동가. 김기옥(金琪玉)은 1919년 3월 8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에서 태어났다. 1954년 11월 부산부두노조 위원장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노동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55년 9월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약칭 대한노총]과 전국자유연맹이 통합된 것을 계기로, 전국부두노동조합은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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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1902년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김두수(金枓首)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부산 지역에서 노동 운동과 청년 운동을 했던 김시엽(金時燁)이 친동생이고, 김도엽(金度燁)·김규엽(金圭燁)과는 재종형제 사이이다. 또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은 5촌 당숙이며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도 일가 숙부이다. 박차정(朴次貞)과도 내재종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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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에서 활동한 노동 열사. 김주익(金主益)은 1963년 2월 2일 부산광역시 영도에서 태어났다. 부인 박승희와의 사이에 김준엽, 김혜민, 김준하 3남매를 두었다. 1. 한진중공업 입사 김주익은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로 이주하여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81년에 졸업하였다. 이듬해인 1982년 취직을 위해 다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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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의문사한 노동 운동가. 1. 대한조선공사 노조 민주화 박창수(朴昌洙)는 1958년 7월 28일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1979년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훈련원을 거쳐, 같은 해 10월 대한조선공사에 배관공으로 입사하였다. 이곳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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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전국노동조합평의회에서 활동한 부산 출신의 노동 운동가. 안고덕(安考德)은 부산 출신의 노동 운동가로, 해방 직후 부산 지역의 조선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5일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결성 대회에 부산 지역 대의원[조선 분야]으로 출석하여 집행 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영도 지역의 전국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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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안상교(安常敎)는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으로, 1924년 4월 18일 조선노농대회에 진영노동공제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또 1925년 6월에는 진영소작인회 상무위원으로 있으면서 소작권 이동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7월 소작권 문제로 단식 투쟁을 벌이다가 김해경찰서에 구속되어 1926년 5월 17일 징역 7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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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노동 운동가. 이용환(李龍煥)은 해방 직후 부산 지역의 철도국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철도 노동조합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5일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결성 대회에 부산 지역 대의원[철도 노조]으로 참석하여, 김시엽(金時燁)[교통 노동조합], 안고득(安考得)[조선 노동조합] 등과 함께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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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있는 대우정밀 노동자로 병역 특례법 개정을 이끌어 낸 노동 열사. 1. 대우정밀에 입사 조수원(趙秀元)은 1967년 10월 10일 강원도 태백시의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탄광을 옮기면서 충청남도 보령으로 이사했고, 중학생 때 아버지가 진폐증으로 탄광을 그만 두자 생활고가 시작되었다. 조수원은 가계에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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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부산에서 활동한 노동 운동가. 아버지는 지익강(池翼江)이고,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큰형 지한용(池漢勇) 등이 있다. 지한종(池漢鍾)은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였으며, 해방 직후 부산에서 노동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5일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결성 대회에 부산 지역 대표로 참가하여 집행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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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의 택시 회사 국민캡에서 활동한 노동 열사. 홍장길은 1939년 7월 8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밀양 수산 동명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인력 수출 정책의 하나였던 파월 장병으로 지원하여, 맹호 부대 제26연대에 배치되어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19...
인권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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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원자 폭탄 피해자 2세 환우이자 인권 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1970년 7월 28일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수정 아파트 16동 206호에서 아버지 김봉대(金鳳大)와 어머니 성주 이씨(星州李氏) 이곡지(李曲之) 사이에서 3남 2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1. 어머니의 히로시마 피폭 김형률(金亨律)은 1982년 동일초등학교[현 동일중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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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영도 제1위안소에서 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두리(尹斗伊)는 1928년 12월 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8세까지 지내다가 서울의 이모 집에서 지냈고, 이때 서대문구 천연동에서 학교를 다녔다. 잘살던 집이 망하고 윤두리가 부산으로 돌아온 194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촌(西村) 피복 공장 등을 다녔다. 194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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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 거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분[가명]은 본관이 월성(月城)이며, 1926년[법적 생년은 1929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영천에서 남부심상소학교를 다녔다. 울산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37년 9월경 조선인을 앞장세운 나카무라라는 일본인에게 유괴 납치되어 울산의 하숙집 조명길에게 감금되었다가 부산과 일본 시모노...
민주화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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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여 희생된 고등학생. 강수영(姜壽永)은 1939년 10월 20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동면 안골리 258번지에서 아버지 강태호 슬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강수영은 안청초등학교와 북부산중학교[현 서면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6년 3월 1일 경남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60년에는 염직과 3학년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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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동자. 본관은 김해(金海). 1958년 9월 15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아버지 김동환과 어머니 최금련 사이에서 1남 1녀 중 큰딸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모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에 속하는 기독교인이었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장과 한신대학장을 지낸 구약학자 김정준 박사가 김은숙(金銀淑)의 둘째[작은] 할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아펜젤러재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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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이자 정당인.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기현(朴琦賢)이고, 어머니는 안경이(安鏡梨)이다.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남이(吳南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박순보(朴純甫)는 1943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청도군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청도에서 보통학교를 수학한 뒤 1960년 부산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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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부산 성남초등학교 학생. 박점도(朴點道)는 1950년에 태어나 1957년 부산의 성남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성남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 박점도는 4·19 혁명을 맞았다. 부산에서도 이승만(李承晩) 정권의 전횡과 무능에 대한 저항은 학생 시위로 시작되었다. 3월 초부터 ‘공명선거’와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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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부산 출신의 학생 운동가. 박종철(朴鐘哲)은 1965년 4월 1일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에서 아버지 박정기와 어머니 정차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박정기는 경상남도 출신으로, 6·25 전쟁을 전후한 무렵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 재학 중 지리산의 유격대에게 징발되었으나 용케 탈출한 적도 있다. 전쟁 후 박정기는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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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부산대학교에서 투신 자결한 학생 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1967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경백리 상대평 318번지에서 아버지 양태옥과 어머니 정봉순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양영진(梁永進)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1983년 2월 해운대중학교, 1986년 2월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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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민주화 운동의 후원자. 유기선(劉基善)[1912~2008]은 1912년 9월 29일 평양에서 아버지 유계준 장로와 어머니 윤덕준 권사 슬하의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계준은 주기철 목사가 이끌던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유계준은 염전과 목재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교회를 도왔고, 주기철 목사가 순교한 뒤 그 가족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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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부산 지역의 학생 운동가. 육지희(陸智熙)는 1971년 5월 18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에서 태어났다. 1984년 송정국민학교[현 송정초등학교], 1987년 해운대여자중학교, 1990년 이사벨여자고등학교[현 이사벨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90년 동래여자전문대학[현 동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여 1991년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고, 부산지역전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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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학생 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양우이고, 어머니는 신말선이다.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늘푸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이상록(李相錄)은 1956년 1월 4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1971년 3월 진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73년 3월 거창고등학교로 전학하여 1974년 2월에 졸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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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본관은 인천(仁川). 1958년 9월 10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493번지에서 아버지 이기성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김미현과 결혼하여 딸 이민하, 아들 이동엽을 두었다. 이성희(李誠熙)는 1977년 3월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0년 해운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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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부산 지역에서 일어난 6월 민주 항쟁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민주 열사. 본관은 하빈. 이태춘(李泰春)은 1960년 2월 7일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월하 마을에서 아버지 이정석과 어머니 박영옥의 2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정석이 일찍부터 가톨릭에 입교하여 이태춘은 출생 전에 유아 영세를 받은 가톨릭교도였다. 6월 민주 항쟁 당시에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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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당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화재로 숨진 학생. 장덕술(張德述)은 1960년 아버지 장원풍과 어머니 홍복순 슬하의 4남매 중 큰아들로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장덕술은 1979년 동아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3학년을 마친 1982년 장덕술은 군 입대를 위하여 학교를 휴학하였다. 6월로 예정된 군 입대를 앞두고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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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부산 지역에서 자결한 학생 운동가. 본관은 인동(仁同). 1965년 7월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대곡리에서 아버지 장용환과 어머니 남종임의 4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으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970년 부산광역시 동래로 이사하였다. 장재완(張在玩)은 1980년 2월 대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2월 동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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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4·19 혁명에 참여한 사회 운동가이자 정치인. 본관은 여양(驪陽). 아버지는 진정근이고, 어머니는 곽경주이다.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진두성(陳斗星)은 1943년 6월 2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52년 3월 수정국민학교[현 수정초등학교], 1955년 3월 동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8년 3월 동성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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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부산산업대학교에서 분신자살한 민주 열사. 진성일(陳聖一)은 1964년 1월 26일 부산에서 아버지 진승국과 어머니 조동래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진승국이 부산산업대학교[현 경성대학교] 직원이어서, 진성일의 가정은 비교적 여유 있는 중산층에 속하였다. 진성일은 1982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산업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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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1987년 전두환 정권 퇴진과 민주 헌법 쟁취를 요구하며 분신 자결한 노동자. 본관은 영천(永川). 1961년 9월 6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서 아버지 황보문수와 어머니 이순이 사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황보문수의 출생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덕하리이다. 황보문수는 6·25 전쟁 중 군에 복무했으며, 군대를 제대한 후 고향...
사회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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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강대갑(姜大甲)은 1930년 2월 김해공립농업학교 3학년 재학 중 만세 사건에 연루되어 1주일 동안 구류 처분을 받았다. 또 1932년 7월 4일 김해농민조합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1934년 3월 18일 석방되었다.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공산협의회와 사회과학연구회 등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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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수학한 사회 운동가. 본관은 곡부(曲阜). 아버지는 지역 유지였던 공도빈(孔道彬)이고, 어머니는 방말선(方末線)이다. 1949년 8월 15일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과 결혼하여 슬하에 윤상구, 윤동구 2남을 두었다. 공덕귀(孔德貴)[1911~1997]는 1911년 4월 21일에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7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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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관료, 정치인, 경제인. 김국태(金局泰)는 1887년(고종 24) 부산진 수정동[현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의 유력 유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1920년대 부산 지역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로 활동하여 부산청년회 간사장, 신간회 부산지회 초대 회장 등 많은 민족 운동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였다. 또한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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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보덕포 마을에서 철거반원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장림1동 철거대책위 총무. 김선호(金善浩)는 1961년 7월 전라남도 여천군[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여 사하구 장림1동 보덕포 마을 판자촌에 정착해 살았다. 약 1,983.47㎡[600여 평]에 이르는 이곳은 신발 제조업체인 호승의 소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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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부산·경남 지역에서 자행된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하여 헌신한 인물.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해정(海亭). 아버지는 김정태이고, 어머니는 길귀동이다. 아버지 김정태는 1919년 진영 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지역 내 우익 인사와의 사사로운 갈등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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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면 의원이자 사회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인호(朴仁浩)[1862~1943]이고 어머니는 최금순(崔今順)[1873~1931]이다. 아내는 김복금(金福今)[1905~1973]이며, 아들은 전 부산강서문화원 원장을 지낸 박만택(朴滿澤)[1933~]이다. 박동업(朴東業)은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삿개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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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공무원이자 농촌 운동가. 박한택(朴漢澤)은 1916년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 성북리 313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313번지]에서 박형용(朴螢鏞)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박한택은 가덕사립학원에서 수학하고, 동래 청년농민훈련소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다. 이후 천가면 산업 기수로 재직하였다. 천가면은 가덕도 일대의 섬이라 농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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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사이자 사회 운동가. 1. 일제강점기의 활동 신영갑(辛泳甲)은 1912년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길곡리에서 영세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무안보통학교[현 무안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수재들이 몰려드는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1927년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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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사회 운동가. 윤인규는 교회 목사로 재직한 종교가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1945년 10월 5일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 대표자 대회에서 김철수 등 일부 대의원이 인민공화국 지지와 경남인민위원회 결성 방침에 반발하여 퇴장한 후, 이튿날인 10월 6일 오전 11시 대생좌(大生坐)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 연합 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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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부산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이시우(李時雨)의 본업은 농업으로,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 운동가로 활약하였다. 1945년 10월 5일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 대표자 대회에서 김철수 등 일부 대의원이 인민공화국 지지와 경남인민위원회 결성 방침에 반발하여 퇴장한 후, 이튿날인 10월 6일 오전 11시 대생좌(大生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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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교수이자 민족 혁명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성(度聲)·산수(山水)·선교공남(汕僑空男), 호는 정약당(靜若堂). 아명은 이상(李象)이다. 태양(太陽)·남철(南鐵)·이남철(李南鐵)·철생(銕生)·이균(李鈞)·옥교량 등의 가명을 사용하였고, 임괴(任傀)·신호(申皓)·이일구(李一九) 등의 필명을 사용하였다. 부인 최명(崔明)과 이혼하고 송교(宋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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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준달(李俊達)은 1906년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소덕리 361-6번지에서 태어났다. 대저동에서 농업과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토목 사업을 벌였고, 동아일보 대저지국을 개설하여 면민에게 신문 읽기를 권장하였다. 그는 문맹자를 위해 무료 대서를 해 주는 등 어려운 사정에 놓인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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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부산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최갑환(崔甲煥)은 해방 직후 부산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한 사회 운동가이다. 1945년 8월 17일 최갑환은 노백용(盧百容), 강대홍(姜大洪), 이상도, 양성봉(梁聖奉) 등과 함께 동래 동운관(東雲館)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발기 총회를 개최하여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를 건설하고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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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 운동가. 추월량(秋月亮)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추월량은 1928년 동래청년동맹 교양부 위원, 1929년 동래소년동맹의 맹원으로 활동하였고, 동래노동조합의 집행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동래 지역의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또 동래불교청년회 회원으로, 범어사 동래포교당을 통하여 지역의 교육 계몽에도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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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 출신의 상업인이자 사회 운동가. 한영근(韓永根)은 부산 출신의 쌀 도매상으로, 1933년 부산역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였다. 1945년 10월 5일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 대표자 대회에서 김철수(金喆壽) 등 일부 대의원이 인민 공화국 지지와 경남인민위원회 결성 방침에 반발하여 퇴장한 후, 이튿날인 10월 6일 오전 11시 대생좌(大生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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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진보적인 보건 의료 운동을 전개한 의사이자 사회 운동가. 한일권은 1961년 10월 부산광역시 영도구 출신으로, 1987년 2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의사로서 활동하며 진보적 보건 의료 운동을 시작하였다. 1989년 4월부터 1994년 4월까지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한 의사회 회장을, 1994년 4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사회주의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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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김일립(金一粒)은 1945년 12월 전국노동조합평의회[약칭 전평] 결성 대회에 부산 지역 대의원[광산 노동조합]으로 참석하였다. 1946년 1월 미소 대표단 환영 대회에 참석하였으며, 3월 신탁통치배격위원회 선전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3월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도위원회[위원장 김동산(金東山)] 선전부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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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김정규(金正奎)는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1924년 1월 대구노동공제회 제5차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3월에는 남선노농동맹에서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주오대학[中央大學]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독일어과로 옮겼다. 재학 중 사상 단체인 일월회(一月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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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 운동가이자 기업인. 김종범(金鍾範)은 1910년대 후반 일본에 유학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우리나라 초기 사회주의자이다. 3·1 운동 직후 부산 지역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문화 운동의 청년 선봉장으로 활약하는 한편 사회주의 서클을 이끌었고, 부산노동동맹회를 기반으로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을 주도하였다. 사상 단체 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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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본부 치안부장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분성(盆城).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답곡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에 대하여 국가보훈처의 ‘포상자 공적 조서’에는 1895년 5월 22일[양력]로 기재되어 있으나, 일설에는 1894년 2월 13일이라고도 한다. 이명은 배대수(裵大秀)이다. 배덕수(裵德秀)는 1919년 4월 2일...
통일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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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본명은 권상욱(相旭), 호는 확우(蠖宇). 1897년(고종 34) 경상북도 안동에서 아버지 권영진(權寧鎭)과 어머니 함안 조씨(咸安趙氏) 사이의 6남 4녀 가운데 큰아들로 태어났다. 권영진은 안동의 천석군 부호로서 개항기 안동에 협성학교를 설립한 개명 지식인이었다. 권손(權巽)의 동생 권상우는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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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평화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활동가. 본관은 광주(光州). 아버지는 김태선이고, 어머니는 최음전이다. 부인은 이재훈이며, 아들 김민과 딸 김현을 두었다. 김상찬(金相贊)은 1931년에 태어났다. 부산 동아중학교 3학년 때인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었다. 그의 기나긴 투쟁의 역정에서 첫 구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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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진보적 청년들을 지도한 사회주의 운동가. 도예종(都禮鍾)은 1924년 12월 25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37년 대구 계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영수학원에 입학하여 1년을 수료한 후 서성중학에 진학하여 5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였다. 1946년 8월 초등학교 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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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호는 일정(一丁). 1918년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석산리 252번지에서 소작농이던 아버지 유수근(劉守根)과 어머니 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 학창 시절 유혁(劉赫)[1918~2001]은 본명이 유선홍(劉善泓)이다. 1930년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산공립보통학교 시절 학업이 우수한 학생으로서 졸업식에서 도지사상을 수상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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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운동가이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형수. 본관은 인천(仁川). 아버지는 이정항이고, 어머니는 황정분이다.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 출생과 수학 이수병(李銖秉)은 1937년 1월 15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손오리 866번지에서 태어났다. 1950년 4월 의령 부림공립초등학교[현 부림초등학교], 1953년 3월 신반중학교를 졸업하고 1953년 4월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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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정순종(鄭淳鍾)은 1896년 경상남도 합천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22세에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물상을 경영하면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8·15 광복 후 여운형(呂運亨)의 인민당으로 활동하였고, 1948년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대표자 대회에 참가하였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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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당시 부산과 서울에서 통일 운동을 전개한 변혁 운동가. 본관은 진양(晉陽). 호는 석한(石漢)·이산다농(異山茶儂). 아버지는 하병기(河炳基)이고, 어머니는 강차분(姜且粉)이다. 9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하일민이 친동생이다. 1. 성장과 학업 하상연(河相演)은 1934년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64번지에서 태어났...
사회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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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발전 기금으로 전 재산 55억 원을 기증한 할머니. 본관은 진주(晉州). 1928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493번지에서 아버지 강영수와 어머니 김순이의 2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강처녀(姜處汝)는 5세 때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세 되던 해 부산에 정착한 강처녀는 식당일과 가사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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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아동 교육에 힘쓴 토목 기사. 김재열(金在烈)은 1896년 유학자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김해보통학교[현 김해 동광초등학교, 1898년 개교]를 졸업하고, 진주의 측량기술원을 수료한 후 김해군청과 김해군 가락면에서 토목 기사로 근무하였다. 재직 시절 김재열은 우리 국토가 개발되지 못하고 낙후된 이유가 도로의 미정비에 있음을 절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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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경제인, 사회사업가. 김용준(金容駿)[1904~?]은 1904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서 출생하였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의 사립명륜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 시기 시대일보사 동래지국에서 근무하였으며 신간회 활동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미소를 운영하며 곡물상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본부 식량부장을 역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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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사회사업가. 안음전(安音全)은 1905년 10월 23일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아버지 안태명과 어머니 박성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1. 학창시절 및 유치원 보모로서의 생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안음전은 마산 의신여학교 1학년 학생이던 1919년 3월 21일 마산의 옛 시장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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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사업가. 둔치도(屯致島)는 낙동강 서쪽 유역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 삼차강으로 불리는 낙동강 세 갈래 물줄기가 조만강과 맞닿는 지점에 있다. 둔치도는 인근 명지도·대저도와 함께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낙동강 하류 삼각주의 하나이다. 근대 상업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항기 둔치도는 구포에 있던 남조선제지주식회사 소유로 이곳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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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지주.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첨(德瞻), 호는 저은(渚隱). 1867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덕정리]에서 태어났는데, 덕정리 전주 이씨 가문은 부자와 석학(碩學)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부자(李富者)라고도 불렸던 이홍현(李弘鉉)은 지주로서 흉년에 많은 곡식을 풀어 자선을 베풀었다. 흉년에 생계가 어려운 소작인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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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의료인이자 여성 운동가 및 사회사업가. 아버지는 정기두(鄭箕斗)이고, 어머니는 정정순향(鄭貞順鄕)이다. 정봉금(鄭鳳今)[1905~1988]은 1905년 8월 1일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1남 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부산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가서 1933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 최초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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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민족 차별에 항거하여 일본인 조직 폭력배를 살해하고 복역 후 부산으로 귀국한 재일 한국인. 권희로(權禧老)는 1928년 11월 20일 일본 시즈오카 현[靜岡縣]에서 목재 하역부인 아버지 권명술과 어머니 박득숙의 큰아들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희로’로 바꿨다.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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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자라 2001년 일본 도쿄[東京] 신오쿠보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이수현(李秀賢)은 1974년 7월 13일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 낙민초등학교[1987년 졸업], 동래중학교[1990년 졸업], 내성고등학교[1993년 졸업]를 거쳐, 1993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하였다. 1999년 휴학하고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