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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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孔德貴 |
영어음역 | Gong Deokgw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선애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수학한 사회 운동가.
[가계]
본관은 곡부(曲阜). 아버지는 지역 유지였던 공도빈(孔道彬)이고, 어머니는 방말선(方末線)이다. 1949년 8월 15일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과 결혼하여 슬하에 윤상구, 윤동구 2남을 두었다.
[활동 사항]
공덕귀(孔德貴)[1911~1997]는 1911년 4월 21일에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7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여장부였던 어머니는 재혼하지 않고 홀몸으로 7남매를 키웠으며, 공덕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였던 어머니에게 기독교 신앙과 독립심 강한 여성상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5년 졸업 후 동래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에 편입하였다. 동래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가서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 입학하여 1940년에 졸업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7·29 총선으로 집권한 민주당에 의해 남편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청와대에 함께 입성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발생한 5·16 쿠데타로 윤보선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공덕귀는 재야 활동가로 나서게 되었다.
1974년 2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로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 여성 평화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인 원자 폭탄 피해자 문제를 토론하였다. 같은 해 5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인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순교자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다. 같은 해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서울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양심범가족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1974년 4월에 발생한 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당시 가담자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경찰은 끝내 공덕귀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1975년 4월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들의 사형 집행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97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1976년 3·1 민주 구국 선언의 재판에 참석하였다가 김대중(金大中)의 부인 이희호(李姬鎬) 등과 함께 강제로 연행되어 길바닥에 버려지기도 하였다. 공덕귀는 이 무렵부터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섰다. 1977년 각계 지도자 100여 명으로 구성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방림방적과 남영나일론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을 지원하였다. 동시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후원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남편 윤보선의 반유신 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 해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에 선출되어 3년간 재임하였다. 1978년 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79년 9월 YH무역 여성 노동자의 신민당사 농성 당시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김경숙이 사망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이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YH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1980년 초에 시민운동가들 및 종교인들과 함께 광주 학살을 규탄하는 항의 서한을 미국을 상대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1983년에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교회 일치·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의 어머니 운동을 지도하는 한편 사랑의 쌀나누기운동본부 실행 위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87년에는 구로병원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공덕귀는 1992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창립에 참여하는 등 노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7년 11월 24일 오전 7시 3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공덕귀는 생전에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여성신문사, 1994], 『기생 관광 실태 조사 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 1983]를 남겼다.
[묘소]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비룡산에 있는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2010년 6월 부산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제3회 자랑스런 옥샘인 상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