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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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一粒 |
영어음역 | Gim Ilrip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철규 |
성격 | 사회주의 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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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대표경력 | 전국노동조합 부산지방평의회 위원장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12월 - 전국노동조합평의회 부산지역 대의원[광산노조]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3월 - 신탁통치배격위원회 선전부 상무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도위원회 선전부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전국노동조합 부산지방평의회 위원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9년 12월 -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산하 부산시 남지구연맹 간사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3월 25일 - 오태룡 부산경찰서장과 함께 보도연맹 학생반을 설치하고 강연회 개최 |
활동지 | 부산광역시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활동 사항]
김일립(金一粒)은 1945년 12월 전국노동조합평의회[약칭 전평] 결성 대회에 부산 지역 대의원[광산 노동조합]으로 참석하였다. 1946년 1월 미소 대표단 환영 대회에 참석하였으며, 3월 신탁통치배격위원회 선전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3월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도위원회[위원장 김동산(金東山)] 선전부장으로 선출되었다.
김일립은 제2대 전국노동조합 부산지방평의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46년 8월 11일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세계 노조 가입 부산 축하 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이로 인해 같은 해 9월 제7관구 경찰청[현 경남지방경찰청] 수사과에 검거되어, 1947년 3월 5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였다. 또한 1947년 3·1절 기념집회에서 좌우 단체의 충돌로 부상을 입고 입원 중인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소속의 노동자들을 위해 부산부립병원 등을 방문하여 위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49년 12월에는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산하 부산시 남지구연맹의 간사장을 맡았다. 1950년 3월 25일부터 김일립은 오태룡 부산경찰서장과 함께 민족의식과 국민 사상을 선도한다는 취지로 관내 학교에 국민보도연맹 학생반을 설치하고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