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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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善浩 |
영어음역 | Gim Sun Ho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병윤 |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보덕포 마을에서 철거반원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장림1동 철거대책위 총무.
[활동 사항]
김선호(金善浩)는 1961년 7월 전라남도 여천군[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여 사하구 장림1동 보덕포 마을 판자촌에 정착해 살았다. 약 1,983.47㎡[600여 평]에 이르는 이곳은 신발 제조업체인 호승의 소유지였는데, 하나둘씩 모여든 도시 빈민으로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어느 날 판자촌 주민들은 땅 주인인 호승 측의 철거 통보를 받게 되었지만, 갑작스런 철거 통지에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던 판자촌 주민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행정 당국에 요청했고, 호승 측에도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완화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장림1동 철거대책위를 결성하였다.
김선호는 1991년 12월부터 장림1동 철거대책위 교육부장을 지냈고, 이듬해인 1992년 10월부터 철거대책위 총무를 맡아 철거민 생존 대책을 위한 투쟁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11월 3일 오전 7시 30분경 폭력적인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철거반원들은 김선호의 집에 난입하여, 해머 등으로 집을 부수면서 부인 이정례를 폭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선호가 대항하자 철거반원들은 김선호에게 무차별적인 집단 구타를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김선호는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인근의 한서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사하경찰서는 사고 당시 40여 명의 인원이 현장 경비를 펴고 있었지만 철거반원들의 주민 폭행을 외면하였고, 사고 뒤 집단 폭행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도 무시한 채 단순 심장 마비사로 결론지었다. 이에 부산의 시민 단체와 학생 단체는 ‘김선호 씨 사인규명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 규명과 살인적 강압 철거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부산광역시와 사하구청은 이를 무시하였다.